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거치며 부동산 자산 상승에 비해 노동의 가치는 얼마나 평가받아왔을까. 서울에서 집을 가진 사람과 전세나 월세로 살아온 사람은 자산 격차가 얼마나 날까.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부동산 자산가치 급등과 달리 노동의 가치는 점차 퇴색해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투영해보기 위해서다.
1988년 이래 노동자 평균임금이 약 6배 오른 데 비해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값은 임금 상승치의 43배, 비강남권은 19배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30년 땀의 대가가 2400만원일 때 강남 집값 상승액만 10억원을 넘은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실은 1988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노동자 임금 증가분과 서울 강남·비강남권 아파트 가격 상승액을 비교한 결과, 부동산 가치가 임금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올랐다고 5일 밝혔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기보다는 은행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게 훨씬 큰 돈이 되는 사회가 됐다는 뜻이다.
경실련과 정 의원실은 강남의 대표적 아파트단지인 반포주공·은마·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등 17개 단지, 비강남권에서 상계주공7·길음래미안1·여의도시범 단지 등 17개 단지의 가격 추이와 고용노동부 임금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토대로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부동산 가치와 임금 변화를 비교·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노동자 대투쟁이 본격화할 즈음인 1988년 노동자 평균임금은 월 36만원(연 430만원)이었고 지난해는 월 241만원(연 2895만원)으로 29년 사이 5.7배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비강남권 아파트값은 4억6193만원, 강남권 아파트는 10억6267만원 올라 임금 상승치에 비해 각각 18.7배, 43.1배 뛰었다. 30년 전 임금에 견주어 보면 강남권 아파트값은 264배, 비강남권은 126배 오른 셈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이런 수치는 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임금 상승만으로 유주택자와 자산 격차를 해소하는 건 불가능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한 주택 보유자와 전·월세 거주자의 자산 격차도 커지고 있다. 경실련이 1990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가격 변화와 전·월세 거주 시 금융비용을 환산한 결과, 유주택자와 전·월세 세입자의 자산 격차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주택자의 집값이 오른 동안 세입자는 전·월세금을 연 4% 금리로 빌렸을 경우 기회비용을 산출해 비교한 것이다.
30년 전 서울의 비강남권 아파트를 샀다면 평균 4억원 정도, 강남권 아파트는 10억원 넘게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전세나 월세로 살아온 경우라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담했어야 할 금융비용(손실)이 2억~3억원으로 계산됐다. 강남 아파트를 산 사람과 월세로 지낸 사람의 자산 격차가 13억원인 셈이라고 경실련은 추산했다.
1990년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은 3.3㎡당 543만원이었고, 비강남권 아파트는 549만원이었다. 26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기준 가격은 강남권이 4585만원, 비강남권은 2107만원이다. 전용면적 84㎡ 아파트라면 평균 1억3000만원이던 강남 아파트값이 11억4000만원으로 7.7배(10억1000만원) 뛴 것이다. 일례로 은마아파트는 1988년 3.3㎡당 244만원이었으나 올 2월 현재 3919만원으로 16배 뛰었고, 광장동 워커힐 아파트는 같은 기간 346만원에서 2270만원으로 6.5배 올랐다. 재건축 호재 등으로 30배 넘게 폭등한 단지도 있다.
30년간 강남권 전세보증금은 4000만원, 월세는 25만원에서 각각 6억2000만원, 216만원으로 14.5배, 7.6배씩 올랐다. 세입자 주거비 부담이 부동산 가격 상승과 비슷하거나 훨씬 큰 비율로 늘어나기도 한 것이다. 예컨대 1990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월세로 살아온 경우라면 주거비를 마련하려고 세입자들이 부담했을 금융비용만 전세는 2억원, 월세는 3억원으로 계산됐다. 경실련은 “결과적으로 강남권에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과 무주택자로 사는 세입자가 집 때문에 벌어진 자산 격차가 전세는 12억원, 월세는 13억원이나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강남권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경우라면 1990년 1억3000만원(3.3㎡당 549만원)에서 지난해 10월 5억3000만원(3.3㎡당 2107만원)으로 4억원(약 3.1배)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1988년 전셋값은 4000만원, 월세는 23만원에서 지난해 10월 각각 3억3000만원, 월 123만원으로 올랐다. 경실련은 “전·월세 비용 마련을 위해 세입자들이 부담한 금융비용(손실)은 1990년 이후 2016년 10월 현재까지 전세는 1억5000만원, 월세는 2억5000만원으로 환산됐다”고 밝혔다. 비강남권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과 무주택자로 사는 세입자의 자산 격차는 전세는 7억원, 월세는 8억원인 셈이다.
이번 분석 결과는 열심히 일만 해서 모은 돈으로는 치솟는 집값이나 전·월세 비용을 감당키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아파트값 거품 빼기 운동을 해온 정 의원실 김헌동 보좌관은 “30년 동안 급등한 아파트 가격 상승폭을 볼 때 물가상승률 수준에 그쳐온 임금상승을 통해서만 주택 보유자와 무소유자의 자산 격차를 해소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부동산 가치가 오르면 절대적으로 소득 상위층에게 유리하지만 자영업자나 세입자는 임대료가 올라가고 양극화가 커진다”며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투기를 막도록 부동산 세제의 원칙부터 세우고 주택 공급은 대출규제책으로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