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모두 질 수 없는 단일화 싸움, 100석 넘는 야당 입장에서도 안철수 입장에서도 모두 급하다
돌아보는 2012년 문재인·안철수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 분명 무리했던 안철수의 요구 사항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김문수와 서로 "사퇴하라" 공방만 주고받다 흐지부지, 이번엔 달려졌을까?
[ 서울 = 뉴스프리존 ] 고승은 기자 =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합당할 때 한 누리꾼이 댓글로 그러더라고요. '철수 맛 좀 봐라'고요. (이하 중략) 95%의 국민은 공천파동이 어떻게 된 건지 이미 판단이 끝났어요. 그런데 안철수 대표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안 대표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라고 해요. 왜? 그것마저도 명확하지 않아요. 뭘 사과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돼요. '철수 맛 좀 봐라'가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어요."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2018년 6월 4일자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로 6.13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오는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전 서울시장)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국민의당 대표) 간 단일화가 추진 중에 있다. 이들은 지난 7일에 이어 10일에도 회동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움직임이다. 후보등록일 마지막날인 19일까지는 단일화를 마무리 하기로 했으며, 서울시 공동운영에 대한 방향성과 정책협의체를 만들자는 내용에 합의를 봤다.
오세훈 전 시장은 11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대표와 ▲ 비전발표회 개최 ▲ 서울시 공동운영 방향성 ▲ 양당 정책협의팀 구성 등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은 이번 주중 함꼐 비전발표회를 하고 언론의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면 양측 토론보다 더 효과가 나올 것이란 기대라고 전했다. 양측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서울시 공동경영' 구상에 대해서도 합의를 봤다고 알렸다.
양당 사이에서 늘 양비론을 펴고 실체가 모호한 '극중주의'를 내세우던 안철수 대표도 오세훈 전 시장을 적극 띄워주는 발언을 하며 화답하는 분위기다. 그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과 오세훈 전 시장의 관계를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듀오인 손흥민과 해리 케인의 관계에 빗대기까지 했다. 그는 “손흥민 선수에게는 케인이라는 훌륭한 동료가 있고, 손기정 선생에게는 남승룡이라는 고독한 레이스를 함께 한 동지가 있었다”며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은 그런 관계”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일화 후보 선출하는 데 있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후보를 선출하는 여론조사 '문항'이 대표적 쟁점이라 하겠다. 국민의힘에선 '후보 적합도'를 묻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당은 '후보 경쟁력'을 묻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토론을 한 번 할 지, 두 번 할지 여부도 쟁점이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양측은 12일 오전 11시 다시 만나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사실 언론에서 더 주목한 것은 국민의힘에서의 후보 선출보다 양측의 단일화 성사 문제였다. 이는 어느 한 쪽도 쉽게 양보할 수는 없는 싸움이 분명하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100석이 넘는 제1야당이라는 나름의 체면이 걸린 문제인 만큼, 이번 단일화 싸움에서 질 경우 '불임정당' 이미지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대표 입장에서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3위에 그치는 부진을 겪어 정치적 입지가 더욱 줄어든 만큼, 이번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선 앞날을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사실 과거의 안철수 대표의 후보단일화 과정을 돌아보면 굉장히 구설이 많았었다. 대표적 사례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단일화 과정이었다. 당시 대선 약 한 달 전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과 안철수 대표(당시 무소속 대선후보)는 후보단일화 협상에 돌입한 바 있다. 양측은 그해 11월 6일 단일화 회동을 통해 ▲새누리당 집권 연장 반대 ▲유리함, 불리함을 따지지 않는 단일화 추진 등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그해 11월 12일 단일화 협상팀이 가동됐다. 그런데 이틀 뒤 안철수 후보 측이 갑자기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을 한다. 협상장에서 자극을 하고, 협상장에 '친노' 인사가 있었다는 이유 등에서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 안철수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에 강도높은 쇄신을 요구하며 이해찬 당시 당대표,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의 사퇴 등을 사실상 요구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그해 11월 18일 민주통합당 당시 지도부(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당시 최고위원들)가 총사퇴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모두 내려놓는다. 그 다음날 안철수 후보 측이 내놓은 후보단일화 방식을 제안했는데, 시민 여론조사 50%와 각자 민주당 대의원·안철수 펀드 가입자가 참여하는 공론조사 50% 방식이었다.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지지층으로는 민주통합당 대의원을,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의 지지층으로는 안 후보의 후원자 및 펀드 참여자를 설정한 것이다.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 측이 제안한 방식은 당연히 안 후보 측에 굉장히 유리한 방식이라 하겠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의원들 중 적잖은 비율이 '반노' 성향이라 안철수 후보를 지지할 것이 확실시됐다. 실제 당시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 중에는 안철수 후보 지지세력이 적잖았다.(실제 이 중 상당수는 안철수 대표 탈당 이후 그를 따라간 바 있다.) 반면 안철수 후보 측의 펀드참여자는 대부분이 안 후보의 절대 지지성향이라는 점이다. 100이라 치면 50은 확실히 가져가겠다는 것이며 나머지 50 중에서도 상당부분을 가져갈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당시 단일화 여론은 매우 뜨거웠는데 이런 무리한 방식이 제안되며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단일화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과 종교인 등이 양측이 낸 방안에 대한 절충안을 제시했다. '안철수 후보가 주장한 양자 가상대결 50%'와 '문재인 후보가 주장한 적합도 조사 50%'를 나눠 조사한 후 합산하는 방식을 제안했던 것이다. 즉 '양자 가상대결 50%+후보 적합도 50%'로 결론을 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은 이를 수용했으나, 안철수 후보 측은 '적합도' 대신 '지지도' 조사 방식을 다시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반반씩 중재한 절충안에도 당시 안철수 후보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결국 안철수 후보 측은 그해 11월 22일 밤 '양자 가상대결 50%+후보 지지도 50%'를 최후통첩으로 걸었다. 그러나 양측의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자, 안철수 후보는 다음 날 저녁 갑자기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을 한다. 그러면서 '단일화'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바른미래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엔, 김문수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와 서로 "사퇴하라"는 공방만을 주고받다 단일화에 완벽하게 실패했다. 당시 있던 안철수 대표 관련 잡음은 단일화 문제뿐만이 아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천 문제에서도 있었다. 당시 공동 창업주라 할 수 있는 유승민 전 의원 측과 갈등이 있었는데, 당시 이준석(서울 노원병)·박종진(서울 송파을) 후보가 출마하느냐 아니면 다른 후보가 출마하느냐로 선거 돌입 직전까지 다투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준석 당시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며, 과거 네티즌이 자신에게 했던 '철수 맛 좀 봐라'가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고 했다. 네티즌들이 붙인 '철수 맛'은 레드벨벳의 인기곡 '빨간 맛'에 빗대어 부르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안철수 대표와 한 때 가까웠다가 완전히 갈라선 많은 정치인들을 두고 '철수 맛'을 본 것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다만, 이번 단일화 과정에선 과거 두 차례의 사례보다는 잡음이 적어 보인다. 양측은 단일화 후보가 만약 당선될 시 "서울시를 공동운영하겠다"라는 공약에까지 합의했다. 노골적인 '권력 나눠먹기'이자 '포퓰리즘' 아니냐는 구설에 직면할 게 분명하면서도, 단일화를 어떻게든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보인다.
후보 등록까지 남은 약 1주일의 기간 동안 안철수 대표와 오세훈 전 시장간에 단일화가 적은 잡음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언론들은 거의 연례행사로 "안철수가 달라졌다"는 기사를 냈는데, 과연 이번엔 안 대표가 과거의 모습과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