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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차별화와 닮기의 괴리..
오피니언

[기업에세이] 차별화와 닮기의 괴리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19/08/10 17:42 수정 2019.08.10 17:59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자의 것보다 나은 쪽으로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으로 갈 철새가 그저 친구 제비를 따라 강남 가듯 무분별한 닮기 풍조의 만연이 문제다.

시장경쟁력의 비교우위란 경쟁자에 비해 내 제품의 질이 보다 우수하고 가격이 싸며 보다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보다 만족하게 제공하는 게 차별화다. 다양화가 양적인 것이라면 차별화는 질적인 것이다. 그런 차별화는 제품과 가격의 경우 첨단기술과 생산성향상을 통해 이뤄지며, 서비스의 경우는 고객중심 경영이나 마케팅에서 생겨난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차별화의 지향은 부단한 창조적 도전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 이상은 기업 비전이고 길잡이는 연구개발이며 혁신 마인드다. 경쟁자의 것과 다르되 더 새롭고 더 좋으며 더 값싸고 더 만족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르지 않게 단순히 본뜨거나 그저 흉내 내는 게 아니다. 설사 모방하더라도 기성의 것보다 더 우수하고 유리하게 달라야 된다. 경쟁자보다 더 나은 다른 특성과 장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른 점이 반드시 유리한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며 필요성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유용하다.

그런데 민주사회라는 빗자루를 타고 어디든지 날아다닐 수 있는 황금유령의 위력 때문인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그저 모방하고 졸속하게 본뜨는 풍조가 이외로 드세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이름하며 무슨 ‘문화’라는 등 비위를 거스르는 여러 가지 풍조가 밀려왔다. 그건 이상한 유혹의 바람이고 유행이었으며 비이성적 흥분으로 흉내 내고 추종하게 만드는 혼란스러운 난류였다.

옛날에는 혼혈인한테서나 볼 수 있었든 노랑머리 빨강머리 머리 염색이 ‘개성의 차별화’라며 유행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은 너도나도 성형외과로 달려가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쌍꺼풀을 만들며 인조 물질을 넣어 풍만한 젖가슴을 달고는 이른바 ‘성형미인’으로 변신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제 전기밥솥이나 녹용을 사들이는 데 턱없이 샘을 냈던 억척꾸러기들은, 다이어트다, 찜질방이다, 골프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모님 만들기에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나섰다. 강장제에 걸신들린 허약한 거시기 노예들은 곰 발바닥에다 코브라 쓸개 먹는 여행에서 실망하고 돌아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비아그라 맹신자가 되었다.

주식시장엔 현대판 연금술사에 반한 ‘나도 일반투자가’들이 난장 치듯 ‘묻지 마’ 단타투자를 해대다 깡통부대로 전락하는가 하면, 경마장엔 저들보다 더 횡재에 달뜬 꾼들이 떼 지어 몰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터지고 거덜 난다. 성인병 강의에 겁먹은 이들은 ‘황제’니 ‘소고기’니 ‘포도’니 이상한 이름을 단 다이어트 바람을 쫓아 나섰다,

이어 불어 닥친 ‘웰빙 바람’에 지금 세상은 온통 ‘웰빙’ 자 붙이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으며, 웰빙 밥상 차려먹자 생난리다. 어디 그뿐인가. 암이니 당뇨니 혈압에 좋다는 말을 맹신하여 주먹 약을 먹는 게 유행이다.

우리가 남인가 한 배 탔다며 구역질나는 유유상종에 이골이 난 정치인들은 세상이 지겨워하는 짓거리를 형님 아우 번갈아 흉내 내고 되풀이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불거지는 뇌물수수, 공천을 둘러싼 지저분한 잡음,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인양 ‘천막 당사’니 ‘컨테이너 당사’니 유권자의 동정사기 조차 흉내 내기, 옷 색깔로 차별화를 하려는 유치한 이미지 대결 등 상투적이며 지겹고 식상한 바람과 따라 하기가 여전하다.

툭하면 치고받기 예사인 스님은 탁발에 속세의 때가 끼었는지 속인처럼 무슨 ‘가든’에서 갈비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신부와 목사는 가뭄에 속 타는 농부들에게 흙먼지를 씌우며 시골길로 승용차를 몰아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긴다. 저들이 세속적인 것들을 닮고 따라하는 게 절과 교회의 세속화를 부채질하는 것임을 대수롭잖게 여기나보다.

