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버마>(박종철출판사. 2017) 저자 강진욱
1. <조선일보> 마유미 사진 속 비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1987년 11월 29일 일어난 KAL 858편 폭파 사건(일명 김현희 사건)이 32주기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KAL기를 자신이 폭파했다고 주장하는 김현희의 사진에 관한 것이다.
문제의 사진은 사건 발생 보름 여 뒤 치러진 대통령선거 당일(1987.12.16) <조선일보> 1면좌측 하단에 실렸고 밑에 ‘마유미의 얼굴’이라는 캡션이 달려 있다. 이 얼굴 사진 위에 실린 사진은 바레인의 병원에 누워있던 마유미(김현희)가 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 압송되면서 대한항공기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이다.
문제의 ‘마유미 사진’에 착안한 것은, 17년째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신성국 신부가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11월 27일) 진행자와 나눈 대화가 계기였다. 신 신부와 유튜브 진행자는 압송되는 김현희의 얼굴 모습과 아래 실린 ‘마유미 얼굴’이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듣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희의 얼굴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압송된 김현희가 바레인에 억류돼 있던 마유미가 아니라는 ‘설’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희의 사진을 찾아 비교해 봐도 <조선일보>에 실린 ‘마유미’와는 ‘김현희’와 달라 보인다.
(왼쪽 첫 번째는 ‘조선일보 사진’, 다른 셋은 사건 발생 직후 언론에 등장한 김현희 모습)
마유미는 김현희가 아니었단 말인가. 확인이 필요했다. 우선 다른 신문에도 이 사진이 실려 있는지를 찾았다. 놀랍게도 <동아일보>에도 ‘마유미의 얼굴’ 사진이 있었다. <조선일보> 보도 하루 전이자 마유미 압송 당일인 12월 15일 자 1면.
그런데 자세히 보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마유미(의) 얼굴’ 사진은 똑같은 사진이었다. 두 사진을 따로 떼어내 비교해 보자.
머리 모양과 옷의 칼라를 비교해 보면 틀림없이 같은 사진이다. 그런데 얼굴이 달라 보인다. 동일한 사진을 <동아일보>가 먼저 게재하고, 하루 뒤 <조선일보>가 게재했는데 왜 얼굴이 달라 보일까.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 마유미’는 김현희와 달라 보이지만, ‘동아일보 마유미’는 김현희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희 사진들과 ‘동아일보 마유미 사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동아일보 마유미’는 김현희와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똑같은 ‘마유미 얼굴’ 사진이 <조선일보>에 실리면서 마유미가 김현희가 동일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유발한 것이다. 우선 마유미가 김현희와 다른 인물이라는 가설은 일단 버리자. 합리적 추리는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첫걸음이지만, 잘못된 추리는 진상 규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사진이 두 신문에 연이어 실리면서 다른 사진처럼 둔갑했을까?
2. <동아일보> 특종 사진 <조선일보>에서 뭉개진 이유
<동아일보>에 이 사진이 먼저 실린 것은 마유미의 도착 시간과 관련이 있다. 마유미를 태운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석간신문 마감(통상 오후 1시 전후) 이후라는 사실은 석간인 <동아일보>에게는, 아무리 불가항력이라 해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마유미 입국 사진이 실릴 것이 눈앞에 선했을 것이다.
이때, 어떤 경위로든, 안기부가 ‘마유미 얼굴’ 사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동아일보>가 인지했을 것이다. <동아일보>에게는 구세주의 강림과도 같았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무슨 수를 쓰든 안기부가 갖고 있는 ‘마유미의 얼굴’ 사진을 확보하려 했을 것이고, 결국 ‘마유미 얼굴’ 사진으로 특종을 날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사진은 언론사들 사이의 일과성(하루살이) 특종 경쟁으로 끝날 물건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앞뒤 안 가리고 ‘구세주’를 붙들어야 했던 <동아일보>도 몰랐을 것이고, 문제의 사진을 유출한 안기부 내부자도 몰랐을 것이다.
뭘 몰랐을까? 이 사진은 안기부가 갖고 있는 ‘김현희 파일’(가칭)에서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사진이라는 사실! KAL기 사건의 내막을 은폐해야 하는 - 사건을 저지른 - 자들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외부에 나가서는 안 될 사진이었다. 117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전대미문의 비행기 폭파 테러를 자행했다는 희대의 테러리스트(마유미)의 어릴 적 사진이 어떻게 나올 수 있나! 이 사진은 김현희를 오랫동안 관리해 온 조직, 김현희에게 ‘마유미’라는 가명을 주고 작전에 투입한 조직이 아니면 내 놓을 수 없는 사진이다.
무심코 이 사진을 내준 이들이 또 미처 몰랐던 것은 ‘마유미 얼굴’ 사진은 김현희의 어릴 적 사진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실로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만일 안기부가 우연히 김현희의 어릴 적 사진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 100년이 가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 안기부가 김현희를 어릴 적부터 관리해 왔다는 결론을 피해갈 수 없다.
안기부에서 KAL기 폭파 작전을 수행한 그룹이나 안기부 뒤에서 안기부를 조종하는 미 CIA는 문제의 ‘마유미 얼굴’ 사진을 보고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안이하게 판단했다 뒤늦게 사태의 엄중함을 깨달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급히 수습에 나섰을 것이다. 어떻게? 다음 날 <조선일보>에 실릴 사진을 뭉개는 방식으로! 사진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게!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르게! 나이를 추측할 수도 없도록! 명암을 과하게 처리해 게슴츠레 한 눈빛을 지우고 대신 냉혈의 테러리스트같은 인상을 조작한 것이다. 경쟁지 특종은 깔아뭉개거나 모른 척 하는 언론계의 병폐로 미뤄보면 <조선일보>가 고의로 사진을 뭉갰을 수도 있겠다. <동아일보>가 먼저 보도한 사진과 다른 사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말이다.
