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수
공손수(公孫樹)를 아시나요? 저는 우리들의 아름다운카페 [덕화만발]의 <석봉 조성학님의 한류와 글>방에서 이 공손수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공손수라는 나무는 은행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喬木)입니다. 은행(銀杏)나무는 암수딴그루로 5월에 꽃이 피며 열매는 10월에 노랗게 익는 나무를 말합니다.
은행나무는 2억 3천~2억 7천만 년 전, 초기 형태의 은행잎 모양이 알려질 만큼 일찍 지구상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조금 늦추어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1억 3천 5백~1억 8천만 년 전) 이전부터 지구상에 삶의 터전을 잡아온 식물이지요.
그런데 2~3억 년 전의 화석식물인 은행나무가 멸종되지 않고 지금까지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환경 적응력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춥거나 덥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고,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한 10여 년 전에 양평 용문사에 갔다가 절 앞의 공손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 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은행나무라고 합니다. 나이는 1100년 정도로 보고 있고 나무 높이 62m, 줄기 둘레 14m에 달합니다. 가을에 단풍이 들었다가 떨어지는 낙엽의 무게만 2t, 은행 열매는 15가마니나 된다고 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이 용문사 공손수에는 여러 가지 전설도 깃들여 있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었다고도 하고,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합니다. 또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 것이라는 전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공손수(公孫樹)는 은행나무의 다른 이름입니다. 여기서 공(公)은 남을 높이는 말이고, 손(孫)은 자손을, 수(樹)는 살아 있는 나무를 일컫는 말입니다. 은행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고 그 수확이 가장 풍성한 시기는 식재 후 대략 80년 내지 150년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손자 대에 가서야 그 수확의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은행나무는 손자와 그 후대를 위하여 심는 나무라 하여 공손수라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공손수의 교훈은 눈앞의 이익이나 당대의 수확을 기대하고 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문과 후손들의 미래에 대비한 계획과 투자입니다. 이것은 당장의 수확과 단번의 승부를 기대하고 바라는 현대인의 조급증과 성급함 그리고 단견적 실용주의를 경계하는 좋은 가르침이 아닐까요? 옛사람들은 적어도 100년 이후를 기약하는 기다림과 인내, 먼 장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와 같이 은행나무를 심는 것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와 그 후손을 위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인내의 씨 뿌림과 가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가 백년대계 운운하는 우리사회의 어떤 제도나 정책, 사업이 이토록 영구성과 지속성을 지닐 수 있는 일이 과연 존재할까요?
【군서치요(群書治要)卷三十二 관자(管子) 권수(權修)】에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나옵니다.
「1년 계획은 곡식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10년 계획은 나무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평생계획은 사람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하나를 심어 하나를 얻는 것은 곡식이요/ 하나를 심어 열을 얻는 것은 나무이며/ 하나를 심어 백을 얻는 것은 사람이다.」
「평생계획은 어릴 때에 하고/ 일 년 계획은 봄에 하고/ 하루 계획은 인시(寅時)에 한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나이 들어 아는 바가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 날에 힘 쓸 바가 없다.」
어떻습니까?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기른다고 한 교훈에 부합(符合) 되는 나무가 바로 이 공손수가 아닌가요? 사실 중년까지 저는 살아가는 데에 급급해 그야말로 천방지축(天方地軸) 종종걸음을 치며 아수라(阿修羅)와 같이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불연(佛緣)이 있었던 지 제 나이 45세 때 친구 따라《일원대도(一圓大道)》귀의를 했습니다.
완전히 세상이 뒤바뀌었지요. 속이고 속고 빼앗고 빼앗기는 삶에서 비로소 못 주어서 한이고 이끌어주지 못해서 한하는 그야말로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상을 맛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별 볼 일 없던 제 인생이 화려한 변신을 시작한 것입니다. ‘부처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냐!’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성불제중(成佛濟衆)의 서원(誓願)을 세운 것입니다.
180도의 인생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의 삼학(三學)공부에 몰두 하는 한 편, 세상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맨발로 뛰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성불제중의 길을 달려온 지 어언 35년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가난에도 안분(安分)하고, 부귀에도 이끌리지 않으며, 생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불의 길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옛 부처님도 500생을 닦아 부처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우 30여년을 닦아 어찌 성불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우리 조상님들이 공손수를 심으셨던 심정으로 성불의 길을 달려가겠다는 불퇴전(不退轉)의 서원으로 달려 갈 것입니다. 이생에서 이루지 못하면 내생에 아니 영생을 걸려서라도 기필코 이룰 것입니다.
큰 도에 발원(發願)한 사람은 짧은 시일에 속히 이루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잦은걸음으로는 먼 길을 가지 못하며,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큰 나무도 작은 싹이 썩지 않고 여러 해 큰 결과요, 불보살도 처음 발원을 퇴전 하지 않고 오래 오래 공을 쌓은 결과인 것입니다. 공손수는 하루아침에 큰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도 각자의 서원을 이 공손수를 심는 심정으로 세우고 달려가면 좋겠네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2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