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30회
캥거루 신드롬
종례는 강제적으로 다른 사내를 가슴에 품은 채 얼떨결에 양가 부모에 의해서 시집을 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밥맛도 없어지고 기운도 없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장흥이 내려왔다. 오월의 신록이 우거진 화창한 날이었다. 주말의 휴일이 삼일이 겹쳐져 모처럼 친구 창수를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장흥도 종례가 보고 싶었다. 종례는 예쁘고 항상 방긋이 웃는 모습이었다.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며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것이 믿음직한 여인으로 여겨졌다.
장남인 그는 무조건 예쁘고 모양만 내는 나약한 여성을 아내감으로 그리진 않았다. 이 점에서 장흥은 의젓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신중함이 있었다. 종례는 운명의 시간이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모처럼 방문한 장흥에게 애틋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장흥은 이몽룡이요 자신은 춘향이라고 여겼다. 종례는 장흥을 우는 모습으로 한동안 뜨겁게 쳐다보았다. 장흥도 돌아가기 전에 종례와 오붓하고 한적한 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종례는 이번에야말로 장흥오빠에게 자신의 사랑을 꼭 고백하리라고 결심했다.
‘이번이다, 이번에 우리의 사랑을 꼭 이루는 것이다!’
장흥은 새삼 종례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동안은 무관심한 척 했지만 언제나 부지런히 집안일을 돌보며 얌전한 종례를 훔쳐보며 지켜보았다. 종례는 개미처럼 잘록하고 긴 허리를 가졌고 이목구비가 그런대로 반듯한 편이었다. 종례는 채마밭에서 잘 익은 딸기를 내놓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 드세요, 아주 달고 맛있어요!”
장흥은 종례의 그런 모습이 딸기를 먹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서양화가 르느와르는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하여 많은 인물화를 그리지 않았는가. 자신이 르느와르라면 그는〈딸기를 먹는 처녀>의 그림을 화폭에 그리고 싶었다.〈장미를 든 여인> 을 그렸고〈독서하는 여인> 을 그렸으며,〈피아노 치는 여인들> 을 그렸던 르느와르처럼 그는 오늘 종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은 오월의 푸른 신록에 놓인 근처의 호숫가로 나갔다. 잔디밭에 앉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느덧 그들은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종례의 그 결단은 의외로 순순히 잘 풀렸다. 이제는 육체를 섞은 사이라 종례는 장흥을 붙잡았다고 쾌재를 올렸다. 서울로 돌아간 장흥은 계속 종례에게 편지를 하고, 종례 역시 계속 그리움의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주고 받았다. 설사가상으로 어느 날 장흥은 종례가 임신하였다는 편지를 받게 되었다.
“아풀싸!”
그는 이런 식으로 되고 싶진 않았다.
부모님께 종례를 소개시키고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많은 사람들의 축복 가운데서 결혼하고 그 후에 아이도 갖기를 원했다. 아직 법학부를 마치기 전의 학생으로서 입장이 난처했다. 양가 부모도 알게 되어 속히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혼인을 서둘러야만 했다. 장흥은 혼인한 애 아빠가 되어 법학부를 마쳐야 했다. 이만석은 딸 종례의 학벌이 기우니 지적수준을 갖추도록 독서를 하여 교양을 갖추도록 말했다. 그러나 원래 책을 읽지 않았던 종례가 독서를 시작하는 것은 흥미도 없었고 무리였다. 지적인 것을 좋아하는 장흥에게 훌륭한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나 종례는 한 페이지를 넘기고는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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