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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형의 기업에세이] 재벌 유죄론(1)..
경제

[박종형의 기업에세이] 재벌 유죄론(1)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19/03/15 08:58 수정 2019.03.15 09:06

언젠가 법원이 한 재벌그룹 총수에게 내린 선고 내용을 들으면서 너무나 개탄스러워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형량이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원이라니, 세계적으로 기업 역사상 어느 기업인이 그런 중형을 받은 적이 있을까 의문이다. 20조원 대의 분식회계를 했고, 10조원 가까운 사기대출을 했으며, 회사 돈을 훔쳐 축재한 재산을 해외로 도피 시켰다는 그 죄목 또한 기업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주 더럽고 부끄러운 짓이었다.

재벌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은 보통 부도덕한 기업인의 전형처럼 비판의 단골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회가 자본주의를 택하고 대기업이 경제의 중심이 되어 모두가 부자 되기를 애쓰는 데도 부자 기업인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정권이 바뀌어 개혁의 새 바람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재벌은 예외 없이 그 대상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논란되고는 한다.

오죽하면 그러한 사회정서를 반자본주의적인 현상으로 우려하는 식자의 목소리까지 나왔겠는가. 자본주의의 원리나 기업의 본질에 대해 무지한 촌부村夫까지도 재벌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는 이유란 간단하다. ‘돈을 벌되’ 장수가 수많은 병사의 희생으로 승리한 장수가 되듯 종업원의 피땀을 제물삼아 눈물과 원망이 섞인 돈을 벌고, ‘돈을 소유하되’ 장수가 전공을 독차지하듯 그것을 정당하게 나누려 애쓰기보다는 개인 치부에 더 골몰하며, ‘번 돈을 쓰되’ 장수가 사치스러운 장식을 한 기름진 말에 높이 올라 앉아 기고만장하게 승전행진을 뻐기듯 일신의 공명과 행세를 위해 물 쓰듯 돈을 쓰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인《史記列傳》에 <부자> 정의하기를 ‘진정한 부자란 공을 들여 기술을 축적하고, 정성들여 일하며, 훌륭한 인재를 모아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부자를 일컬음이다.’라고 했다. ‘공을 들여 기술을 축적한다.’는 것은 부단히 창조적인 제품과 기술을 개발한다는 의미이고, ‘정성들여 일한다.’는 것은 피땀 흘려 노력한다는 뜻이다. ‘훌륭한 인재를 모은다.’는 것은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협동해 경영한다는 뜻이며,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사회가 필요로 하고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제품을 생산, 공급하는 기업의 역할을 정당하게 이행해서 이익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공을 들여 기술을 축적하지 않고 권력에 편승해서 사업을 하고, 별로 피땀을 흘리지도 않고 큰 이익을 취하며, 사람을 머슴쯤으로 여기고 부려 그들의 불만이 산처럼 쌓여도 나만 부자가 되면 그만인 기업인이란, 당당한 부자나 좋은 기업인이 아니다. 비천한 부자요 존경받을 수 없는 천민 기업인일 뿐이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현대처럼 기업의 역할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때에 대기업의 부실경영으로 초래되는 문제란 가히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큼 그 충격이 심대하다. 따라서 대기업의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따져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보위의 책임이 비단 튼튼한 국방에만 있지 않고 견실한 국가경제의 유지, 운영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 한 대기업의 도산은 대사건이다. 휴전선에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산업전선에 이상이 있고서는 구가의 존립이나 국민의 삶이 온전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한 대기업이 도산하면 수백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종업원이 실직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고, 빼앗긴 전장에 패전의 고통과 슬픔이 넘치듯 가정과 사회에 엄청난 불행과 고난이 닥친다. ‘대마부도大馬不倒’, 대기업은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가 통했던 시절에는 ‘유전무죄有錢無罪’라서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여전히 부자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불의가 통할 수 없게 되었다. 패장이 패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속죄 하듯이 부실경영으로 도산시킨 기업주는 설사 자결하는 방법으로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소유한 모든 재산과 권리를 뒤처리를 위해 내 놓고 무일푼으로 물러나야 한다.

망한 기업의 기업주가 더 이상 부자일 수가 없고 알거지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고 책임을 지는 자세다. 그 맥락에서라야만 정당하게 벌어 부자가 된 기업주를 존경할 수 있는 것이며, 정당한 부자가 자유스럽고도 당당하게 부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산한 기업주가 재산을 은닉해서 계속 부자로 살기를 꾀했다면 그는 기업을 말아먹고 수많은 종업원들을 불행에 빠트린 죄에다 도덕적 타락이라는 오명까지 덧붙여지는 것이다.

재벌 또는 재벌 총수가 어느 경우 유죄인가는 간단명료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기업을 도산하게 만들면 일단 유죄다.
거기엔 변명과 이유나 그 어떤 면죄부도 있을 수 없다.  도산으로 인한 종업원들이 치르는 희생과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정상참작은, 그 부실한 기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높고 회생시킬 가치가 있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 단죄함에 있어 시장원리에 무지한 어쭙잖은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경제혼란보다 훨씬 심각한 가치혼란이 야기된다. 

