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심이라니? 화석연료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인가"
"월성원전 표적수사 지휘해 대선에 이용한 것"
[정현숙 기자]= 야권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에 구석구석 헛점을 보이고 있다. '지평선을 연다'는 잘못된 언어 구사력에 이어 이번에는 '탄소중립'을 '탄소중심'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탈원전 반대 행보'를 벌이는 오류를 범했다.
윤 전 총장은 6일 민생 행보 첫 방문지로 찾은 대전 카이스트 원자력공학 전공생들과 인근 호프집에서 만나 탈원전 반대를 설파하다가 방역수칙 위반으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기본이 안 돼있는 검사 출신이 정치를 잘 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정치 입문 계기를 원전 수사 외압으로 돌리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때리고 나섰다. 하지만 검찰권 남용을 자인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정치검사의 무지가 드러난다는 세간의 지적이다.
급기야 조선일보가 진화에 나섰다. 신문은 7일 '탄소중심' 마스크를 쓰고 전날 대전 원자력공학 전공생들과 호프집에서 탈원전 반대 행보를 벌인 윤 전 총장의 마스크에 오타가 있었다고 인쇄업체의 잘못이라고 해명까지 하면서 방어했다.
관련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NS로 "단어 하나도 제대로 구살 못하네요"라며 "이런 코메디가 있습니까? 이런 마스크를 제작한 단체나 이 문구를 보고도 쓰고 사진 찍은 윤석열이나...조선일보가 친절하게도 대신 해명하고 있군요"라고 꼬집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탄소중심 마스크를 버젓이 쓰고 탈원전을 논하는 이들을 두고 "화석연료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인가"라고 힐난했다. 7일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산화 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탄소 농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게 하겠다는 게 '탄소중립'이다. 탄소중심이라니? 탄소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무슨 대응을 해?! 마스크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핵 마피아들과 뭘 해보겠다고...ㅉㅉ 가는 곳마다 무식이 줄줄 새나온다. 무식의 지평선을 열고 있네!"
연일 탈원전 반대 행보에 나서고 있는 윤 전 총장은 카이스트에서 원자력공학 전공생들에게 "원전은 국민산업 경쟁력과 국민 삶에 너무나 깊은 영향을 주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간의 검토와 국민적인 합의를 거쳐서 진행됐어야 하는 정책"이라며 "이런 무리한, 그리고 너무 성급한 탈원전 정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윤 전 총장은 앞서 지난 5일에 서울대를 찾아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만나서는 정치 외압으로 자신이 사퇴했다며 대권도전의 계기가 됐다고 강변했다.
그는 "총장직을 그만두고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월성 원전 자체와 직접 관련이 있다"라며 "월성 원전 사건이 고발돼서 대전지검이 전면 압수수색을 진행하자마자 감찰과 징계 청구가 들어왔고, 어떤 사건 처리에 대해서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라고 주장했다.
'총장 재임 시절에도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느냐'는 질문에 "그 당시까지만 해도, 배당해서 일할 때만 해도 탈원전(과 관련된) 인식은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도 "저도 공직자이고 정부 정책에 대해 막연하게 큰 생각이 없었는데 그 사건을 지휘하면서 보니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무리하게 추진됐구나"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고, 산업부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의 이 같은 발언은 수사 지휘 단계에서 수사 대상 혐의를 벗어나 탈원전 정책 자체에 대한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수사를 지휘했음을 사실상 자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월성원전 조기 폐쇄 검찰수사 외압이 검찰총장직 사퇴 계기라는 윤 전 총장의 주장을 맹비판했다.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는 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월성 원전이 총장직을 중도에 사퇴하고 대선에 뛰어들어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만큼 중요한 문제였는지 의문"이라며 "많은 국민은 대선 출마를 위한 알리바이가 아니었는지 의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월성원전 조기 폐쇄에 대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라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법원의 판결과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한 것 뿐이다. 이 사안은 마치 검찰이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제 식구 감싸기로 모른 척하며 출국을 막은 절차만 따지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라고 받아쳤다.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며 "윤 전 총장은 대권주자로서 말 한마디의 무게를 깨닫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발언을 해라. 프레임 씌우기와 여론 오도 그만하고 이제 비전과 대안 제시에 집중하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당시 감사원 감사의 핵심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444건의 문건을 삭제했다는 것이었다"라며 "그런데 삭제된 문건의 상당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된 문서이고 또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원전 추진 자료가 대부분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당시 검찰은 공소장에 공무원들이 감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및 가동중단과 관련된 파일을 삭제했다고 기재했다"라며 "검찰 스스로 진실은 숨긴 채, 권력형 비리로 단정 지어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감사원의 판단을 넘은 수사를 단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수사', '검찰권 남용'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취재진에 "윤 전 총장 본인이 지금 수세에 몰리다 보니까 정치참여에 대한 명분도 없고 중립성 (문제가 되자) 나온 알리바이가 아니냐"라고 힐난했다.
양이원영 무소속 의원은 SNS를 통해 "윤 전 총장이 마지막까지 월성1호기 폐쇄 관련 수사를 직접 지휘했던 이유가 더욱 선명해진다"리며 "검찰총장 권력을 앞세워 국정과제인 에너지전환정책을 표적 수사하고 대선에 이용한 것 아니냐"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