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임새벽 기자]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라는 경제보복으로 맞섰다. 28일 화이트리스트 발효를 앞두고 우리 정부는 23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선언하고 25일 오전부터 독도방어훈련에 전격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발적 매춘행위였고, 강제동원도 없었고, 일제강점기 시절에 수탈은 없었고 오히려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출간 됐다.
▶ 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와 이승만학당
지난 7월 10일 출간된 '반일 종족주의'는 이영훈·김낙년·김용삼·주익종·정안기·이우연이 저술한 책으로 '이승만학당'에서 개설한 유튜브 채널인 '이승만TV' 에 게시된 동영상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기억과의 투쟁, 그 진실된 역사에 대한 명쾌한 응답!"이자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라고 소개하고 있다.
대표저자인 이영훈 전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역임했으며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이승만학당 교장을 맡고 있다.
이영훈 전 교수는 7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아펠가모에서 열린 '반일 종족주의' 북콘서트에서 이승만에 대해 "지난 20세기 한국인의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폐쇄된 버린 민족의 갱생에 앞길을 밝히신 분이 이승만 건국대통령"이라고 칭했다.
이어 이승만학당 설립배경에 대해 "이승만의 정치철학·이념·업적·독립운동·건국 활동 등을 소개하고 교육하고 연구하고 홍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영훈 전 교수는 "반일종족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며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단어 하나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 부족한 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숨기는 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북콘서트에서 이영훈 전 교수의 은사인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이자 전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이 참석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따르면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중 4명은 현재 연구소에서 직책을 맡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사장,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소장, 주익종과 이우연은 연구위원이다.
▶ 前 낙성대연구실에서 現 낙성대경제연구소로 개명
낙성대경제연구소는 1987년 4월, 안병직 교수(서울대)와 이대근 교수(성균관대)가 경제사 전공 연구자의 공동연구 위해 각 2천만원 씩 출연해 '낙성대연구실'로 정하고, 같은해 8월 27일 개소식 가졌다.
연구원은 대체로 안병직 교수가 이전에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지도해오던 한국경제사 연구모임/세미나 멤버를 주축으로 하여 구성했다.
이후 임의단체인 '낙성대연구실'이란 이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고 '사단법인 낙성대경제연구소'로 개명하기로 결정하고, 1994년 2월 소관 부서(경제기획원) 앞으로 법인설립신청서를 제출해 같은해 3월 10일 정부 인가를 받았다.
초대 이사장 겸 소장으로는 이대근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는 안병직, 이대근, 이종태, 임무현 등 10명으로 구성했다.
1994년 설립 때부터 이대근 이사가 맡아오던 이사장과 소장직을 1997년 3월 안병직 이사와 구석모 이사에게 넘겼으며 2000년 안병직 이사장은 박덕제 이사에게, 구석모 소장은 이영훈 이사에게 각각 그 직을 인계하면서 창립 당시의 제1세대가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됐다.
▶ '도요타재단' 연구비 지원 받아 식민지 근대화론 이론적 토대 마련
낙성대경제연구소는 1987년 8월 개소식 이후 가을부터 한국 측 안병직 교수(서울대)와 일본 측 나카무라 사토루 교수(교토대)를 주축으로 식민지 조선경제에 대한 한-일 공동연구팀을 만들어 1988년 1월 서울에서 제1차 예비연구 세미나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번갈아 방문하며 수차의 공동세미나 개최 및 3권의 책을 양국에서 동시 발간했다.
『근대조선의 경제구조(비봉출판사, 1989)』·『근대조선수리조합연구(일조각, 1992)』·『근대조선공업화의 연구(일조각, 2003)』으로 발간된 3권의 책 중 『근대조선 수리조합연구』 서문에는 "도요타재단으로부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공동연구의 출발부터 불가능했다"며 "도요타재단의 야마오카 요시노리 씨는 공동연구의 구상에서부터 출판 단계에 이르기까지 관대하면서 헌신적인 도움을 줬다"고 기록돼 있다.
'도요타재단'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진행된 한-일 공동연구에 대해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장기에 걸친 대규모 국제적 공동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연구인력의 대부분을 연구소 멤버로 충당하고, 또 대규모 프로젝트를 직접 주관하여 소화해냄으로써 연구소의 연구 및 행정 역량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설립 초기부터 일본 기업이 지원한 자금으로 연구가 진행 된 것이다. 2005년에도 '도요타재단' 연구비 지원으로 전시기/해방기(1937~1950년) 한국 농촌사회의 변동과 같은 연구 과제도 수행했다고 연혁에 소개돼 있어 최소 2차례 이상 일본 측 자금으로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 대주전자재료㈜ 임무현 창업주 '자사 주식 107,210주' 연구소에 기증
낙성대연구실로 시작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1987년 설립 당시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소 재정을 지원하는 재계인사를 재정위원으로 구성했다. 당시 6명의 재정위원 중 임무현 대주전자재료㈜ 창업주는 2005년 3월 연구소에 107,210주의 자사 주식을 기증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연혁에서 대주전자재료㈜에 "빈약한 연구소 기금을 확충하는데 하나의 금자탑을 쌓은 격"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2005년 3월 당시 대주전자재료㈜의 주식가치는 고가 기준 주당 7,480원으로 기증액은 9억원을 넘는다.
임무현 대주전자재료㈜ 창업주는 이영훈 전 교수가 평생 동지라고 북콘서트에서 언급한 김문수 전 지사와 서울대선후배 사이로 당시 김 전지사가 새누리당 대권 도전 당시 관련주로 언급되기도 했다.
임 창업주는 2015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운동가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창업했다"며 "대학에서 공부한 분야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취약한 전자산업 원재료의 국산화를 꿈꾸며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임 창업주는 "당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의 구니미네 노보루 박사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노보루 박사의 집 앞에서 일주일 가까이 기다리며 접촉을 시도한 끝에 노보루 박사를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임 창업주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실버 페이스트 기술을 전수해준 노보루 박사에 대해 "평생의 은인"이라며 "이후 1986년부터 노보루 박사를 회사의 초대 고문으로 모시게 되었고 이후 1995년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나셔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고 말했다.
현재 대주전자재료㈜는 임일지(딸)·임중규(아들)이 각자 대표를 맡고 있다.
낙성대경제연구소에 자사주를 기증한 것과 관련해 지난 주말과 26일 임무현 창업주와의 통화를 요청했으나 대주전자재료㈜ 측은 "회사 내에 연속된 회의로 아직 메모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