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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일본 기업과 일본식 경영은 별것 아닌 가..
오피니언

[기업에세이] 일본 기업과 일본식 경영은 별것 아닌 가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19/07/27 08:09 수정 2019.07.27 08:45

대일 무역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무역 역조의 족쇄를 벗어보지 못할 정도로 일본에 뒤져 있다. 그런데도 실속 없는 자부심과 감정적인 편견 때문에 극일이 요원하다.

세월이 꽤 흘러갔지만 한 때《일본은 없다》는 책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그 황당한 제명이 책이 잘 팔리리라는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를 겨냥한 출판사의 장삿속 산물이라고 이해는 했으나, 그 책을 읽은 후에는 저자의 식견이 사려 깊지 못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십 년 간 일본을 드나들고, 일본과 합자한 기업에서 중역과 대표이사로 5년이나 일한 경험이 있는 필자도 입 밖에 내보지 못한 말을, 일본에서 불과 몇 년을 특파원으로 산 저자가 사적인 사의(思意)를 그토록 단정적이고 폭탄선언적인 표제에다 담아 세상 가슴팍에다 주저함이 없이 던졌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그런 옛일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고질로 앓고 있는 ‘일본비하 병’ 때문이고, 일제의 식민지굴레를 벗자마자 대신 찬 무역 역조라는 부끄러운 족쇄를 아직도 차고 있다는 속상한 현실 때문이다. 이 예속적인 대일무역관계는 ‘일본은 없다’라는 식으로 해결되거나 삭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본에 관한 한 나 역시 여러 가지에서 빛과 먼지의 혼재처럼 좋아하고 싫어함이 마음속에 복잡하니 얽혀 있다. 심정적으로 반일정서가 뿌리 깊은가 하면, 이성적으로는 일본의 좋은 점을 생각할 때 열등의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의 가문 역사에는 일본에 피맺힌 한사(恨事)가 있다. 임진왜란 때, 조정 중신으로 출사하고 계시던 두 분 선조가 순직하셨고, 한 분은 꽃다운 나이에 의병대장으로 순절하셨다. 일본과 무슨 업보가 끼었든가, 그 후 수백 년 긴 세월이 지나고 조선이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떨어졌을 때, 3.1 만세운동에 가담하신 조부께서 일본경찰의 마수를 피해 방랑생활을 하시면서, 사대부 명문가였든 우리 집안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 세 형제는 일제하의 관리가 되어 가세를 지탱했다. 요즈음 과거사를 청산하자는 측면에서 보면 나의 집안도 갈 데 없는 친일한 집안이었든 셈이다.

내가 무슨 자랑거리도 아닌 가족사의 한 자락을 이렇게 굳이 들춰 발기는 것은, 일본에 대한 평가를 피상적이고 감정적이 아니라 경험적이고 이성적으로 하려는 의도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나는, 심정적으로 일본에 정나미 떨어지는 일이 많다고 해서 ‘일본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일제라면 허발해 밥통을 사온 적은 없지만 ‘일본은 대단하다’고 여기는 일이 많기 때문에 괜히 일본을 깔보는 데 동조한 적이 없다. 일본 기업과 합자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는가 하면, 좋은 일본인과 만나 많은 즐거움도 누렸다.
내가 오랜 세월 일본을 드나들며 감탄하고 부러워하며 은연중에 본뜨려 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울창한 숲을 보고 너무 부러워 속상해 했던 일이다. 크고 작은 산 모두가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산을 허물어 쏟아져 내린 홍수가 전 국토를 유린하던 시절에 보리 고개를 넘으며 목숨 부지한 터라, 70년대 초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어디를 가더라도 시야를 파고드는 싱싱한 숲이 우거진 산들은 내게 충격적인 경이로움이었다. 산과 호수는 물론 하다못해 도시 속에 있는 신사神祠에도 백수를 훨씬 넘긴 거수들이 즐비했다.

동경과 오사카를 여러 번 오가며 철도 연변에 줄지어 늘어선 번창한 경제가 세운 도시를 보거나, 세계를 누비며 신나게 팔리는 상품의 생산 공장들을 그렇게 둘러봐도 그거야 우리도 하고 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그다지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신궁神宮 경내에 정연하게 박힌 두서넛 아름드리 삼목杉木들을 보든가, 어느 유명 관광지에 있는 호숫가 길에 촘촘히 늘어선 히노끼 거목을 보는 순간에는 부러움이 차고 넘쳐 숫제 속이 상했다. 나무를 그런 거목으로 키우려면 수백 년이 걸릴 터,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필요한 세월과 비교가 되지 않는 백년지계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선망은 종 내 일본만 가면 괜히 도지는 가슴앓이로 마음에 박혔다.

