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소수의 한국 활동가들과 미얀마 활동가들은 미얀마의 군부독재를 규탄하며 거의 매주 시위를 진행했다. 당시 무리 중 한 명이었던 필자도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아웅산 수치여사의 가택연금 해제를 소리높여 외쳤으나 큰 희망을 갖긴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15년 아웅산 수치여사가 이끄는 NLD 정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53년간 이어온 군부독재는 막을 내린 듯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바랐던 국내외 시민들과 활동가들은 열광하며 희망에 부풀었다.
2016년과 2017년 미얀마에서 벌어진 로힝야족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작전과 인권침해는 인류사에 기록될 최악의 비극이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집단 살해되고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했으며 영유아들도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 불과 몇 개월만에 100만 명에 가까운 로힝야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최빈국 방글라데시 국경 부근에 머물러 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는 이를 인종청소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 규정하며 난민보호와 진상규명을 미얀마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는 침묵과 무대응 더 나아가 로힝야족의 인권탄압 자체를 부인했다. 국제사회의 진상조사 방문도 거부하고 사고지역의 접근을 막으며 외부로부터 오는 인도주의 구호마저 막았다. 국제사회의 신망을 받았던 아웅산 수치는 소극적 침묵자에서 적극적 가해자로 변해버렸다. 지금도 로힝야 난민의 강제송환을 추진하며 로힝야의 비극에 가담하고 있다.
2013년 3월 미얀마 중부 인구 40만 규모의 도시 메이크틸라에서는 도시에서는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집단학살이 발생하여 단 3일만에 100명이 넘는 사망자, 1300채 이상의 가옥 전소, 1만3000명의 피난민을 낳은 끔직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폭력과 광기에 휩싸였던 메이크틸라는 우리내 역사 속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인 학살, 제주 4․3학살과 그 모습이 유사했다.
이 사태가 최고조에 달했을때 거의 700명이 넘는 메이크틸라 무슬림은 칼과 무기를 든 가해 집단을 피해 밤중에 도시 외곽의 야다나우 사원으로 피신했고 사원의 주지스님인 우친페인 스님은 그들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리고 무슬림의 피신소식을 들은 가해집단은 야다나우 사원으로 쳐들어가 주지스님인 우친페인 스님에게 당장 무슬림들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에 우친페인 스님은 "나를 죽이지 않고는 절대 내어 줄 수 없다"라고 단언하며 당신의 목숨을 걸고 피신한 무슬림을 보호했다. 그리고 더 많은 무슬림들이 이 사원에 피신하여 1000명에 가까운 무슬림들이 살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와 같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친페인 스님은 현재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가 메이크틸라 평화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메이크틸라평화도서관' 사업에 함께하며 사원의 땅 일부를 도서관 부지로 흔쾌히 기부해주셨다.
미얀마에서 들려오는 로힝야의 소식은 평화로운 불교국가에서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끔찍하고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때 국제 민주주의 연대운동의 정점이었던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 인권탄압 사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여전히 미얀마 내 반로힝야 반무슬림정서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미얀마 내부에서 우친페인 스님처럼 종교(이슬람/불교)를 넘어서 생명의 위협을 피해 자신에게 피난온 이들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2008년 미얀마 활동가와 함께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외쳤던 여러 사람들에게 현재 미얀마의 모습은 절망일 수도 희망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