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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동맹, 경찰서까지 잘못 의식..
사회

단지동맹, 경찰서까지 잘못 의식

김현태 기자 입력 2017/02/14 09:43
아는가,.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그리고 '지금' 안 의사 뤼순 감옥에서 사형 선고…나라를 위한 맹세 '손도장'

▲ 1909년 안중근 의사는 11명의 동지들과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단지동맹을 맺는다. 이들의 맹세는 왼손 넷째 손가락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고 쓰면서 이뤄졌다. 2월14일 오늘, 젊은층에게는 발렌타인데이로 알려져 있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다.

[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제 침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중근 의사는 107년 전인 1910년 2월14일 오전 10시30분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동생 안정근, 안공근 그리고 빌헬름 신부에게 "내가 죽으면 하얼빈공원에 묻어 뒀다가 주권을 되찾으면 조국으로 반장해다오"라고 당부했다.

◇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냈다.


조마리아 여사는 편지에 “네가 만약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며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고 밝혔다. 


안중근은, 문명개화를 통해 실력을 닦는 것이 대한 독립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 문명 개화론자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보호정치가 한국의 문명개화가 아닌 국권침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로 무장투쟁의 선두에 나선 솔선수범의 행동가였다.

잊혀서는 안 될 안 의사 사형 선고일은 언젠가부터 상술에 휩쓸린 발렌타인데이에 묻혀 연인끼리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로 전락했다.

◇ 최근 황당한 뉴스를 발견했다.

학창시절부터 눈이 닳도록 봐왔던 도마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테러방지 포스터에 등장한 것이다. 처음에는 가짜뉴스 혹은 과격단체의 장난으로 생각했지만 경찰서에서 직접 제작한 포스터였다.

 

해당 경찰서는 항의가 쏟아지자 “해당 직원이 ‘멈춤’을 의미하는 손바닥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사용했다”며 “직원들을 상대로 역사·교양 등을 주제로 한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해명했다.

 

가짜뉴스라면 ‘무시’했을 것이고, 안중근 의사를 싫어하는 과격단체의 소행이라면 ‘미친놈들’이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말았을 일이다. 사실 ‘박사모’라는 팬클럽 일부 회원들이 “제2의 안중근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암살’, ‘테러’를 주장했을 때에도, 남성혐오 커뮤니티에서 안 의사를 ‘손가락 장애 아저씨’라고 표현해도 그냥 넘겼다. 비상식적인 사람 또는 단체의 이상행동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명백백 역사(한국사)시험을 치르고 공인이 됐을 사람이 안 의사의 ‘손도장’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기가 찬다, 다른 의도가 숨어 있지는 않았는지 복잡한 난국 속에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일부 국민들이 잊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역사에 경중을 울린 역사적 인물로 테러방지포스터에 사용된 손도장은 안 의사가 보여준 나라를 위한 명세였다.

 

안 의사는 당시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왼손 무명지를 잘라 그 피로 태극기에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쓰고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며 조국독립을 맹세했다. 그 후로 그의 필적이 남아있는 유묵에 찍힌 손도장은 그의 결의와 맹세를 스스로 다지고 조국 동포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2월 14일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안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 목숨을 구걸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절대 부인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사과만 있었을 뿐이다. 사형 당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이토 히로부미의 잘못과 대한의 독립, 동양평화의 정당성을 외치려고 했다.

 

◇ 안 의사의 사형을 기다리는 의연함에 반한 일본군 헌병에게도 감동줘

사형을 기다리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에 뤼순감옥 일본군 헌병 치바 토시치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치바 토시치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유묵을 남겼는데 이는 아직까지 일본에 큰 귀감을 주고 있다.

 

1995년 일본의 한 방송은 안중근 의사를 재조명하며 그가 강조했던 동양평화와 업적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일본은 여전히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칭하지만 방송에서 ‘그는 절대 죽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하며 “안중근 의사는 죽는 그날까지 한국의 독립을 기원했다”고 기억했다.

 

‘안중근 의사 손도장’은 대한민국 독립정신의 근원이자 일제강점기의 부당함을 세계로 알리고자 했던 안 의사 결의의 상징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라고 말했다.


연인끼리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로 알려졌지만 이날 광복의 기쁨과 일제 암흑기의 아픔이 우리 역사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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