내가 일본에서 받은 신선한 호감은 저들의 소박함과 검소함에서였다.
저들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에다 부자나라인데도 집들은 거의가 깨끗할 뿐 단조로운 같은 형태에 협소하고 칙칙해 보인다. 밥상 차림은 아주 단순하고 소찬(素餐)이다. 손님을 맞고 대접하는 주인과 가족들은 매우 겸손하고 친절하지만 격식에는 전혀 허세가 없다. 직장인들이나 주부들의 검소한 생활 자세는 정평이 나 있다. 그 모든 것들은 빈부와 별로 상관이 없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 국민이고 가장 세금을 많이 물며,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여행을 많이 하며, 가장 일찍이 선진문명을 내 것으로 꽃 피운 나라고, 가장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복지국가이므로, 떵떵거리며 살고 으스댈만하다. 그러나 우리처럼 수십 가지 반찬을 상다리가 휘어져라 차려내는 상차림이란 없으며, 그저 외곬으로 커다란 평수 아파트에 큰 차를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일본의 위대함을 실감하고 호감을 지니게 된 것은 곳곳에 박혀 보석처럼 빛나는 ‘보통사람의 훌륭한 직업정신’을 목격하고서였다. 대대로 맛과 솜씨를 일류로 빛내오고 있는 장인들, 서양에서 기술을 배워 다가 기술 1등 국을 만들고 이제는 역으로 로열티 받으며 가르치는 도사들, 경제대국을 이룩하는 대역사에 밑거름이 되었고 지금은 그 견인차가 되고 있는 산업현장의 프로들, 충성심 강한 ‘회사인간’이라 이름난 건실한 직장인들 등, 거기에는 훌륭한 시민과 사원들이 하도 많다. 저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그 가치를 잘 보존한 전통문화의 지킴이이며 창조적 모방이라는 일본식 실용주의가 낳은 보배 같은 산업역군이다. 
     
일본은 없다 할 정도로 우린 일본 비하하기를 예사로 하고, 지나치게 일본과의 경쟁의식을 날 세워,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비교하고 우월감을 맛보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을 제대로 알고 지혜롭게 벤치마킹 하는 것이다. 장래 언제 국력에 있어 우리가 일본을 능가할지 모르나, 지금은 여전히 우리가 일본에 한참 뒤져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실증사례를 들어보자.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있어 일본은 우리의 10배며, 1인당으로는 일본이 4배나 높다. 40년 전 국민총생산 1위였던 미국을 25위 일본이 지금에 와서 1위로 능가한 사이에, 우린 2만 달러 국민소득에서 거품이 빠진 후 거의 십여 년이 넘도록 2만 달러 수준에 턱거리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달성했다 감격했던 1천 억 달러 수출은 일본의 16년 전 실적이다. 우리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일본보다 월등하게 낮고, 새로운 발명을 가능케 하는 혁신 성이나, 있는 기술을 개량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기술을 상품화함에 있어, 저들은 세계 제일인데 반해 우린 한참 아래다. 우리네 연구개발투자 상위 10개 회사의 총합 규모가 일본 토요타자동차회사의 그것보다 작을 정도로 저들은 경쟁력을 키우는 데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저들은 장사만 잘하는 게 아니다. 기업 환경이나 여건, 풍토에 있어서도 우리보다 유리하거나 건실하고 우수한 점이 많다. 일본이 세계에서 교통질서가 가장 잘 잡힌 나라로 1대 당 교통위반 건수가 우리의 8분지 1에 불과하다. 국가별 인권침해지수에 있어 82위인 일본에 비해 우린 45위로 월등히 높으며, 반대로 부패지수에선 99개 국 중 일본이 14위인데 비해 우린 ‘뇌물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어 다닌다. 우리 근로자의 평균 근속년수는 일본의 반도 안 되어 이직률이 배나 높기 때문에 안정적 경영에서 일본보다 상당히 불리하며, 기업 평화를 해치는 노사분규의 방법이나 빈도에 있어서도 우리는 일본의 오륙십 년대 폭력적 양상을 답습하고 있어 패러다임의 변화에 있어서조차 저들보다 훨씬 굼뜨다.

‘일본식 경영’은 기업경영에 있어 ‘미국식 경영’과 함께 양대 주류를 이루는 경쟁적 비교모델이었다. 특히 패전으로 산업시설이 붕괴된 일본에 산업의 재건과 기업의 회생을 위한 계기마련에 천사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미국이 전후 반세기에 걸친 해외 시장경쟁에서 일본한테 우월적 지위를 추월당하면서 구겨진 자존심을 접어 둔 채, 일본식 경영을 거울삼아 미국식 경영의 약점을 찾아내고 개선하려 노력한 것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무너진 이후 신사조의 등장에 버금가는 화제였다.

일본식 경영의 강점은 빈번한 논란을 통해 여러 가지로 분석 평가되고 실증되었다. 혹자는 일본인 의식구조와 문화에 뿌리 깊은 ‘유교사상’이 기업에 자리매긴 공동선(共同善) 지향적 ‘회사정신’이 힘의 원천이라 했고, 혹자는 발전적 모방정신으로 선진 기술을 내 것으로 재창조해 낸 뛰어난 ‘상인정신’이라 했으며, 혹자는 심지어 ‘사무라이정신’의 승화에 의한 산물이라고까지 미화했다. 어쨌든 일본식 경영이 우수한 경영실적이라는 황금 알을 낳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이 20세기의 성공 신화를 말할 때 빠짐없이 회자됐던 마쓰시다(松下)그룹처럼 ‘모방제품’ 덕분이었든 건 중요치 않다. 그런 응용기술제품을 새 상품으로 만들어 낸 산업기술기반과 뛰어난 상술이 가치 있는 것이다.

