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처에서 빈부격차를 조장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의 악랄한 횡포가 나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했습니다."
진보주의 신학자 문동환 목사가 지난 9일 별세했다.
98세를 일기로 소천한 故 문동환(98) 목사는 '떠돌이'를 자처했다. 마지막까지도 사회적 약자들보다 성장주의에 매몰된 한국 개신교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던 삶을 살았다.
문 목사는 이 자서전에서 "그들 민중 대부분은 아직도 현재의 제도 안에서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고 애쓸 뿐이다. 새 역사의 주인공은 현재의 제도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떠돌이"이라면서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떠돌이 신학을 추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펴낸 '문동환 자서전'(삼인)의 부제도 '떠돌이 목자의 노래'다. 고인은 성서에서 "하느님이 고향에서 밀려난 떠돌이들을 부르셨다"며 “한국에서는 그들을 민중이라고 한다”고 정의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고인은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관점으로 역사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형인 문익환(1918~1994) 목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왔다. 형이 '통일 운동의 선구자'였다면서 동생인 문 목사는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었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부조리함을 역설했던 그는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으로 투옥과 대학교 해직·복직이 이어지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다.
지난 1988년에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 평화민주당 수석부총재 및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1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2013년 한국으로 돌아온 고 문 목사는 고국에서 밀려난 이주노동자들 삶의 근본적 원인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를 토대로 민중신학을 더욱 심화시켰다.
본래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도 강조한 그의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8시이며, 정오에 한신대에서 하관 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