누가 했든 사진 뭉개기는 성공적이었다. ‘1등 신문’이라는 애드벌룬 때문인지 모두가 <조선일보> 사진만 기억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마유미 얼굴’ 원본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있을까? 김현희가 마유미가 아니라는 둥 사건의 진상을 헷갈리게 만드는 말들이 나돈 것은 부수적 효과였다. 사건의 진상 규명에 장애가 되는 항설이 생겨나는 것은 저들에게 -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이들에게 - 매우 바람직한 일 아닌가.
안기부나 <조선일보>가 의도했든 안 했든 사진을 뭉개야 할 이유는 또 있었다. 마유미가 입고 있는 옷의 문양을 잘 살펴보면, 그가 어느 시대 어느 고장에 있었는지도 대략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또는 조선족 동포들이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촌스런 북한 옷’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김현희는 저 나이에 북한에 있지 않았다.
안기부는 “김현희가 공민증 번호와 조선노동당 당원증 번호를 잊어버렸다”며 수사기록에 두 칸을 공란으로 남겼다. 그런데 김현희가 살았다는 평양에서는 ‘공민증’이란 말을 안 쓰고 ‘평양 시민증’이라고 한단다(북송되기만을 기다리는 ‘평양 시민’ 김련희 씨, 잘 난 자유대한을 찾아왔다 ‘북한 간첩’으로 몰려 곤욕을 치른 홍강철 씨 등 ‘남한에서 바른말 하는 북녘 주민들의 말이다). 안기부의 ‘북한의 KAL기 테러 시나리오’를 쓴 자들은 이런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고 오래 전 자료에 근거해 엉터리 각본을 쓴 것이다!
3. 김현희 사진으로 상기하는 또 다른 사진
이 글을 분들 가운데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졸고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찾습니다’(인터넷 <진실의 길>, 2018.10.9)에서 논한 사진이다. 국정원이 이 사진을 공개한 것도,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입장에서는, 해서는 안 될 대실수였다. 물론 안기부나 그 후신인 국정원이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리만큼 어리석지 않다. 국정원은 안기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강민철의 사진을 꽁꽁 숨겼다. 자그마치 27년 동안!
그렇게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사그라지고,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이조차 없자 국정원은 방심했는지, 27년 동안 감춰뒀던 비밀 문건이 2010년 9월 <월간조선>에 등장한 것이다(다음 페이지 첨부 문건).
안기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이 1998년 11월 작성한 이 문건에는 아웅 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의 사진 두 개가 실려 있다. 하나는 1998년 11월 국정원 요원들과 만났을 때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놀랍게도 ‘83.10 사건 당시 모습’이었다. 강민철의 사건 당시 모습이 아웅 산 묘소 테러 발생 27년만에, <월간조선> 특종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이 사진 역시 강민철을 작전에 투입한 조직이 아니면 보유할 수 없는 사진이다. 아웅 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이 이 사진을 갖고 있었을 리도 없고, 북한 당국이 제공했거나 탈북자들이 갖고 내려왔을 리도 없지 않은가! 특히 강민철 사진이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일어난 지 27년만에 ‘83.10 사건 당시 모습’이라는 캡션을 달고 안기부(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사건 발생 당시 안기부가 강민철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말이고, 이 말은 곧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안기부의 자작극이라는 말이다.
또한 한국 정부 측은 2005년 8월까지 계속 버마 교도소에 갇혀 있는 강민철과 접촉하면서 “(안기부) 파견관이 의약품과 소액의 영치금을 (버마)교도 당국을 통해 지원”했다. 우리 정부 또는 정보당국이 강민철 옥바라지를 했다는 말이다. 이 또한 강민철이 안기부 - 또는 기무사 또는 정보사 - 요원임을 웅변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 뭍으로 올라 온다.
<국정원 문건>
4. 김현희 다시 보기
다시 김현희. 그의 사진 한 장 더 보자. 김현희가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안기부의 끄나풀임을 반증하는 사진이다.
6공의 황태자 소리를 들었던 박철언 씨의 책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①> 291쪽에 실려 있다. 사진 밑에는 ‘특보실에서 KAL 858기[편] 폭파범 마유미(김현희)를 면담한 후(1988년 2월 5일, 왼쪽부터 강근택, 강재섭, 김현희, 필자(박철언), 김용환)’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김현희가 얼마나 예.뻤.길.래. ‘안기부 남정네’ 넷이 안기부장 특보실로 그녀를 불러 기념사진을 찍을까!
이때 안기부가 김현희를 어떻게 대.접.했.는.지도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안기부는 이듬해 밀입북한 죄로 수감돼 있던 한양대생 임수경 양(훗날 국회의원을 지냄)에게 김현희를 보내 ‘회유’하려 했단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김형태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비망록② 임수경·문규현 사건과 방북(하) - KAL기 폭파범 김현희, 서울말 쓴다고 하자…」(2012.2.10)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안기부는 임수경을 설득하려고 김현희까지 동원했다. 그는 1987년 칼(KAL)기를 폭파해서 117명을 죽게 만들었다며 사형선고를 받고도 구치소 문턱에도 안 가보고 보름 만에 사면받았다. 대선을 불과 보름 남짓 남기고 사건이 터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런 그가 버젓이 안기부 지하 밀실까지 찾아와 차 마시러 자기한테 놀러 오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임수경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임수경이 김현희에게 서울 말씨를 쓴다고 하자 다음날부터는 어색할 정도로 평양 사투리를 섞어 썼다.]
이게 안기부 끄나풀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진실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