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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멈출 수 없는 도전과 경쟁..
오피니언

[기업에세이] 멈출 수 없는 도전과 경쟁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19/05/10 17:24 수정 2019.06.11 09:42

도전과 경쟁을 하지 않는 기업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을 멈추면 기업은 희망과 활력을 잃게 된다. 또한 무수한 기업을 망치는 것도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경쟁이다.

상식적으로 미꾸라지의 평화로운 삶은 포식자인 메기가 없어야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메기와 어우러져 끊임없이 잡아먹힐 위험 속에 살고 있는 미꾸라지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훨씬 민첩하고 강하며 번식력이 높다고 한다. 메기의 마수를 피해 살며 잡아먹히는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새끼를 계속 낳아 기를 수 있는 힘은 ‘번식에의 부단한 도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저들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경영이란 게 사실 도전과 경쟁의 연속이므로 기업은 크던 작건 끊임없이 도전하기 마련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고 세운 성공 목표를 향해 투자라는 출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시장개척에 도전한다.  최고의 신기술과 신소재, 신제품의 연구개발에 도전하는가 하면, 보다 좋은 기업 만들기에 함께 도전한다. 신선한 신념과 강한 결의, 열정적 추진력과 든든한 행동 등의 활력소로 만들어진 도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명난다.

부실한 기업들을 보라. 거기엔 신선하고 힘찬 활력이 없다. 가치 있는 창조에의 도전은 위대한 것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 라이트형제의 비행, 충무공의 기적 같은 명랑대첩의 승리, 벤처의 성공모델인 실리콘밸리의 한 세기 가까운 건설 등 인간이 시도한 도전은 인류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회자될 위대한 장을 만들었다.

사자들이 지키고 있는 길목을 지나고 악어들이 숨어 기다리고 있는 강을 건너서라도 세렝케티 평원을 향해 먼 장정에 나서는 누 무리의 도전은 풍요로운 초원에 가기 위해서다. 

ⓒ 게티이미지뱅크

기업마다 꿈꾸는 초원이 있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무수한 위험과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사자 같은 포식자 대기업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누 같은 처지의 소기업은 결사적인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 

자기 고유한 어느 영역에선가 최고가 되거나 전문분야 신기술제품의 개발과 고유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다. 소수 인력에 의한 기술집약적인 높은 생산성으로 탐욕스럽고 막강한 대기업에 예속되지 않는 것이다.
현대는 협동화시대이므로 고도의 핵심기술을 소유한 협력업체 소기업이 대기업의 급소나 아킬레스의 건腱일 수 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창조에의 도전이야말로 소기업에 있어 생존과 발전의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도전은 무모하면 화근이 되며 가치 있는 신념에 입각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세상에 널린 것이 시장이라 경쟁력이 약한 상품으로 수출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도전하는 것은 오산이다. 차입경영으로 재벌왕국을 건설하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던 기업가지고 치욕스러운 부실 늪에 빠지지 않은 기업이 없으며, 자주 자조적인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경영혁신이나 연구개발에 무관심한 채 적당히 경영하며 눈앞에 보이는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기업들 치고 바깥에서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칠 때 무사한 기업이 없다.

도전은 무모하면 무모할수록 그 실패한 상처가 크고 치명적이며, 일관성이 결여되면 될 수록 그 성공확률이 떨어진다. 라이트형제가 최초의 비행을 성공시킨 비행기를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은 심지어 당시 최고 권위의 과학자마저 성공을 비웃었지만 그들이 도전을 중단하지 않아서였다.

도전은 중간에 멈추면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도전이 중단되면 기업 곳곳에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무력감, 안일무사주의, 나태, 적당주의 등 비 생산적인 곰팡이가 쓸 게 된다. 도전은 새것을 찾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썩고 망가진 상처에 새 피를 돌게 하고 새 살을 돋게 하므로 부단하게 계속돼야 한다.

도전에는 용기와 여러 가지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여 기업 형편이 좋을 때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전은 경영활동에 산소를 공급하는 숨쉬기와 같다고 여겨야 한다.  도전은 절대로 어떤 구호나 운동으로 시도해서는 안 된다. 도전은 비록 그 추상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구상단계서부터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합리적이며 장기안목 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거나,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메기와 미꾸라지가 과 번식을 두고 생존싸움을 하는 것처럼 기업도 치열한 경쟁을 하며 공존하는데 어떤 기업은 발전하고 어떤 기업은 망한다. 경쟁은 발전의 필수 절차다.  경쟁하지 않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이나, 남보다 앞서 가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기에게 잡혀 먹혀도 미꾸라지의 생존이 소중하게 이어지는 것은 메기가 필요로 하는 먹이의 수보다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기업의 발전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도산하는 기업보다 더 많은 창업에의 도전 때문이다. 창조적 도전자는 미리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망한 기업은 경쟁에 졌거나 창조적 도전을 게을리 한 기업이다. 존재할 능력과 가치가 있는 기업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섭리인 것이다. 

기업이 치르는 유형무형의 경쟁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밖에선 기업끼리 시장에서 판매와 시장점유를 다투고, 입찰 장소, 은행, 관청은 물론 심지어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조차도 돈 드는 황금시간대의 광고를 경쟁한다.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도 결코 밖의 그것 못지않다. 원가경쟁에서 지면 판매경쟁에서 질 것이므로 한시도 생산성 향상의 고삐를 늦출 수 없으며, 제품의 품질과 기술 경쟁에서 밀리면 성장 발전이 둔화될 것이므로 끊임없이 첨단 기술과 신제품 개발 경쟁에 매달린다.

