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까지 서구유럽에서는 당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자유방임주의에 의거하여 국가는 최소한의 치안과 국방만을 담당하는 야경국가로 남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세계1차 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세계1차 대전 중 영국정부는 전시물자의 효율적인 동원을 위해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연이어 대공황이 발생하자 케인즈주의를 받아들여 없는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까지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시작했다. 영국정부의 그런 적극적인 개입이 진행되면서 자유방임주의의 신화는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다시 세계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승전을 위해 보수당과 노동당이 힘을 합쳐 거국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Richard Attlee, 1883~1967년)를 비롯하여 노동당 출신 인사들은 내각입각을 계기로 평소부터 강하게 주장해왔던 복지국가수립을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요구했고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49~1895년)과 보수당 역시 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당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942년 런던정경대 교수이자 노동부차관이었던 베버리지(William Henry Beveridge, 1879~1963년)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보험과 관련서비스(Social insurance and services)에 관한 위원회”를 수립하게 되었다.
베버리지는 당시 영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빈곤, 질병, 무지, 나태, 불결”이라는 다섯 가지의 산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보고서에 의하면 빈곤의 원인은 노령, 해고, 질병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소득부족이라고 보았다. 소득부족에 의한 생계곤란은 사회적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말은 이 베버리지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유럽선진국들은 국가가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하여 모든 국민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이 한 마디를 사회보장제도의 최고목표이자 이상으로 여기고 사회복지정책의 교과서로 삼아왔다.
실제로 1942년 12월 2일, 마침내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표되자 예상대로 국민들은 보고서의 내용을 전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언론 역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1944년에는 영국자유주의를 상징하던 구빈법이 철폐되고 장애인 고용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처칠 내각과 보수당 인사들은 전시상황을 이유로 베버리지 보고서의 즉각적인 이행을 거부하고 그런 개혁은 전후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 것이며 몇몇 비현실적인 공약들은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제동을 걸었다.
보수당 내각의 그런 소극적인 태도에 반발한 국민들은 1945년의 총선에서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Richard Attlee)가 이끄는 노동당의 손을 들어줬고 애틀리 내각은 집권과 동시에 의욕적으로 사회보장정책 수립에 착수하여 가족수당법(1945년), 국민보험법(1946), 국민산업재해법(1946), 국민보건서비스법(1946), 국민부조법(1947), 아동법(1948) 등, 많은 사회보장제도를 법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러나 시대상황을 역행하는 정책은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1973년과 1978년에 야기된 제1,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밑 빠진 독처럼 국가재정을 한 없이 축내는 복지정책은 더 이상 실행될 수가 없었다. 그런 시대상황은 국민들로 하여금 복지정책을 강조했던 노동당 대신 다시 성장우선을 강조하는 보수당을 지지하도록 했고 그 결과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집권하면서 자유주의노선을 부활시키게 되었다.
미국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지금 세계경제는 관세전쟁과 환율전쟁이라는 신(新)냉전체제로 돌아서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는 그 신냉전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은 후퇴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국민실질소득은 자꾸만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저임금인상은 물론이고 복지정책을 계속 늘리겠다고 야단이다. 영국국민들이 40년전 노동당의 복지정책에 반기를 들고 보수당의 대처정권을 선택했던 그 역사를 우리 정부는 얼마나 가슴깊이 새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국민은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그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이를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벌어서 최대한 골고루 나누어 쓰자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까먹더라도 무조건 나누어 쓰고 보자는 주장은 나라를 말아먹자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 잊지 마시라. 나라를 송두리째 말아먹는 그런 생각을 가진 당신은 평화시의 매국노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오늘의 이 땅에는 매국노완장을 찬 자들이 너무 설쳐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