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지난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을 북측 해상에서 사살한 뒤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으로 파악됐다.
2008년 금강산에서 발생한 '박왕자 피격 사건' 이후 12년 만으로, 북한군이 남측의 비무장 민간인을 잔인하게 사살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후폭풍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군 당국은 24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인 실종자 A(47)씨와 관련한 대북첩보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A씨가 실종 다음 날인 22일 오후 북측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최초 발견됐으며, 6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께 총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총격 직전에 해군 계통의 '상부 지시'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군의 판단이다.
이어 오후 10시 11분께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북측 인원이 해상에서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웠으며, 이런 정황은 연평도 감시장비에서 관측된 북측 해상의 '불빛'으로도 확인했다.
군은 첩보를 통해 이런 정황을 인지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실종자라고) 특정할 수 있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조치가 이뤄질지 등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렇게까지 나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측 첩보 자산이 드러날까 봐 염려된 측면도 있었다며 "우리가 바로 (첩보 내용을) 활용하면 앞으로 첩보를 얻지 못한다. 과거 전사를 보면 피해를 감수하고도 첩보 자산을 보호한 사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군 당국은 실종된 A씨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부유물에 올라타 북측 해역에서 발견이 된 점과 선박에 신발을 벗어두고 간 점, 북측 발견 당시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식별된 점 등을 근거로 그가 자진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을 어떻게 식별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최선을 다해 시신을 찾아 유족에게 인도해야 할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주문에 "경비작전세력에 임무를 부여해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의 이런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고,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결과 및 정부 대책을 보고받고 "충격적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군을 향해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태세 강화를 주문했다.
국방부는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이 낭독한 입장문을 통해 "북한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입장을 냈다.
서주석 NSC 사무처장은 "본 사안은 9·19 군사합의의 세부 항목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접경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9·19 군사합의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이번 사안에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번 사건은 남북 정상 간 합의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국민의힘은 "민간인에 대한 비인도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 상생의 기반 자체를 뒤엎었다"고 북한을 비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