선의의 경쟁일 뿐이지 기업 내부 또한 경쟁마당이고 인간관계도 경쟁관계 그 자체다. 부서는 경영목표의 달성에 도전하며 부서 간에 성과달성을 경쟁하고, 영업사원은 서로 판매실적을 다투며, 공장에서는 항시 작업 단위별로 최대 생산량과 결의 최소화를 경쟁한다. 중역과 간부는 업적을 경쟁하며 사원은 해마다 한두 차례 승진승급 경쟁을 치르느라 애환이 교차한다.

그처럼 기업에선 모두가 상부상조하는 협동 자이자 선의의 경쟁자며 유능한 부하란 무서운 도전자이므로 상하관계 역시 도전과 경쟁관계라 할 수 있다. 기업이 본질적으로 경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경영이 시간의 사용방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획의 작성, 모든 보수와 원가의 계산, 경영성과와 영업실적의 평가 등 어느 것 한 가지도 시간과 무관한 게 없다.

시간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경영의 성패는 ‘시時 테크’라는 ‘시간경쟁’에 달려 있다. 그런데 경쟁은 아무리 선의로 벌인다 해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서로 상처를 입고 입히기 마련이다. 특히 시장경쟁에서 지는 경우 그 상처는 기업의 부실화나 도산으로 덧나기 쉽다. 그러므로 경쟁에 대한 생산적인 철학과 의식이 필요하다.

기업은 본시 창조적인 도전과 선의의 경쟁을 장려하게 돼 있다.
도전 받지 못하는 상사는 이미 무능한 것이며, 선의의 경쟁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동료는 함께 손잡고 싸울 전우가 아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기업을 위태롭게 만들거나, 동료가 땀 흘려 성취한 경영성과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훔칠 안일무사주의자일 뿐이다. 

메기의 도전이 있어야 미꾸라지의 살이 오르고 메기의 살의에 찬 눈초리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번식의 소임을 너끈히 해낼 수 있듯이 기업에서도 상하좌우로 도전 받고 경쟁해야 조직이고 개인이고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에 필요하고 유익한 도전과 경쟁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도전이 가치 지향적이어야 하고, 경쟁이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기업 내부 조직 간이나 구성원 간에 정당한 도전이 아닌 중상모략이 횡행하고 가치 있는 경쟁이 아닌 암투가 심해 갈등과 불화를 빚는 것은 도전과 경쟁의 참뜻을 저버린 탓이다.

의롭지 못한도전은 ‘부도덕한 흉기’일 뿐이며, 공동체 질서와 규범을 무시한 정당치 못하고 비생산적인 경쟁은 더러운 공명다툼에 불과하다. 메기는 물밑세계에서 결코 미꾸라지의 씨를 말리려 들지 않으며, 사자는 가젤 무리 가까이 살면서도 그들이 생존을 의존하는 초원을 가로막거나 물웅덩이를 독차지하는 법이 없다. 원시적으로 사는 부시맨조차도 물가엔 결코 덫을 놓지 않는다. 그건 공존공생의 질서를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이치인 것이다.

기업이라고 다를 게 없다. 기업의 경쟁관계도 따지고 보면 정교한 구조로 된 일종의 먹이사슬을 따라 경쟁하며 공존하게 되어 있다. 도매상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유통의 다리를 놓는 중개의 대가로 생산자 몫의 이익을 유통마진으로 차지하고, 소매상은 소비자의 수요라는 필요를 이용해 이익을 사냥한다. 대기업은 소기업의 제조마진을 납품을 통해 득보고, 주문생산방식이라는 당근으로 협력사의 노동부가치를 헐값에 사들여 이익을 불리며, 그 대가로 안정된 납품을 보장해 준다.  먹고 먹히며 빼앗고 빼앗기면서도 크고 작은 기업들이 그렇게 저렇게 거래관계를 맺고 상부상조하며 공생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탐욕 때문에 경쟁의 질서나 윤리, 균형성을 짓밟고 시장을 독점하며 약육강식 방식의 경쟁만을 일삼는다면 시장은 혼돈 속에 빠지고 힘없고 작은 기업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에 있어 인간이 모여 운영하는 조직 중에 가장 그 역할이 중요하고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력하며 기능이 뛰어난 법인격을 소유한 기업이, 하찮은 동물만큼도 균형과 조화를 통한 공존공생의 이치를 따르지 못한다면, 인간사회는 동물세계만도 못한 평화유지조차 어려울 것이며 비극적인 불행을 부르게 될 것이다.

벌써 그 조짐은 이익 위주의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경쟁에 의한 자원고갈, 환경파괴, 노사대립 등의 매우 심각한 부작용으로 나타나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경쟁하되 이기기 위주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업이 존재하는 한 경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므로 영원한 승자란 없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도 승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새로운 도전을 채비하고 있는 경쟁자가 곳곳에 무수하다. 도전은 개인에게 내재하는 모순과 불합리, 나태와 무력함 같은 비생산적 결함의 혁신을 먼저 겨냥해야 하며, 부단한 자기혁신으로 기른 가치 있는 힘을 추진력 삼아 체제적 불합리와 비능률 등 경영개선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기업이 이상으로 삼을 가치가 있는 미래 건설을 위한 창조적 도전에 나서야 한다.
경쟁의 희생은 반드시 더 가치 있는 경쟁으로 승화시키는 제물이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도전과 경쟁의 미덕을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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