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 흘려 돈 버는 기업에 낭비가 심하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낭비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경영은 일종의 시간게임이다. 경쟁의 중심축이 원가에서 품질과 유연성을 거쳐 이제는 ‘시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지금의 경쟁전략은 제품의 제조로부터 유통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속도 화를 겨냥한 ‘시간경쟁전략’이 그 중심이 되고 있다.
기업의 조직이나 제도, 절차, 계획 등을 보면 모든 경영활동이 시간을 기준삼아 그 가치를 저울질해서 경영성적표인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평가하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시간은 곧 돈이며 가치의 척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에서 가장 푸대접받는 게 시간이다.
생산과정에서 조업도가 떨어진다거나 자재 손실이 나면 당장 문제로 삼지만, 결재자 책상에서 결재 서류가 아무리 낮잠을 자도 문제되지 않는다. 경리부서에서 그날의 입출금 현황을 일계표로 작성할 때 단 돈 몇 천원이 비어도 난리가 나는데 부서장이 사우나를 하고 늦게 돌아옴으로써 업무와 무관하게 허비된 몇 시간의 가치는 어느 누구도 따지는 법이 없다. 공장에는 분초를 다투는 생산의 구호를 예사로 내걸어도 각종 회의를 생산계획처럼 분을 아껴 운영하는 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경영성과가 시간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인식은 현실적으로 매우 박약한 것이다.
기업에는 시간의 통로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데 마치 땅속에 묻힌 수도관이 낡아 뚫린 구멍으로 물이 새 나가 듯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시간이 줄줄 새 나가고 있다. ‘시간은 금’이라 하면서도 시간을 아끼려는 시도는 아주 소홀하고 그 장치 또한 엉성하기 짝이 없다.
시간경쟁전략으로 경영효율을 극대화해도 여러 가지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여건 때문에 경영의 장래가 불안한 시대에 상하가 하나같이 시간을 예사로 낭비하고서는 절대로 경쟁력을 높일 수 없는 것이다. 경쟁의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한 ‘물류전쟁’만 해도 시간 전쟁이다. 물류비용을 아끼려면 시간운영을 체계화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연공서열제도가 무너지고 있는 차제에 사원의 일생조차도 시간 전략에 의해 그 그림이 달라지 게 되어있다. 무계획하게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고서는 출세는 고사하고 살아남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닥친 것이다.
기업에 뿌리 깊은 다른 낭비벽은 ‘비용의 낭비’다.
기업의 비용은 동전의 다른 한 면과 같은 기업 이익이므로 비용을 낭비하는 것은 곧 이익을 버리는 것이다. 이익을 비용으로 쓰는 데는 ‘경제적 효과의 최대화’라는 윤리와 책임이 따른다. 그것이 땀 흘려 번 기업 이익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성과 책임성이기 때문이다. 땀 흘려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땀 흘리지 않고 남의 땀 흘린 성과를 차지하는 것은 부당한 짓이다.
근로자는 규정이 허용하는 시간 내에 점심을 먹고 작업개시 신호에 따라 어김없이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데도 중역은 식당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마티니를 홀짝거리며 잡담을 즐길 수 있다는 따위의 유별한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투자해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부당하게 비용으로 낭비되는 것은 일한 사람 몫의 이익을 미리 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형편 좋은 기업의 사장이 명분이야 어떠하던 골프 치는데 열 시간을 소비하고 홀인원을 했다 하여 회사 돈으로 수천만 원짜리 기념식수를 하였을 경우, 그는 수십 명 근로자의 한 달 치 임금에 맞먹는 비용에다 결제를 미룬 시간의 금전적 가치를 보태 이익을 낭비한 셈이 된다.
법인 기업들이 매년 쓰는 접대비와 기밀비는 그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해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 타당성 여부에 상관없이 배당과 분배에 쓰거나 유보될 수 있는 이익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그 막대한 자금이 다 어디에 쓰였는지를 따지자면 이면에 숨어 있는 해로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사용자가 대부분 기업의 경영층과 간부라는 데 동의하기 어려운 정당성의 문제가 있으며, 그것이 권한이 대놓고 즐기며 타락을 부추기는 독일 수 있고 종종 관리와 이면거래자들을 매수하는 부정한 뇌물로 둔갑하기 일쑤라는 데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다.
따지고 보면 비용의 낭비야말로 기업 평화의 적이라 할 수 있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뼈아픈 내핍이 지향하는 미래가치는 차원 높은 목적에 있다. 경영이 부실해서 대량 감원이라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설사 졸라맨 허리가 끊어진다 비명을 질러대는 한이 있더라도 비용을 절약해 되도록 많은 이익을 비축해야 한다. 거기에 비용의 미래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 돈을 내 돈처럼 아껴 쓰는 의식은 무형의 소중한 자산이다. 기업 형편이 나쁘면 금시 풀이 죽다가도 형편이 좋아졌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딴판으로 변해 비용 쓰기를 아까워하지 않는 절제의 나약성은 정신건강을 야금야금 해치는 독으로 기업이 심각하게 경계해야 할 적이다.
검소하지 않고 낭비를 일삼는 사원은 기업한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망치기 쉽다. 지금 가계는 급증하고 있는 빚지고 사는 월급쟁이들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 2백만 원도 안 되는 월급쟁이가 헤픈 씀씀이 때문에 수천만 원을 빚지고 산다면 그런 사원을 둔 기업은 매우 불안한 것이다.
눈 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을 뾰족한 방법이 달리 없음으로 결국 노조를 통한 임금인상이나 검은 돈 챙기는데 눈을 돌리게 된다.
낭비로 인해 사원이 곤경에 빠지고 도덕적 해이에 코가 꿰이면 기업은 속으로 서서히 곪는다. 그렇게 기업의 부실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낭비는 또한 사회적 기여라는 기업의 책임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짓이다.
기업은 밖으로 평화를 위하여, 환경보존을 위하여, 문화 창달을 위하여, 공익에의 기여를 위하여, 그리고 행복한 가계운영을 위하여 이익을 나누고, 기부하고, 출연하며, 후원할 수 있도록 이익을 벌고 비용을 아껴 써야 할 윤리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 기업을 통해 기업이 빛나고 종업원들이 신명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주는 막강한 경영권을 휘둘러 부정하게 이익을 챙기는 데만 골몰하고 사원은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듯이 온갖 구실 다 부쳐서 비용 쓰기를 일삼는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윤리의 실천은 요원하다.
낭비는 달콤한 독약이므로 중독되지 않도록 항상 절제하고 조심해야 한다.
시간과 돈의 낭비는 기업 이익을 갉아먹고 책임정신을 부패시키며, 말의 낭비는 업무효율을 떨어뜨리고 인간관계를 해치며, 열정의 낭비는 일꾼들을 지치게 만들어 기업 내부의 활력을 좀 먹는다. 시간과 돈, 말과 열정, 그 어느 것의 낭비도 기업이 경계해야 할 내부의 가장 교활한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