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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과 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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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과 설민석

정운현 기자 webmaster@www.newsfreezone.co.kr 입력 2020/12/24 11:13 수정 2020.12.24 11:17

1.지금은 헐리고 없지만, 독립문 네거리에서 금화터널로 오르는 왼손편에 목욕탕이 하나 있었다. 오래된 1층 건물로, 붉은 벽돌로 만든 사각형 굴뚝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 목욕탕이 세워질 당시에는 이 굴뚝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을 것도 같다. 그 인근에서 오래 산 나는 한 달에 두어 번씩은 이곳을 찾곤 했다.

얼추 10여 년 전 쯤, 어느 일요일 늦은 오후에 목욕탕을 찾았다. 입구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열쇠를 받아 사물함 쪽으로 향하는데 저쪽에서 한 사람이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고 있었다. 왠지 낯이 익다 싶어서 가까이 가서 보니 도올 김용옥 선생이었다. 선생과는 구면이다. 댁이 이 근처냐고 물었더니 집은 멀지만 이 목욕탕을 좋아해서 일부러 멀리서도 온다고 했다.

이 목욕탕은 오래돼 시설이 낡았다. 그러다 보니 요즘 목욕탕에 가면 탕 바닥에서 마치 샘물이 솟듯이 물이 퐁퐁 올라오는 것처럼 하는 그런 시설조차 없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바로 그게 없어서 좋다고 했다. 그런 시설이 있으면 탕 바닥의 때까지 뒤섞여 물이 더럽다고 했다. 실지로 그 목욕탕은 탕 물이 호수처럼 고요했다.

선자리에서 나눈 몇 마디 얘기가 끝날 무렵 도올 선생이 내게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정 선생 책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 선생은 방송에서 한국 현대사 관련 강좌를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얘기인즉슨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를 하면서 내가 쓴 <실록 군인 박정희> 책을 더러 참고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박정희의 만주군 이력과 해방 후 좌익행적 등을 많이 참고했다고 했다.

그래서 답례차 내가 한 마디 했다.

“부족한 제 책을 선생님 같이 유명한 분이 방송에서 활용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기쁩니다.”
도올은 그 뒤에도 어느 자리에서 내게 이와 비슷한 얘기를 또 한 적이 있다. 이 정도는 원저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2.유명한 역사강사 가운데 도올만큼이나 대중적 인지도나 인기를 가진 사람으로 설민석을 들 수 있다. 최근에도 MBC ‘선을 넘은 녀석들’ 프로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1970년생이니 올해 50인데도 그의 외모나 차림새는 30대 청년 같아 보였다. 그런 그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설화를 겪기 쉽다.

발단은 지난 19일 tvN의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에서 터졌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고고학자인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이 방송내용 가운데 오류를 지적하였다. 오류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그 이튿날(21일) 오류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설민석은 22일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뒤늦게 사과했다.

설민석의 ‘방송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에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 발표 모임을 가진 것을 두고 ‘룸살롱에 갔다’ ‘낮에 술판을 벌였다’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1919년 3월 1일 정오 무렵 33인이 모였던 태화관이 요정 건물이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당일 그분들이 대낮에 음주행각을 벌이려고 그곳에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대중들에게 이해를 돋구기 위해 이런 표현을 했는지는 몰라도 결코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일로 그는 33인 유족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벌금을 물었다.

설민석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발성이나 몸짓, 스토리텔링에서 독특.탁월한 편이다. 대중을 상대로 호소력이 있어 인기가 높은 것 같은데 이는 분명 그의 장점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그는 이후 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그런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후 방송에 출연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인기강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에겐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는 역사를 깊이 공부한 역사 전문가는 아니다.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탁월한지 몰라도 역사를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한다고 보긴 어렵다. 주로 그는 전문가들의 연구성과를 활용하여 대중을 상대해 왔다. 그런 그가 고대사부터 현대사, 특히 세계사까지 다루었다면 그 자체로 ‘무리한 도전’이었다고 하겠다. 역사 강의가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막 얘기할 것은 아니다. 이번 사고는 방송국에서 그의 인기를 활용해 시청률을 올리려다 빚어진 것이다.

그가 출연한 TV프로가 일반대중 상대라고는 하나 그 영향력을 감안하면 파급효과는 작지 않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설민석과 해당 방송프로 제작진은 자숙해야 한다. 남 앞에 나서서 지식·학문을 논하거나 전달하는 자는 그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 그가 역사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그 공이 과를 상쇄할 순 없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설민석은 더 깊이 공부하고 또 근신해야 한다. 그게 자신을 사랑해준 대중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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