일본식 경영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약점이나 문제들이 지적되고 그 때문에 일본식 경영을 신중하게 본떠야 된다는 분위기가 상당히 확산된 적도 있지만, 여전히 일본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강하다. 일본 기업이 미국 기업보다 더 우수한 경쟁력을 견지할 수 있는 이유를 드는 건 어렵지 않다.

기업 중역의 평균 연봉에 있어 일본은 미국보다 여섯 배나 낮다. 예컨대, IBM회사가 7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냈을 때도 사장 연봉은 무려 60여 억 원이나 되었다. 경영문화의 건전성이나 경영자들의 책임정신에 있어 저들은 우리보다 월등하다.
일본 기업들은 ‘우리가 대적하고 있는 적은 다름 아닌 어제의 우리 회사다’라는 정신으로, 부단히 군살을 빼고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경영혁신에 있어 세계 제일이다. 해서 공적자금으로 기사회생 하면서도 뼈를 깎는 경영혁신을 단행하지 않는 한국 기업들을 향해 “한국은 절대로 일본을 능가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이다.
일본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미국식 경영을 배웠는데 왜 우리는 반세기 넘도록 일본을 따라잡는 경영을 하지 못하는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예컨대, 일본식 경영을 전 세계에 떨친 Honda가 칭송 받고 존경 받는 것은, 그 놀라운 업적 때문이 아니라 ‘혼다정신’이라 불리는 훌륭한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 때문이다. 혼다 창업주가 자신의 성을 따 회사 이름을 지은 것을 평생 후회할 정도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공의로운 경영철학 때문에 혼다 정신이 눈부시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명하다는 한국 기업주들이 저들의 그런 정신을 다소나마 제대로 촌탁하여 본뜨고, 노조가 저들의 대승적 사고와 자세를 벤치마킹 해 거울삼았어도, 기업이 거덜 나도록 천박하게 족벌 사유경영에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식구나 진배없다는 종업원들이 원수처럼 이를 악물고 돌을 던지며 공장을 닫아걸어 기업에 막대한 물질적 손해와 정신적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자존심이 상해 가슴을 칠 일은, 일찍이 생활문화를 가르칠 만큼 훨씬 선진국이었고, 더 부자나라이었으며, 스승이었든 우리가, 어쩌다 일본에게 한참을 뒤쳐져서 그 뒷덜미에다 대고 ‘일본은 없다’느니 공허한 주먹질이나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훌륭한 일본 기업을 열심히 벤치마킹 할 필요와 가치가 있는 것은 저들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고 강하며 이익을 많이 내는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식 경영을 진국으로 맛보지도 못하고서, 별 맛 없느니 그 정도 맛이야 우린들 내지 못하겠느니 하며, 우리 기업들이 허세 부리며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교만이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자아도취였다.

우리 기업이 정권의 침실에서 부정한 정사 놀음에 탐닉하고, 돈 좀 벌었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스꽝스러운 용트림이나 하며, 더 달라 못 준다 집안싸움으로 거북이 기어가듯 세월을 죽이는 사이에, 일본 기업과의 거리는 굼벵이 걸음처럼 좁혀졌을 뿐 더 멀리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일본이라고 정경유착이 없는 게 아니고, 부도덕한 기업주가 없지 않으며, 망하는 기업이 그 수에 있어 우리보다 훨씬 많고 그들도 불경기에 시달린다. 그러나 우리처럼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뜯는다거나, 기업이야 망조가 들건 말건 기업주가 치부를 일삼으며, 기업이 방만한 경영으로 은행이 모조리 거덜 나도록 수백 조원씩이나 국민에게 담세 덤터기를 씌우고도 구조조정을 너무 서두른다느니 정리해고를 결사반대 한다느니 하는 무책임한 저항이란 저들에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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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는 상대국을 그저 밥맛없다는 이유만으로 별 것 아니라 비하하는 것은 어리석은 감정적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속이 알차지도 못하면서 감정에 치우쳐 일본식 경영이란 게 별 것인가 하느라 배우고 본뜰 가치가 있는 것들을 놓치는 우를 더는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피지기해야 백전백승이라면, 먼저 우리보다 더 우수하고 강한 저들의 강점을 제대로 알고, 그것에 비추어 저들보다 못한 우리의 약점이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가를 깨달아 고치고, 향상시키는 데 거울삼아야 현명하다. 토끼처럼 멀찌감치 앞서 가고 있는 일본식 경영을 거북이처럼 뒤쫓으며 토끼가 자만에 빠져 잠들기나 바라는 의식이나 자세로는 절대로 일본 기업을 추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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