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협상 초기만 해도 "우린 환상의 팀" 화답하는 분위기더니, 불과 며칠 만에 '비방전' 쏟아내
여론조사 '문항' 정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결국 따로 출마해서 3자 대결? 오세훈 "일고 가치도 없다"
김종인 향해 안철수 "상왕" 직격, 과거 安 동료들 "여자 상황제"로 반격, 安 대변인도 "김종인 X맨" 직격
[ 서울 = 뉴스프리존 ] 고승은 기자 = "김종인 위원장께서는 실정의 책임이 큰 현 대통령이나 박영선 후보가 질책하고 혹독하게 다뤄야할 대상이지 않습니까. 그런 입장에 계신 분께서 거의 중도보수를 아울러서 야권 대통합해야 한다고 목 놓아 외치고 있는 안철수 후보를 집중적으로 때리시니까, 세간에서는 민주당에서 보낸 엑스맨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현하는 분도 계시고요." (안철수 캠프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 17일 YTN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중)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를 위해 여론조사를 시작하기로 한 17일 오전까지 여론조사 설문 문항에 합의를 하지 못하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간 단일화가 성사될지조차 미지수가 됐다. 양측은 17~18일 이틀간 여론조사를 진행, 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마감일인 19일 최종 단일후보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이조차 어려워지게 됐다.
단일화 협상 초기까지만 해도 양측이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서울시 공동경영' 구상 등에 대해 합의를 봤다고 했고, 안철수 대표는 자신과 오세훈 전 시장의 관계를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듀오인 손흥민과 해리 케인 혹은 마라토너 손기정·남승룡 선생과의 관계에까지 빗대며 화답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양측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오세훈 전 시장은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그분들(안철수 후보 측)이 또 새로운 방식을 들고 나왔다. 양 후보를 대입해서 누가 유리하냐 불리하냐 이런 식으로 묻는, 지금까지 단일화 방식 중에 한 번도 정치 역사상 쓴 적 없는 걸 들고 나와서 관철하겠다고 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여기서 안철수 대표 측이 들고 나온 새로운 방식은 '안철수 대 오세훈'과 같이 두 후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 후보로 넣어 '박영선 대 안철수', '박영선 대 오세훈'으로 묻는 식이다.
이에 국민의당 실무협상진은 반박 입장을 냈다. 이태규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지난 2010년 (경기지사 선거 당시)유시민·김진표 후보 간 단일화 과정에서도 가상 후보 대결로 결정을 봤다"며 오 전 시장의 입장을 반박헀다.
이태규 사무총장은 "안철수 후보 말처럼 투표용지와 여론조사 설문지가 똑같으면 된다. 오세훈 후보로 단일화 되면 '1번 박영선 2번 오세훈',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 되면 '1번 박영선 4번 안철수' 이런 식으로 설문지 만들어서 묻자는 것"이라며 "경쟁력은 동의하면서도 가상대결은 부정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맞받았다.
양측 실무 협상단을 맡은 정양석 국민의힘 사무총장과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3시부터 다시 모여 협상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만약 극적 타결된다 할지라도 오늘 여론조사를 돌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간상으로 이날 오후까지는 협상이 타결돼야 당일치기 여론조사라도 진행해야 단일후보 등록을 마칠 수 있다,
한편, 양측에선 장외에서 날선 신경전을 주고받고 있다. 안철수 후보 측인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정면으로 직격하기도 했다. 그는 17일 오전 YTN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김종인 위원장이)야권 대통합해야 한다고 목 놓아 외치고 있는 안철수 후보를 집중적으로 때리고 있다"며 "세간에서는 민주당에서 보낸 엑스맨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현하는 분도 계신다"라고 직격했다.
지난 15일 김종인 위원장이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토론도 안 하겠다는데 토론도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장 노릇을 하겠나"라고 비난하면서 싸움이 붙었다. 그러자 안철수 대표는 16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파트너에게 그런 도를 넘는 말씀하신 것은 이적행위"라고 반발했다.
이어 안 대표는 "후보끼리 합의한 사항에 대해 국민의힘 협상단이 인정을 안 한다"며 "후보 뒤에 '상왕'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김종인 위원장을 겨냥했다. 김 위원장이 '3자 대결로 진행되도 국민의힘 후보가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어서다.
이에 김 위원장은 "협상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 토론을 안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토론을 하자고 하고"라며 "또 여론조사할 때 기호 2번 국민의힘 오세훈, 기호 4번 국민의당 안철수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투표할 때 기호와 당 쓰는 건 상식인데 그런 걸 안 하려고 하니 협상이 안 되는 거지, 내가 협상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과거 안철수 대표와 바른미래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까지 안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본인을 조종하는 '여자 상황제'가 있단 말은 들었나"라며 "오히려 지난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안 후보를 돕던 사람들이 '여자 상황제'의 존재를 암시하며 떠나간 것을 잊지 말자"고 직격했다. '여자 상황제'란 안철수 대표의 배우자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를 호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현재 국민의힘 소속인 장진영 변호사도 "기자들이 다들 '안철수가 집에만 가면 결정이 뒤집어지더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집에 상왕을 모시고 산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면, 안 후보가 섣부른 상왕론 공격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 대표를 직격했다.
그렇게 장외에서도 양측은 신경전을 주고받으며 감정싸움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예정대로 양측이 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선대위원장은 김종인 위원장이 맡게 된다. 그런데 벌써 당의 수장들끼리 이렇게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가 손흥민-해리 케인, 손기정-남승룡 관계를 언급하며 분위기를 띄운 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 심할 정도로 감정싸움을 벌이며 간격을 벌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가 순조롭게 될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분명한 과거 사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을 보면, 안철수 대표 측에서 여러 요구사항을 걸다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어정쩡하게 안 대표의 후보직 중도 사퇴로 끝났다. 또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는 김문수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와 서로 '사퇴하라'는 공방만 주고받다가 아무 소득 없이 끝났고, 두 후보 모두 큰 차이로 낙선했다.
데드라인까지 오고도 협상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서 단일화 무산 가능성도 제기되며 3자 구도 가능성도 나온다. 이에 오세훈 전 시장은 "그럴 일은 없다. 두 사람 다 단일화에 실패하게 된다면 문제가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3자 대결시에도 자신이 해볼 만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전혀 제 머릿속에 없다.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정말 그거는 재앙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오세훈 전 시장의 경우 후보 선출 이후 잠시 기세를 올리는 듯했으나, 현재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이 크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그가 내놓고 있는 해명들마저 바로 반박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