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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19차촛불, 60만이 외첬다...
사회

[포터] 19차촛불, 60만이 외첬다.

김현태 기자 입력 2017/03/04 20:35




[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4일 주말은 맞은 토요일 광화문은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사실상 마지막일 수 있는 19번째 촛불집회에 60만 명의 시민들이 또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19차 촛불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를 기조로 4일 열린 19차 촛불집회에서도 박 대통령의 탄핵과, 특검연장 요구를 거부한 황교안 권한대행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반면, 보수연합을 이룬 태극기집회는 사람 수보다 태극기가 훨씬 더 많았다. 여기에 성조기가 보태졌다. 해병대, 육사의 깃발에는 기수가 표기돼 있었고, 고등학교 이름이나 지역 이름의 깃발에는 ‘애국’이나 ‘멸공’ 같은 명사가 덧붙어 있었다. 때때로 바람이 불면 깃발이 사람들 머리 위를 덮었다. 4일 오후 서울시청 앞 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의 탄핵 반대 집회는 깃발의 집회였다.



자극적 표현까지 나오는 보수측 태극기 집회는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우리는 젊음을 함께 사르며/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 꽃이다.”(‘진짜 사나이’) 집회 현장 곳곳에 설치된 초대형 스피커를 통해 군가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공장에서 광산에서 생산 경쟁 높은 기세/ 푸르른 거리엔 재건부흥 노랫소리~”(‘조국 찬가’)같이 1970년대 국가에서 보급한 노래들도 간간이 들렸다. 국민의례로 시작한 집회에서 ‘애국가’는 4절까지 제창됐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뒤에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로 시작하는 ‘6·25의 노래’가 이어졌다. 이날 집회는 군가의 집회이기도 했다.

깃발의 집회이자 군가의 집회이긴 했지만, 이날 집회를 대표하는 세력은 누구였을까. 무대에 오른 연사들은 대부분 태극기 망토를 둘렀고, 마이크를 넘겨받고는 거수경례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집회에 참여한 군중을 호명할 때 “500만 애국시민 여러분”이라고 불렀다. 그곳에 모인 실제 군중 수가 얼마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 4일 오후에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 청년 세 사람이 세로 펼침막을 등에 맨 채 서로 손을 잡고 서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라고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으로 활동하는 김평우 변호사는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범죄자들이 이제 소수가 됐다. 패주하는 적들을 쫓아가 무자비하게 섬멸해야 한다”며 사자후를 토했다. 정 대변인이나 김 변호사에게 이날 집회의 대표 세력은 곧 ‘(대다수) 국민’이었다.

그러나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이날 집회의 대표는 노인층이었다. 백발 성성한 노인들이 노구를 무릅쓰고 깃발을 흔들며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모습은 일사불란했다. 그렇다고 이날 집회가 노인들만의 집회는 아니었다. 중년은 물론, 전쟁의 경험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청년들도 개인이나 가족뿐 아니라 조직 이름의 깃발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노년의 어머니와 중년의 아들이 손을 잡고 행진하기도 했다.

‘군가의 집회’는 집회 참가자들의 구성에 비하면 심한 상징 과잉으로 보였다. 여성 참가자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노인 여성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초로의 여성들은 세련된 옷차림에 잠자리 테 선글라스를 낀 이들이 많았다. 짙게 화장을 한 젊은 여성이 제 몸에 버거워 보이는 여러 개의 대형 태극기를 매단 깃대를 어깨에 건 채 또각또각 하이힐 굽 소리를 내며 걷기도 했다.


이들을 특정한 범주로 통약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좌경용공 친북세력 척결’에 대한 의지의 강도까지 같을지는 의문스러웠다. 해병대 군복을 입은 임아무개(68)씨는 “촛불 빨갱이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하는 반면,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중년 여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대로 탄핵당하면 너무 불쌍해서 나왔다”고 했다.

태극기라는 기표도 누군가에게는 이데올로기 자체일 수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패션에 가까워 보였다. 태극기 문양의 안경을 쓴 여성들에게서는 얼핏 장난기마저 엿보였다.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역사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쓴 태극기 망토를 두른 채 행진했다. 그 구호가 페미니스트 선언일 리는 만무하겠지만, 각성이든 착각이든 주체 선언의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점잖은 차림새의 노인들 여럿이 북새통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긋나긋한 말투 끝에 “○ 교수” 같은 호칭이 오가기도 했다. 곱게 차려입고 패션 선글라스를 낀 한 여성은 주위 사람들과 사탕을 나눠 먹으며 시종 수다를 떨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같은 교회 신자들이었다. “여기 끝나면 촛불로 넘어가야지.” 기자가 귀를 의심하며 나지막하게 되묻자 그녀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재밌잖수”라고 답했다.



‘탄핵 반대-국회 해산-특검 해산-종편 해체’라고 손으로 쓴, 우리 현대사에서 낯선 조합의 팻말을 보면서 이 집회의 성격이 예상보다 난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든 말든,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기를 망설이는 당 지도부와 ‘옛 동지’인 유승민·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을 거친 표현으로 성토했다. 행진이 끝나고 집회가 마무리될 때까지 초대형 스피커의 군가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집회는 외설스러워 보였다.

서울시청 근처 카페에 앉아 기사를 쓰는 동안 테이블에 태극기를 올려놓은 옆자리 남녀 노인들은 시국 토론에 한창이다. 그중 한 여성이 말했다. “며느리가 아니라 웬수야 웬수!” 어쩌면 며느리는 촛불집회에 나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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