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과 하늘이 맞닿는 선, 지평선.
나는 그간 총 세 차례 지평선을 구경한 적이 있다.
1. 용산역에서 호남선을 타고 가노라면 전북 익산을 거쳐 ‘징게맹게’ 김제에 이른다. 우측 창측을 예의주시하면 잠시 스치듯 너른 땅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그 땅끝이 하늘과 맞닿은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게 바로 김제 광활면의 지평선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2. 93년 여름, 역사문제연구소 일행들과 중국 여행을 갔다.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심양ㅡ연변ㅡ용정ㅡ백두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낮에 북경을 출발한 기차는 숨가삐 달려서 해질녁에 심양에 들어섰다. 심양에 도착할 무렵 우연히 창밖을 봤더니 중국 군벌 장학량이 조난을 당한 곳이라고 적힌 팻말이 지나갔다. 바로 그때 창밖으로 광활한 대지가 펼쳐졌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잠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는 저 끝으로 지평선이 보였다. 지평선을 처음 본 나로서는 신기하고 또 놀라웠다.
90년대 후반, 중국 동북3성의 독립운동 유적지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연변 자치주의 용정 일대를 둘러보고 길림성으로 넘어갔다.
길림에서 용무를 보고 다시 장춘으로 향했다. 두 곳을 잇는 장-길고속도로를 탔다. 한참을 가다가 잠시 쉬려고 차를 세우고는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담뱃불을 끄고 차에 타려는데 보니 눈앞에 보이는 땅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잠시 흥분이 일었다.
3. 때아닌 ‘지평선’이 화제다. 잠행을 거듭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한 뒤 방명록에 남긴 글귀에서 비롯됐다. 문맥상으로 보면 ‘지평선’이 아니라 ‘지평’이 맞다. 실수인지 아니면 무지한 탓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목에서 ‘통찰’ 대신 ‘성찰’이라고 쓴 걸 보면 단순히 실수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