농가부채가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어도 효도관광을 가란다고 자식이 허리가 휘도록 뼈 빠지게 번 돈 들여 늙은 부모들은 좋아라하며 해외관광에 나서기 예사다.  너도나도 해외관광에 나서 쓰는 외화가 한 달에 1조원이 넘은 달도 있을 정도로 그 바람은 가히 천문학적 규모로 거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회사야 멍이 들던 말든 공장 문 닫아걸고 싸움 싸움해서 챙긴 임금 가지고, 할부라도 내 차를 장만한 월급쟁이들은 주말이면 남도 다 떠나는 승용차여행 난들 못 가랴 길을 메워가며 나들이에 나선다.  그건 갈 데 없는 <밴드왜건 유행>이다. 옆집 누구 네가 대형 냉장고를 샀으니 자존심 때문이라도 월부일망정 나도 같은 것 들여놔야겠고, 동창모임에 밍크코트 차려 입고 나와 부러움을 산 동창생이 샘나서 낸들 그보다 못할 손가 무리해서라도 더 비싼 털 코트를 장만한다. 

그건 일종의 뱁새가 황새를 본뜨려는 유행병이다. 누구 네가 조기 유학을 보냈는데 자식 장래 걱정이 난들 그만 못하랴 직장생활이 힘겨운 남편 짓졸라 기어코 어린 자식을 홀로 유학을 보낸다.

이 땅에서 남에게 꿀리지 않고 살려면 정서가 말라붙던 학원 교육비에 가계가 쪼들릴지라도 남처럼 초등학교서부터 자녀한테 최소한 서너 가지의 과외공부를 시켜야 한단다.  그건 참으로 애처로운 경쟁 바람이다.
평생 한을 안고 살지 않으려면 반드시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올려야 하고, 관례를 무시할 수 있나 꿀리지 않을 정도로라도 예단은 반드시 준비해야 하며, 설사 빚을 지더라도 남이 다 가는 해외 신혼여행을 가야 한단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대오각성이라도 했든가 대학엔 ‘원어민 교수’ 모시기 바람이 불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학 간판에서 ‘전문대학’이라는 글자가 일제히 사라졌다. 대학이 시류를 쫓고 따라 하기에 탁월하다.

지방자치단체에는 특화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벤처단지며 벤처빌딩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겼다.  그건 마치 무슨 ‘마트’니 ‘플라자’이니 이름붙인 상점이 즐비하니 등장한 우스꽝스러운 유행과 같았다.

어느 정도 골프를 쳤다하면, 골퍼들이 자신보다 더 비싸고 사치스럽게 갖춘 친구나 게임 파트너를 턱없이 샘내서, 승용차며 골프채며 심지어 신발까지 그 수준에 맞춰 구비해야 행세할 수 있다는 속물적 흉내 내기가 만연됐다. 코가 삐뚤어지게 진탕 마신다면 으레 폭탄주고, 러브호텔이 짭짤한 재미를 보는 사업이면 설사 학교 건너편에라도 짓는 한심한 바람이 분다.

그러저러한 닮기나 흉내내기들을 들으려면 하도 많다. 저런 것들이란, 어떤 것은 무분별한 소치요, 어떤 것은 속물적 욕심과 샘의 소산이다. 어떤 것은 돈지랄이고, 어떤 것은 뱁새가 황새걸음을 흉내 내려는 어리석은 모방이다.  어떤 것은 속 빈 강정들이 허전해서 벌이는 허세 몸부림이요 어떤 것은 공허한 탐욕의 집착이다.

기업에도 저런 유의 바람과 유행 따라 분별없이 흉내 내고 닮거나 덮어놓고 따라가는 풍조가 적지 않다.
일본에서 수입한 무슨 판매기법이니 공장자동화니 하는 바람이 한 때 기업에 거세게 불었든 적이 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정부가 기업더러 뼈를 깎는 경영혁신을 하라 다그쳤을 때 정부의 허술한 준비 때문이긴 했지만 기업들은 마치 군인이 명령을 복창하듯이 하나 같이 ‘정리해고’라는 처방을 하고 나섰다. 