기업이 망하면 어김없이 책임져야 한다는 불문율이 확고하게 정립돼야 평소에 항상 바르고 합리적인 경영에 힘쓰는 경영 풍토가 정착될 수 있다. 아니면 재벌이 기업을 사유물처럼 여겨 경영을 전단하고 기업 이익으로 개인 치부나 일삼아 기업을 망치는 독단경영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탐욕의 손으로 기업을 소유경영하며 실컷 주무르고 단물 빼먹다 빚더미에 올라앉고서는, 망하게 생겼으니 살려 달라 개기면 어김없이 정권마다 무슨 구국의 사도라도 되듯이 나서 그 턱없이 푼푼한 오지랖을 휘둘러 기업 살리기 선심판을 벌이는데, 바로 그런 졸렬한 재벌정책이 대기업(주)들을 백년하청 저 한심하고 무책임한 꼴로 만든 것이다.

기업을 부실화시켜 거기 종업원들을 실직자로 만들고 가정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큰 죄다.
거긴 그들의 외경한 생존이 걸린 터전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위태롭게 만들 수 없으며, 그런 원리와 가치를 뛰어넘는 것이란 기업에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거긴 그들의 희망이 설계되고 자라며 실천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런 희망을 고사시키거나 짓밟는 것은 절망을 안기는 배신이고 유린이다. 그들이 절망하고 방황할수록 가정과 사회가 불안해지며 국가의 장래가 암담해 진다.  기업의 중추를 이뤄 장차 기업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사원들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은 기업을 망하게 만드는 일로 큰 죄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전적으로 그들한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의 개인적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든 천박한 독단경영 때문이든 저들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르고 꾀이고 충동질해서 비자금을 훔치는 짓 등 부정비리의 전문 하수인으로 부리는 것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물론 기업에 부정부패라는 골병을 들게 만드는 해악이다.
저들이 타락하고서는 비전은 무용하며 투명경영이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된다는 의미며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기업에 망조를 들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주체니 가신그룹이니 측근이니 하는 부정 하수인들은 은연중에 ‘사주 라인’이라는 파벌을 조성하게 되는데, 그들이 그런 아성을 철옹성으로 만들수록 공정한 인사가 왜곡되고, 맥크로피지(유익한 항균세포)형 사원들이 사라지게 만들며, 신뢰체계가 무너져 회사 사랑이 메마르게 만든다. 
그런 유의 사원들이란 ‘가치 있는 고품질 사원’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이 새로 거듭나기 위해 경영혁신을 단행하거나 위기에 처할 경우 소극적이거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사원들로는 저 치열한 인재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으므로 결국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든다.

재벌 또는 재벌 총수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정치인이나 관리를 이용하느라 부패시키는 것은 큰 죄다.
정치는 어느 경우든 올바르고 공평해야 하고, 관리는 그런 정치원칙을 따라 민주적이고 정직하며 능률적으로 공무를 집행해야 훌륭한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바르게 정치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발전이나 국민의 행복한 삶이란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와 관리의 질이 어떤 수준인가는 국가와 사회, 가정과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특히 기업한테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런 정치인이나 관리를 부패시킨다는 것은 바로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망가뜨리는 해악이다.  그런 부패의 손이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정경유착’인데 그것에 유혹당한 기업치고 부실이라는 병이 들거나 망하지 않은 데가 없다. 그럼에도 정경유착의 뿌리는 정권마다 아무리 선명과 정의를 표방하며 휘두르는 개혁의 칼로도 좀처럼 제거되지 않고 있으며 정권과 정치인들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여전히 얽매고 있다.

재벌이 공직사회를 부패시킨다는 것은 나라를 병들게 만들고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며 사회정의를 짓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직자를 부패시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어 국기國基를 위태롭게 만드는 건 일종의 반역이다.   
재벌그룹 총수들이 공직사회를 부패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부메랑을 날리는 것과 같다는 이치를 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답답한 일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기업이 은밀하게 쥐어주는 뇌물에 맛 들여 부패하게 되면 청렴한 공직자로 일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공직사회에 부정부패의 고리가 일단 박히면 그것은 갈수록 단단해지고 그 뿌리가 깊어져, 기업은 점점 더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힘들게 되고, 급기야 훨씬 더 사악한 날을 세운 채 되돌아 온 부메랑에 제대로 비명도 지를 사이도 없이 어마지두 치명상을 입게 된다.

구약성서《욥기》에 역경에 처해 고통당하고 있는 욥에게 친구인 엘리바즈가 충고한 이런 말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게, 죄 없이 망한 이가 어디 있으며, 마음을 바로 쓰고 비명에 죽은 이가 어디 있는가,  내가 보니, 땅을 갈아 악을 심고 불행의 씨를 뿌리는 자는 모두 그 심은 대로 거두더군.” 
재벌그룹 총수들이 정권마다 빠짐없이 당하는 형벌과 치욕과 불명예라는 불행이란 게 다 그들 스스로 알게 모르게 공직사회에 뿌린 부정의 씨앗이 자라나 맺은 열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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