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임새벽 기자] 지난 1일 오전 8시 34분경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분신을 시도한 70대 노인 A씨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틀 뒤 A씨가 3일 오후 5시 41분 사망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여타 언론에서 A씨라고 보도된 익명의 70대 노인은 임경규(72) 민족통일문화재단 이사다. '아베 타도'와 '일본 무역 보복을 철회하라' 외치면 분신한 임경규 이사를 '임경규 열사'라고 증언하는 이태원 민족통일문화재단 회장을 본지가 인터뷰 했다.
이태원 회장의 인터뷰는 5일 19시 서울의소리 사무실에서 유튜브 라이브 전 40분 가량 진행됐다.
Q.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임경규 열사의 분신에 대한 팩트를 제대로 잡는 언론사가 없다. 오보도 많다. 예를 들어 매체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기사에 노숙자 사진을 찍어 사용한 언론사도 있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지나가는 말로 "정신이상자가 아닌지, 약주를 드신건 아닌지" 말을 듣고 이대로 묻히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Q. 당시 상황은 어땠나?
A. 임경규 열사가 분신하시기 10분 전까지 함께 있었다. 날을 새고 잠깐 잠든 사이 구급차가 오고 싸이렌 소리가 나고 경찰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으나 이상한 느낌에 임 열사의 자리를 바라보니 가방과 휴대폰이 그대로 있었다. 정신이 번쩍 나서 현장에 가보니 119 구급대원이 휠체어로 이송 중이었고 경찰책임자를 찾았다. 내 판단에 우선 경찰을 협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2~3시간 정도 참고인 진술을 했다. 진술 후 알아봤더니 임 열사가 처음에는 서울대학교 응급진료 이송됐으나 국가지정 화상전문병원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된 것을 듣고 찾아갔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위독한 상태라고 들었다.
Q. 임경규 열사와 인연을 맺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제가 요즘 거의 24시간을 대북식량지원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저는 우리민족에 해당하는 남한, 북한, 해외동포, 다문화 가족까지 포함해 더 이상 굶어죽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북식량지원 관련 모든 비판을 감수하고 활동하고 있다. 임 열사께서 이런 활동을 듣고 너무 좋다 하면서 자신도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이사로 참여했다. 제 이름이 이태원이니까 이태원 회장님을 만나서 너무 좋다고 했다. 이 말씀이 지금 저에게 엄청난 울림이 되고 있다.
Q. 임경규 열사는 어떤 분이셨나?
A. 임 열사는 재단법인 민족통일문화재단 이사로 명동성당에 출석해 신앙생활하며 촛불시위에 빠짐없이 출석하셨고 세월호 침몰로 실의에 빠져있던 유가족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늘 기원하며 한반도 평화통일 운동에도 열성적이었고 일본의 잔인한 경제침탈한 분개하는 애국자이시다. 선하고 품의있는 멋쟁이 신사로 투철한 국가관과 은혜로운 신앙심이 탁월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측은지심으로 모든 것을 털어주던 훌륭한 품성을 갖춘 어르신으로 기억한다.
Q. 분신 당일 날은 어땠나?
A. 분신 달일 인증 사진 찍자고 하시면서 꽃을 가져오셨다. 너무도 명랑하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절대 사고가 나겠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거의 밤을 새고 새벽 5시부터 오셔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추후 경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졌지만 이미 가방에 신나를 가져오셨다. 각오를 하고 오신 것이다. 오늘 인증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한다면 엄지손가락 제스처까지 알려주셨다. 마침, 한자공부 하는 여성분이 계셔 인증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10가지 이상의 유언을 하셨다.
Q. 유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A. 임 열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사악한 흉계로 시작하여 우리나라를 제2의 영구적 경제 식민지로 만들려는 아베정권을 타도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자주 만나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반드시 만들어 달성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유언이라고 생각 못했으나 지금 반추해보니 미리 마음을 먹고 나에게 계속 유언을 전했던 것이다.
임 열사는 분신 전부터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언제인지 계속 물어셨다. 제가 아는 정보로 "미국 트럼프 정부 중재로 제3지대에서 강경화 장관과 일본 외상이 협상할 것"이라고 말씀 드리자 임 열사는 "일본 놈들 하고 협상 해봐야 결과가 뻔한 거 아닙니까? 미국도 입장이 곤란 하니까 협상 자리를 마련해 주는 척하고 하다가 발을 빼고 물러 날 것입니다"라고 말씀 하셨다.
Q. 임경규 열사가 분신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A. 임 열사는 아베정권 타도를 위해 피켓 들었고 분신 당일에도 성노예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 책자를 가지고 계셨다. 광화문 촛불시위에도 빠진 적이 없으셨다. 일본 대사관 시위도 하셨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굉장히 큰 사건으로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낙연 총리가 특사로서 일본에 가면 긴박한 상항을 전할 수 있는 떳떳하게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왜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같은 분이 없고 정치권은 쌈박질 하고 있으니 미치겠다고 하셨다. 스스로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의 길을 가신 거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임경규 열사의 마지막을 함께 했으나 패닉 상태인 유족의 상황으로 인해 발인도 지켜보지 못했다. 조화 하나 보내지 못했다. 임경규 열사가 차마 가족에게 남기지 못한 유언을 나에게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임경규 열사가 나를 유언을 전할 증인으로 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유언이 헛되지 않도록 임경규 열사의 증인으로 열심히 증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