그것이 몰고 올 심각한 부작용인 사내저항의 최소화엔 기업 실정에 맞는 아무런 대책도 강구해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리차지에 뒤질세라 앞 다퉈 워크아웃이라는 구휼캠프로 달려가 줄을 섰다. 그 비굴하고 이기적인 꼬락서니를 지켜본 노동자들이 비정하다 분개해 정리해고의 칼날을 붙잡고 맞선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월급쟁이들한테 목숨과도 같은 일자리 뺏기를 제 소신과 애정과 복안에 맞춰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따라 하기 식으로 하다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었다.
한 때 이름자나 난  대기업들치고 ‘기획조정실’을 두지 않은 데가 없었고 경쟁적으로 ‘사업부제’를 도입했다.  전자는 경영 전략의 산실과 경영관리의 통제본부 역할이 그 소임임에도 불구하고 독단경영을 일삼는 소유경영주의 친위대로 전락했으며, 후자는 책임경영을 하자는 목적과 달리 그 자율성을 보장해서 운영하지 않음으로써 거창한 명칭에 반하여 높은 실적을 내는데 실패했다. 

근자에 와서 경영합리화의 한 방편으로 조직을 슬림화 하거나 다운사이징하기 위해 ‘본부장제도’나 ‘팀장 제’를 택하는 게 유행처럼 돼버렸는데 그 또한 한 때의 변화 패턴이나 경향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탐탁하지 않아도 사외이사 제도를 수용해야 된 기업들은 마치 협의라도 한 듯이 하나같이 적당히 예우를 하면 군소리하지 않을 유명 인사들로 그 자리를 채웠다.  어쩌면 눈 감고 한 소리로 야옹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신인사제도’가 등장하면서 기업마다 너도나도 ‘연봉제’를 도입했다. 그건 책임경영을 지향하는 평가시스템 토양에다 심어야 꽃이 필 수 있는 것인데 그런 토양이 척박한 기업이 준비 없이 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도 팽배된 분위기는 그걸 도입하지 않으면 선진 기업이 아닌 것처럼 안달 나게 만들었다.

채용인사방식에 있어 기업들이 범한 이해할 수 없는 과오는 취직경쟁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철저한 실력경쟁을 통해 사원을 선발하는 방법을 대안 없이 포기한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기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시험 선발방식을 버렸다. 그건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안 하는 대학생들을 평준화라는 틀로 양산해 냄으로써 오히려 자질저하라는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는 교육의 맹점을 간과한 채 잘못된 풍조를 기업이 무분별하게 따라간 실책이었다.

세계 제일가는 명성을 계속 누리고 있는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이 최고로 우수한 학생들만 뽑아 교육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어김없이 졸업예정자의 1할이나 탈락시킨다는 사실은 그 시사하는 바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런 교육을 받은 졸업생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성적표가 없는 서류만으로도 믿고 채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경영환경과 여건 변화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됨은 틀림없으나 무분별하게 시류를 쫓고 경솔하게 변화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고 이롭지 못하다.
신념이 확고하고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며 사리판단에 사려 깊다면 변화에 경솔하게 동하거나 분별없이 모방하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경영은 종합과학이고 경영활동은 갖가지 변수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므로 제 자리를 고수할 것인가 움직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해야 한다. 예컨대, 종신고용제를 버렸을 때 주인정신이 함께 퇴조되었으며, 경영혁신을 하고자 정리해고를 했을 때 노사갈등이라는 사내저항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평가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덥석 연봉제를 도입하면 사원의 최대 관심사인 대우에 심각한 불만을 야기 시킬 수 있으며, 효율적 업무분장과 충분한 직무교육훈련을 하지 않은 채 조직의 다운사이징을 강행하면 오히려 업무능률을 떨어뜨린다.

그저 모든 기업이 다 하고 다른 기업이 성공했다 해서 제대로 분별해보지 않은 채 시류를 쫓고 남의 것을 본뜨며 소문난 것을 흉내 내는 식의 개선과 변화는 무익하다. 그런 잘못된 모방과 본뜨기 때문에 오히려 생산적인 차별화에 소홀하게 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기르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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