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이면서도 은근히 경쟁관계인 A부인이 B부인 집에 놀러갔다가 최근에 들여놨다는 멋진 신형냉장고를 보게 되었다. 그미는 그만 샘이 나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그미가 느닷없이 남편한테 냉장고를 바꿔야 하겠다고 생뚱맞게 세간이 후졌단 타령을 늘어놨다. 그게 도화선이 돼 부부가 언쟁을 벌였고 그날의 유일한 마지막 단란은 썰렁하게 식어버렸다.
아내가 찌른 욕망의 칼이 낸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욕망의 뿌리에 가 닿자 잠재웠던 불만이 머리를 쳐들었다. 갈수록 일은 고된 데 대체 월급은 언제나 두 자릿수로 오를 것인가 애면글면 유지되고 있는 가계가 새삼 서글펐다. 결국 아내의 욕망에 대한 연민을 이기지 못한 남편은 무리해서 새 냉장고를 사 주었다. 아내의 샘 때문에 가뜩이나 쪼들리는 가계의 허리가 더 휘게 되었다.
이른바 과시욕이라는 그놈의 ‘시위효과’가 저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런 식으로 욕망이 무리하게 분출되면 어떤 경로로든 기업에 나쁘게 작용한다. 저 사원은 노사 간 임금협상 때 틀림없이 회사 형편을 외면한 채 노조 측을 지지할 것이다.
하여, 기업에 있어 욕망관리가 긴요한 세 번째 대상으로 종업원과 그 배우자를 꼽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의 욕망관리가 기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데 반해 저들 스스로 기업 형편에 알맞게 욕망을 조정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
저들이 흔히 품어 키우게 되는 욕망은 그 대부분이 삶의 터전인 기업에 관련된 것들이다. 해마다 보수가 올라간다든가, 복리후생이 좋아진다든가, 근로환경과 조건이 향상된다든가, 장래에 대한 발전전망이 더 장밋빛이 된다든가, 정년까지의 안정된 근무가 더욱 공고해진다든가, 승진승급의 가능성이 더 증가한다든가, 퇴직 후의 노후설계를 위한 회사의 지원이 더 다양하게 확대될 전망이라든가 하는 희망적 전망을 품는 욕망들이 그런 것이다.
사실 저런 욕망이란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월급쟁이의 소박하고도 절실한 꿈이고 희망이다. 평사원이 기업주처럼 치부의 꿈을 꿀 것도 아니고 간부들처럼 별을 달고 경영진으로 비상하는 영예를 거머쥘 것도 아닐 진데 열심히만 일하면 정년까지 가정을 건강하고 유족하게 유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그 어느 이상보다도 현실적이고 건전한 것이다.
기업 안에서 계층 간에 갈등하고 불화를 빚게 만드는 문제들의 진원지라는 게 놀랍게도 다 저런 욕망들과 관련돼 있다. 땀 흘려 일한만큼 보수를 받지 못한다든가, 한 가족이라면서 가족답고 인간답게 대우해 주지 않는다든가, 민주경영을 한다면서 다수인 평사원들 여론을 수용해 경영에 반영하지 않고 독단경영을 일삼는다든가, 열악한 근로환경과 복리후생의 개선에 너무 무성의하다든가 하는 불만이란 게 다 욕망에서 비롯되는데 때로는 회사 형편에 걸맞지 않게 과도해서 당초 욕망의 정당성이나 순수성마저 지탄 당하게 만들어 심지어 기업을 병들게 만들고 망치기도 한다.
종업원들의 비현실적인 욕망이 자칫 칼을 품으면 기업은 물론 자신과 가정까지 거덜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만큼 저들의 욕망이 가연성이 높고 파괴력이 강한데 비해 저들 욕망의 순화나 자제,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저들 욕망의 통제를 어렵게 만드는 다른 요인이 있다. 저들 배우자의 욕망이다. 그것들은 마치 점화력이 센 불쏘시개 같다.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데 반해 그 실체를 알기가 어렵고 매우 다양하며 변화무쌍하다. 문제인 것은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 발전하는데 종업원 가정의 평화와 호응이 아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저런 욕망에 대해 무력하다는 사실이다.
더 문제인 것은 가정의 기업실정에 대한 몰이해와 기업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렇게 욕망의 밭이 척박하면 좋은 기업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종업원만족경영’이라든가 ‘회사사랑’이라는 꽃은 결코 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업원의 욕망관리는 개인 스스로뿐만 아니라 회사차원에서나 가정차원에서 회사실정에 걸맞게 항상 조정되고 관리되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 건실한 사원과 가정은 좋은 회사로 발전하는데 매우 긴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