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23회
고향의 연인
그 후 혜란의 비서채용에 대해 잠잠해진 여사원들은〈사장의 총애를 업고 출세한 신데렐라〉로 주목했다. 혜란의 이러한 특혜에 대해 여직원들은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강심장인 혜란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자기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역시 호감을 보였고 자기를 반목하는 사람에게는 그도 무시해버렸다. 그녀는 나름대로 삶의 철학을 깨달은 바가 있었다.
조직사회에서는 언제나 대적들이 존재하지만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리고 이 세상엔 반드시 자신에게 이롭게 하는 이가 있고, 자신을 훼방하는 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해법은 지혜롭게 利가와 害가를 구분하여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여겼다. 혜란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추종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에게 배척 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자신을 적대시 하는 무리를 이미 파악하고 그들에게 적절하게 대응했다.
‘흥, 두고 봐라, 너희들에게 내가 어떤 여자인가를 보여주리라….’
이렇게 되뇌었다.
“흥, 고졸 출신이라면서 어떻게? 아무래도 사장과 무슨 썸씽이 있을 거야! 여우같은 년…!”
그들은 명문대를 거쳐서 정식코스로 걸어온 자신들보다 학벌도 없는 비천한 혜란이 부상하자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혜란을 업신여기며 적대시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이야 하찮은 잡소리로 여길 정도로 혜란은 강심장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모든 기술도 터득한 듯 약간의 거만 끼까지 발휘하며 그들이 자신을 얕보지 못하게 미리 상쇄했다.
‘잔챙이들이 까불고 있군!’
혜란은 이미 정해진 정규과정을 거치고 명문대와 좋은 가문 속에서 자라온 그녀들을 오히려 혐오했다.
‘부모 없이는 꼼짝 못하는 애송이들이!’
과잉보호나 의존심이 강한 그들을 향해 나약한 현대인이라고 경멸하기조차 했다.
무엇이든 혼자 알아서 해결해 온 자신과는 달리, 부모의 덕에 지금의 옷을 입은 그들에 대해 오히려 심적으로 우월감마저 느꼈다. 혜란은 자신에게 비젼이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늘 그것을 상상하며 미래의 최고 경영인의 모습을 꿈꾸었다. 다른 여직원들은 모두가 돈 많은 사업가를 만나 수천억대의 재산을 가진 귀부인을 꿈꾸었다. 안락과 사치를 채워 줄 그런 환상적인 결혼관과 안일주의에 빠진 부류로 치부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명품을 탐했고 맛있는 고급요리를 찾아 다녔으며 화려한 보석에 그들의 눈과 마음이 팔려 있었다. 혜란은 그들의 삶의 방식, 곪아터진 내부의 질식 상태를 비웃었다.
‘여자가 살아야 나라가 제대로 되는 데 말이야!’
저 정신 나간 나약한 여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여성학을 강의하고 싶었다.
‘정신이 썩었어. 정신교육을 시켜야 해!’
이러한 내부적인 야멸찬 날카롭고도 예리한 사태파악과 세태를 보는 그녀는 지도자적인 안목이 있었고 선각자적이었다.
‘현대 여성들은 너무 안일하고 나약해. 겉모습은 날로 신속하게 변모하고 외모는 화려하게 치장하며 돌보고 있지만 그들의 내부는 아둔하고 음산하여 텅 빈 집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