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은영 기자]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트로메우 마리)은 SBS문화재단(이사장 윤세영)과 공동주최로 <올해의 작가상 2016> 전을 오는 2017년 1월 15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올해의 작가상’은 지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됐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정례전시 <올해의 작가>를 모태로 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괸은 2012년부터 SBS문화재단과 함께 한국현대미술의 독창성을 보여줄 역량 있는 작가들을 후원하는 수상제도로 변경, 운영하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 2016> 전에서는 지난 2월 선정된 김을, 백승우, 함경아,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가 SBS문화재단의 창작 후원금을 바탕으로 준비한 신작을 선보인다.
김을 작가/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김을 작가는 제1전시 공간에 실제 크기에 가까운 2층 건물을 건축했다. 관객의 출입이 가능한 이 건물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다. 예술가의 존재가 세상과 충돌하면서 빚어낸 수많은 思考의 폭발들은 작은 은하계를 구성하고 있는 1,450개의 반작이는 별들(드로잉)로 재탄생된다.
김 작가의 드로잉은 협소한 정의와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경계를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회화로 주목받은 작가는 2002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드로잉프로젝트’를 통해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드로잉’은 여타 예술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형식과 유연한 접근 태도 그리고 몸의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고,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제작도 가능하다.
그의 드로잉은 자신의 온 몸으로 대면하고 있는 거대한 세상에 대한 민감한 반응의 결과물이다. 드로잉은 작가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血脈이며 그의 육체를 움직이는 연료이다. 그 에너지가 김을의 정신을 관통하고 그의 손끝을 타고 세상으로 흘러내린다. 정신의 거름망으로 걸러낸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자유로운 상상은 김을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우주’이자, 김을이 ‘거대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백승우 작가/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의 개방공간에 설치된 백승우의 작품들은 사진 매체의 형식적 한계와 경직된 해석의 틀을 깨뜨리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직접 찍거나 혹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집한 사진들의 일부분을 확대하기, 밝기 혹은 컬러 조절하기, 순서 바꾸기 등의 다양한 조각을 통해 재가공 및 배열해 이미지의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백승우는 디지털 이미지의 과잉 시대에 사진을 찍는 행위가 마치 ‘물 속에서 물총을 쏘는 것’과 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사진의 고유한 가치였던 ‘찰라’와 ‘진실’이 아우라는 마술사의 비석에 새겨진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사진’을 전공하고 ‘사진’의 언어를 주로(찰) 사용하는 현대미술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미지를 ‘포착’하기보다 ‘수집’하고 사진의 표면을 부유하는 이미지를 조작해 의미만을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제, 보이는 것과 감춰진 것들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정교한 미니어처 도시 사진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탐색하고, 거대한 영화 세트 같은 북한의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감춰진 리얼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들춰낸다. 또한 북한의 체제선전용으로 배포한 고해상도 사진을 변형시키거나, 개인의 추억이 담긴 스냅 사진을 수집해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는 등 ‘사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다양한 의미와 표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함경아 작가/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 배치된 함경아와 믹스라이즈(조지은, 양철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의 다양한 차이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移住 현장을 주목한다. 북한 자수(刺繡) 공예가의 손을 통해 제작된 자수 작품으로 잘 알려진 함경아는 탈북과 정착을 주제로 제작한 조각, 퍼포먼스,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함경아는 현실적인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춰진 시스템의 규칙과 금기에 도전하면서 모순과 부조리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일상의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작품의 소재를 발견하고 긴 호흡과 끈기로 작품을 완성한다. 전임 대통령의 집에서 나온 폐기물을 모아 현대사회의 비극을 은유하고, 전 세계에서 수집한 (훔친)물건으로 제국주의의 부끄러운 역사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어느 날 집 앞에 떨어진 삐라는 그녀가 북한의 자수공예가와 금기된 소통을 시도하는 단초가 된다. 이처럼 함경아는 현실의 매끈한 표피 속에 감춰진 굴곡한 의미의 지층을 부지런히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지점을 목표로 전진해왔다. 훔치고 바꿔치기 하는 위법 행위를 통해 구축한 臟物이 배열된 근사한 진열장과 불법적이며 은밀한 거래를 통해 전달받은 북한 자수공예가의 화려한 자수들이 보여주는 미학적인 외형은 유혹적인 미끼에 불과하다. 그 속에 감춰진 첨예한 문화, 사회, 정치적 쟁점과 부조리의 영역을 감지하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 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탈북과 정착’을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개인의 자유 의지와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 정치 시스템 속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의 절박함과 위험한 여정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작가는 그간 탈북자들을 위한 경비를 지원하고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나 결국 미완으로 중단된다.
이는 이번 전시에서 벽면에 설치된 굳게 닫힌 철제 셔터와 긴박한 상황을 암시하는 탈북자와 브로커의 대화 자막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전시실에 조성된 미니 축구장의 바닥과 벽을 채운 화려한 컬러의 추상적인 패턴은 촉망받는 축구 선수가 된 탈북 소년이 물감 묻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완성해낸 퍼포먼스의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에 놓인 유선형의 백색 조각은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한 패턴(카무플라주)의 부분을 확대한 것으로, 은폐기능을 제거당한 박제된 기념비처럼 보인다.
한국사회의 숨겨진 이주노동자들과 다양한 협업을 지속해온 믹스라이스는 취업과 학업 혹은 재산 증식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주’하는 한국 사회의 현상에 주목하면서, 재개발 지역에서 파온 흙을 이용한 설치와 벽화,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믹스라이스는 조지은과 양철모로 구성된 듀오그룹으로, 이들은 한국사회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인 이주 노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기획 등 전 방위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있는 (불법)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나 인권 문제에 대한 피상적인 조명을 거부해왔고,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주’의 상황들, 즉 ‘이주’의 흔적과 과정, 그 경로와 결과, 기억에 대한 탐구 등 다층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믹스라이스는 2006년 이후 마석가구단지의 이주민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자생적인 발언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고, 예술가와 이주노동자가 협업하는 공장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들의 관심은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식되어지는 식물들의 ‘이주’ 과정을 추적하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강제 ‘이주’된 아시아 근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작업으로 끊임없이 확장되면서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13일에는 각 작가들의 전시 작품에 대한 최종 심사를 거쳐 <올해의 작가상 2016>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최종 수상 작가는 ‘2016 올해의 작가’로 공표되고 1천만 원의 후원금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또한 후보 작가 및 최종 수상자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현대미술 다큐멘터리가 제작돼 SBS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한편, SBS문화재단은 역대 ‘올해의 작가상’ 참여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을 위해, 작가들의 해외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올해의작가상 해외활동기금’을 운영하고 있고, 2016년에는 5가지의 해외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wey1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