김이배(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광주복지재단 선임연구원)
최근 보건복지부는 2017년 업무보고를 통해 복지서비스 제공의 최접점인 읍면동을 맞춤형 복지서비스 제공의 중심 기관으로 설정하고, 복지 사각지대 해소 및 복지 체감도 향상을 중요과제로 선정했다. 그리고 2018년도까지 3,502개의 모든 읍면동을 이른바 ‘복지 허브’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 흐름을 요약하면, 공공복지 전달체계를 읍면동을 중심으로 개편하려는 시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 공공복지 전달체계가 중요한 이유
일반적으로 전달체계는 정책이 집행되는 체계 전반을 의미하는데, 중앙정부 부처에서 광역의 지방자치단체(시·도)를 거쳐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와 그 하부조직인 읍·면·동 주민센터로 연결되는 조직체계를 일컫는다. 전달체계는 국가의 복지 정책이 실현되는 통로로서 어떤 조직과 인력, 무슨 프로그램과 가치를 가지는가에 따라 그 성과의 차이가 크며, 공공성을 직접적으로 실현하기 때문에 복지국가 그 자체로 불릴 만하다.
최근까지 정부는 공공복지 전달체계를 혁신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편을 시도해왔다. 시기적으로 보면, 김영삼 정부하의 1995∼1999년에는 보건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 전반기인 2004∼2006년에는 사회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을, 그리고 후반기인 2006∼]2009년에는 주민생활 지원서비스를 개편했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희망복지 전달체계를 시작했는데, 2009∼2011년 사이에 2차례의 개편이 있었다. 그리고 현 박근혜 정부에서는 맞춤형 복지 전달체계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역대 정부 때마다 공공복지 전달체계의 개편 시도들이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빈 공간이 많고,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달체계가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한 쟁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구조적인 혁신을 시도해야만 성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혁신은 역대 정부의 반복된 혁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보다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방향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 과감한 복지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앞으로 전달체계 개편의 최우선 과제는 복지 관련 인력을 대폭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확충하는 것이다. 기존 전달체계 개편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 충원이 미비했다는 점이다. 복지 예산이 증가함에 따라 복지 업무는 폭증하는 데 비해 인력 증원은 현저하게 적었다. 인력의 부족은 단순히 인력이 부족하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달체계의 수준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에 있어서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큰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의 규모는 기능적인 측면이나 인력 측면에서 판단할 수 있는데, 익히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작은 정부에 속한다.
작은 정부는 기본적으로 정부실패로 인해 적은 공무원 수를 상정하고 있으며, 국가 기능의 상당부분을 시장이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공무원과 관련해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고정관념 몇 가지는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의 수를 줄여야 하며, 국민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을 낭비하는 주범으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 수를 줄여서 바쁘게 일하는 공무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부만 맞다. 일부 공무원들은 분명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효율적인 업무를 하지 않아 국민적 불신을 자초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생각들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비교를 해보면 우리나라의 공무원 수는 적은 편에 속하며, 특히 복지 분야 공무원의 수는 매우 적은 상황이다. 공무원 수가 적다는 것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심부름꾼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상당한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인력이 적기 때문에 세금이 적게 나가는 장점은 있지만 괜찮은 서비스를 받지는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적은 돈을 내고 부실한 서비스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적정 금액을 내고 괜찮은 서비스를 받을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의 공공서비스가 추구했던 방식은 한마디로 ‘저렴한 행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에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작은 정부’ 방식이 바람직하며 유효한 것일까? 필자는 앞으로의 복지 수요와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복지 관련 인력 확충이 획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복지공무원 뿐만 아니라 복지서비스를 다루는 준공공적 인력(학교사회복지사 등)도 대폭 확충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혹시나 국가가 그 많은 세금을 다 감당할 능력이 될까 우려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우려에 대한 대안들은 무척이나 많다. 우리나라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미비하고 경제가 민주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합리적으로 조정해도 손쉽게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현장을 살펴보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근래에 많이 증원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서비스의 질이 강화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는 지금까지 부족했던 미충족 인원에 대한 보완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고 한다. 시민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력을 증원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서울시가 시도했던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의 경우, 423개 동에 평균 사회복지직 4.7명, 방문간호사 1명 등 도합 5.7명을 늘리는 식으로 증원을 시도한 바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파격적인’ 증원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기존 전달체계의 개편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정도는 적정 수준 또는 일정 정도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된 수준이지,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의 인력 수준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전달체계의 개편은 적어도 서울시 정도의 인력 충원을 할 필요가 있다.
