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31회
캥거루 신드롬
임신 한 후 종례는 새로운 고민에 쌓였다. 서울에는 여러 대학도 많고 똑똑하고 예쁜, 교양이 풍부한 신여성도 많은데, 장흥이 자신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이런 근심거리를 덜어준 방패막이는 바로 요람 위에 뉘어져 새근새근 잠든 애춘이었다.
‘자기 핏줄이 있는데 절대로 날 버리진 못할 거야!’
어린 핏덩이인 애춘을 끌어안고 풍부한 모유를 먹이면서 종례는 애춘을 제2의 자기의 탄생으로 여겼다.
종례는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았다. 부잣집이라고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중학생 때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 이만석은 결혼하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까지 홀아비로 보내고 있다. 어머니 대신 자신이 식구들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부엌데기였다. 다른 신여성처럼 시대에 맞는 옷차림도 한 번도 못하는 것이 원망이 되어 구구절절 불만이었다. 겨우 사촌언니들에게서 물려받은 헌 옷이나 입었고, 냄새나는 부엌데기 자신의 모습이 악몽처럼 여겨졌다. 거기다가 자신을 공부시키지 않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을 계집종처럼 고생만 시킨 것이 원통했다.
아버지가 빨리 재가해 새 엄마를 얻었다면 해결될 것이었다. 밤마다 엄마의 사진을 모셔놓고 들여다보는 것도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쨌든 그날 오빠와의 사건은 잘 벌였어! 그렇지 않았다면 벽돌집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벽돌 찍는 일만 죽도록 하게 되었을 거야…’
“초라한 부엌데기로 날 만든 것은 아버지가 재가하지 않아서 그래…”
종례는 부잣집 딸들처럼 곱게 자신이 자라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난 어쨌든 사장의 부인까지 되었어….’
법학부를 마치고 장흥은 바로 반도체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결국 종례의 꿈대로 사모님 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따뜻한 봄날 종례는 유모차에 애춘을 태우고 백화점에 들어서고 있었다. 늘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나이롱 양말을 신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상기하며 그녀는 꽃무늬가 새겨진 새하얀 면양말을 두 켤레 샀다. 또한 어린 아기에게 입힐 원피스와 물통, 배냇저고리, 요람 등을 골랐다. 모두 국내에서 최고급으로 구입했다.
‘귀족의 자제처럼 내 딸을 공주처럼 키울 거야!’
그녀는 애춘에게 모든 걸 걸었고 자신의 생의 창조로 여겼다. 종례는 자신이 청춘시절에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딸에게 투사하며 보상받으려 했다. 어느새 애춘은 정말 그녀가 꾸며주는 인형 속의 공주가 되어버렸다. 애춘이 제법 자란 사춘기 때에도 머리모양과 손질도 거의 이종례가 해주었다.
그녀가 신교육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라면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숙지하여 아기에게 적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난 네가 한 모습을 보고 싶어! 우리 딸이 제일 멋있게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며 스스로 인정해 보도록 하며 자신감과 적응력을 유도했을 것이다. 이종례는 무지 속에 아동이 자신이 스스로 탐구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렸다고나 할까. 자신감과 긍정적인 태도의 힘이 좌절되었고 자신과 타인을 견주어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정을 이해하는 EQ 훈련도 도외시 되듯 하였다. 그 결과 애춘은 지나친 자기애가 형성되어 그녀를 주위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어야 하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이종례는 이렇듯 예민하고 혼돈스런 중요한 시절인 사춘기에도 애춘의 성장권리를 박탈하였다.
“제발 날 내버려 둬!”
“이게 좋은 거야!”
“날 상관하지 마. 내가 할 거야!”
발악하듯 애춘은 드디어 반항했다.
“우리 공주님 화를 내면 못써요 공주님처럼 품위를 지켜야죠!”
그럴수록 뺨에 뽀뽀를 하며 그녀를 달래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