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은영 기자]“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일상은 숨 쉴 틈 없이 우리를 채근한다. 각자의 어떤 어두운 틈, 그 안이 바로 장롱 속이다”
2011년 이 작품이 세상의 어느 기괴하고 외진 구석, 깊은 장롱 속 이야기였다면, 2016년 공연은 고스란히 이 현실에 관한 차가운 응시가 됐다는 것으로, 어떻게 장르 환타지물이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사회는 지난 5년간 어떤 경험들을 해 온 걸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 사회, 이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인간 ’들‘에서 출발한다.
‘해님 지고 달님 안고’ ‘엘렉트라 파티’ ‘떠도는 땅’을 통해 자신만의 작가주의적 작품세계를 추구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극작가 겸 연출가 동이향의 ‘내가장롱롱메롱문열었을때’가 지난 2011년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초연 이후 5년 만에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오는 12월 11일까지 공연된다.
이 작품은 23명이 잇달아 자살한 회사의 24번째 남자, 아버지를 살해하고 다시 복제시키는 환상에 빠져있는 륜아, 진정한 인간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포르노에 빠져 있는 르노,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여자 43, 각각의 캐릭터들은 인간 복제, 자살, 살인, 패륜, 욕망 등의 키워드를 상징하면서 엮여 있다.
또 연쇄 살인을 ‘인간 복제’의 문제와 연결시켜 쉽게 삭제되면서도 쉽게 복사되는 현대 인간존재의 특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과 가족, 사회, 노동의 의미를 묻는 과정 속에 ‘자살’이라는 장치가 독특하게 스며들어 있다.
또한 세상 어딘가에선 ‘자살’이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복제’되는 환상 혹은 현실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지긋지긋한 현실에 대한 냉소를 내비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연쇄자살, 복제, 일상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프랑스 통신회사 텔레콤-오랑쥐의 연쇄자살 사건기사와 퇴직 위기에 놓은 50대 중반 김과장 목의 ‘찐감자(실제 존재하지 않는 공 모양의 물체가 목에 걸려 있는 느낌)에 대한 기사,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안방에 4개월 간 유기했던 대학생에 대한 기사, 이탈리아 산부인과 전문의 안티노리 박사의 인간복제 사례 등의 신문 기사를 통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러한 모습은 끔찍하지만 너무 자주 접해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키워드는 ‘복제’로, 이 작품은 이 시대를 사는 ‘나’ 혹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자살은 결국 ‘고유한 자신’을 추구하는 것이고, 복제란 이에 대한 혼란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는 ‘복제’도 ‘자살’도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기재라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일상’으로, 현실의 악몽, 혹은 악몽 같은 현실의 이야기이지 악몽 그 자체는 아니다. 남자24의 현실인식이 어떻게 ‘복제’로 넘어가느냐의 부분은 이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남자24의 이 인식은 거짓말일 수도 있으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제’냐 ‘아니냐’의 극 스토리상의 개연성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발견’을 할 수밖에 없는 남자24의 지긋지긋한 현실인식이다. 마치 SF나 환타지가 되기를 원하지만 실패하는 현실로, 현실은 그저 태연히 흘러갈 뿐이다.
그동안 동이향의 작품들은 관객의 뇌를 쉬지 않도록 자극하면서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대사는 함축적이고 시청각이미지는 강렬했고, 시어와도 같은 짤막짤막한 대사안에는 이 시대의 아픔과 광기와 부조리성이 응축돼 있다. 또한 장면들은 현대사회의 억압과 모순에 대한 소외된 이들의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악몽 같은 느낌으로 그려냈다.
이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짧은 대사들이 폐부를 찔렀고, 난해하다는 느낌으로 보고 있던 장면들이 종종 단 한 줄의 대사로 말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동이향 작품의 묘미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우리 사회의 깊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할 뿐 아니라, 촌철살인과도 같은 대사들이 문학적 텍스트로써의 빛을 발한다.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동시대적 형식으로 풀어내 무거운 주제의식에 짓눌리지 않고 그녀만의 새로운 연희성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한편의 문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은영 기자, wey1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