# 관료제 운영의 혁신이 필요하다
시민에게 있어서 국가와 정부 그리고 공무원은 때때로 불편한 존재였다. 상당수 공무원이 영혼이 없는 공무원, 복지부동(伏地不動)의 공무원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에게 공무원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복지 대상자에게는 필요를 넘어 필수적인 존재이다. 이런 공무원들은 공공 관료제의 일원으로서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관료제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문제가 많은 조직 체계라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보면, 관료제는 전문적 서비스 제공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조직 체계가 아니다. 특히 동 주민센터의 경우는 종합 행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곤란하다. 동 주민센터의 의사결정자인 동장의 복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업무 수행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실제로 대다수 상급자인 일반 행정직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복지서비스는 매우 특수한 성격을 가지는데, 여기서는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정부 관료제는 획일성과 경직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복지서비스 제공의 유연성과 적극성의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복지 부문에서 효율성과 효과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복지행정 조직은 사회복지가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닌 조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목표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관료제 운영의 핵심은 사실상 적절한 인사 운영이 관건인데,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다루는 운영 방법에 따라 조직의 성과가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복지정책이 가진 특수성 이를테면 인간중심적 가치지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유연한 관료제 운영이 필요하다. 또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사행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에서 언급한 인력 확충에 이어서 우선적으로 광역시.도청에 복지 전문가를 적정하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시청과 도청 또는 자치구에는 사회복지 분야가 예산 지출 분야 1순위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조직 운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시청의 경우, 복지 부서에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상당수를 이뤄 전문적인 판단과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반 행정적 관점에서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빈번한 부서 이동과 순환 보직으로 인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정책이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복지 행정에 맞는 인사 행정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제도의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자격증을 가진 인력을 선발하여 배치하고 업무를 부여한 목적은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칙에 따라 효율적인 인사를 운영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있다면 손쉽게 지원이 가능하고, 배치 이후에도 행정적 지원에 치중하여 전문성을 활용하기 어렵게 되어 있으며, 과도한 업무량과 더불어 재량권 또는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아 무엇 때문에 사회복지직을 지원했는지 정체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근무를 함으로써 차별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전문 인력이 활용되지 못했던 이유들을 살펴보면, 상당부분 개인의 역량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정부가 형성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사회복지 인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폭증하는 복지 업무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역할, 어떤 업무, 어떤 포지셔닝을 해야 할지 논의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기존의 현금급여 관리(자산조사 및 단순사업 집행)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설계 및 지원을 위한 업무(상담, 서비스, 사례관리 등) 중심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복지 업무 외 업무 관련성이 높은 기획, 감사, 예산, 회계, 조직(사회복지직 인사 등) 등 여러 관련 분야에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을 두루 임용하여 전체적인 사회복지 업무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관련 업무와의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일반 행정직 공무원도 복지 업무 중 일반 행정적 성격의 복지 업무에는 과감하게 투입시킬 필요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지향적인 복지 정책의 실행을 위해서는 사회복지 부서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공공과 민간의 관계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은 공공이 무엇을 해야 하고 민간이 무엇을 해야 서로 간의 장점이 활용되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최근의 정책적 흐름은 지역복지의 부상, 통합사례관리의 확산, 민관협력의 활성화 등 공공과 민간의 접점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공전달체계의 강화만으로 공공전달체계가 성공적으로 구현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단위에서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한 조율, 지역 내 민간복지기관과의 협력, 주민단체 등 조직화의 확대 등이 필연적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같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공공이 우선 공공의 책임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재정에 대한 책임성을 보여주고 권한 배분에 대한 의지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실질적인 역할 배분이 바탕이 되어야 민간도 그 수준에 맞는 행동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버넌스와 파트너쉽의 실질적 구현도 필요하다. 민간자원의 관행적인 동원이나 구색 맞추기 식의 민관협력은 지속가능성이 낮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과 민간의 관계가 기존의 ‘종속적-대행자’ 관계에서 ‘동반자적-협력’ 관계로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 복지 체감도 향상은 전달체계 개선만으론 한계가 있다
현 정부는 ‘맞춤형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개편안은 읍면동 주민센터에 맞춤형 복지팀을 설치하여 사각지대 발굴, 방문상담, 통합사례관리, 민관협력 활성화 등을 수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주민의 복지 체감도를 향상시키고자 한다. 물론 전달체계는 사회복지에 대한 시민의 만족도를 증가시키는 데 주효한 수단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복지 제도의 충실성과 적절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 사회복지제도의 부실함을 전달체계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논리비약이다.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국민이 느끼는 복지 체감도는 복지제도만의 운영에 의해서 체감되는 것이 아니고, 경제 정책, 노동 정책, 교육 정책, 부동산 정책, 조세 정책 등과 긴밀하게 연동된다. 맞춤형 복지를 통해서 이러한 복지 체감도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앞으로 사회보장기본법 제2조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면, 이에 걸맞는 수준에서 전달체계의 내용이 제시되어야 한다.
# 복지국가에 대한 상세한 설계도 준비해야
최근 촛불정국과 탄핵정국 이후의 한국 사회의 진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대선을 기점으로 향후 복지국가 설계에 대한 거시적인 담론들이 다양하게 제안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을 점진적인 개선이 아닌 과감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극복하자는 데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현실의 변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교훈을 배운 바 있다. 현실은 거대담론에 의해 구축되기보다 현실을 충분히 고민하고 세심하게 설계한 계획 아래에서 보다 적절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지국가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계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거시적인 변화와 미시적인 변화들이 결합했을 때 비로소 괜찮은 모습의 복지국가가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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