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41회
애인
애춘은 소영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쾌락을 즐기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는 늘 남편과 아이들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즐거움 끝에 고통의 그림자가 자신을 묶어놓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편 채성도 직장에서 여비서와 애인사이가 되어, 그 여자와 마음껏 욕심을 채우며 자신에게 등을 돌려 냉냉했단 말인가! 애춘은 순간 분노가 치밀고 전신이 떨렸다.
언젠가 그의 여비서 황혜란이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남편이 회사의 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집에서 밤늦도록 점검하다가 새벽같이 출근하며 그 중 하나를 깜박 빠뜨렸던 일이 있었다.
“속히 좀 회사로 가져다주오!”
남편의 급한 부탁이라 서둘러 나가는 바람에 단장도 하지 못한 채, 맨 얼굴로 검정색 원피스에 노란색 가디건을 걸치고 황급히 회사에 도착했다. 그 때 애춘은 회사현관에서 지나가는 미모의 여인과 살짝 스쳤다. 가냘픈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모에 총명함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여인은 애춘에게 예의있게 대했다.
“곧 회의가 끝납니다. 좀 기다리시지요!”
애춘은 모닝커피를 자신에게 건네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훑어보았다. 깎아낸 듯한 콧날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순간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자신이 움찔하며 초라하게 여겨졌다.
직감적으로 남편과 내연의 관계가 있다고 감지했다. 순간 절망과 함께 가까스로 버텨온 공주 프라이드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집에 돌아온 애춘은 황혜란의 멋진 몸매와 얼굴이 사라지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 여자일거야…!”
소영이 말대로 자신도 직장생활을 한다면 황혜란처럼 상큼하고 활력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들이 전업주부보다 덜 노화되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잖아!”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 황혜란처럼 멋지고 젊어질 거야!”
애춘은 마치 신기한 비밀을 깨달은 듯 즉시 작은 아버지의 연락처를 찾아 부탁했다.
그것은 사립 중학교에 이사장으로 있는 작은 아버님 장건이 미대를 졸업할 때, 본교에 와서 재직할 것을 권유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직장을 구하기는 애춘에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불과 한 달 만에 작은 아버지인 장건의 강력한 배경으로 그녀는 미술교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5년간의 경력을 쌓았고 그 후 공립 중학교에 미술교사의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전교조로 활동하던 교사들이 대거 해임되어서 사립교원이 공립교원으로 이동하는 추세가 되어졌다. 바로 이 흐름을 타서 그녀는 공립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던 것이다.
애춘은 회사 내의 정보통신자로 남몰래 사람을 통해 황혜란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미모의 이십 대. 홍보과 근무. 독신주의자.
“독신주의자라니?”
눈이 동그래져 애춘이 여사원에게 물었다. 그 말은 안도케 하면서도 이상야릇했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관심 없는 척할 때, 자신은 독신주의자라고 떠벌이지!”
‘남편이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면 달라지지!’
애춘은 채성이 혜란에게 특별한 혜택을 베푼 것이 의아했다. 언제나 여자에게 무관심한 듯한 쿨맨이 아니었던가. 그에게 그런 정열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설마 천한 것과…!’
그러나 애춘은 자신이 남편에게 품위를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초라하고 위축되는 듯했다. 갑자기 어린 시절부터 이 세상의 으뜸이고 부러울 게 없었던 공주가 이제 하녀가 되어 천대받게 되는, 어떤 압박감이 밀려왔다. 애춘은 황혜란처럼 아름답지 못해서 채성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후 고급망원경을 구입하여 남편의 회사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같이 하는 모습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기 시작했다. 황혜란의 애교 어리고 요염한 분위기…. 마침내 두 사람이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하자, 혜란이 남편의〈애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분노와 함께 절망 속에서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애정의 집착 때문인지… 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지독한 이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