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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인지능을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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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인지능을 높이자

김기평 기자 gpkim2970@hanmail.net 입력 2017/03/29 14:35
본지 김기평 차장대인지능은 영어로 표현한다면 ‘Interpersonal Intelligence’라 한다. 이것은 평소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좋은 사람은 무조건 좋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강의 듣는데 좋아하는 선생님은 언제나 좋다. 그러나 싫어하는 선생님 있다면 언제나 싫은 것이다. 집에서 좋아하는 아빠가 물 한잔을 떠오라고 시킨다면 반응 동작(Reaction Time)이 매우 빠르다. 그것은 자기가 원하기 때문에 아들 입장에서 아빠가 시키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대개 상사와의 업무를 함에 있어서 상사를 싫어하는 경우 일도 싫어하기 때문에 안 하려고 한다. 그러나 상사를 좋아하는 경우라면 데이트 약속도 파기하고라도 기꺼이 일을 할 것이다. 똑같은 말과 행동이 좋아하는 사람과 나빠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을 ‘감정전이현상’이라 한다. 사례를 들자면 “마누라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보고 절을 한다.”는 말이나, “스님이 싫다면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도 싫다”라는 것들이다.

한편, 국내의 저명 심리학자 이민규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롯찌라는 심리학자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문조사 항목에 “자연계에 폭풍우가 필요하듯이 정치계에도 약간의 반란이 필요하다”라고 설문항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활용하여 선입견에 대한 조사를 한 것인데, 이 설문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찬성 50%, 반대 50%로 나오게 되도록 만든 항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누가 이야기했다고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정반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원래 이 설문항목은 50% 확률이라지만, 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공산혁명가인 레닌을 매우 혐오한다. 그러나 미국대통령인 프랭클린은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결과도 상반된 결과로 나온다는 것이다.

즉 레닌이 “자연계에 폭풍우가 필요하듯이 정치계에도 약간의 반란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면 거의가 부정적으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프랭클린이라면 설문결과도 거의가 긍정적으로 대답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이미지를 구성하는 선입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인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에서 싫어하는 상사. 즉 상무님이 싫다면, “난 상무님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래서 반대해요” 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시키든지 싫으면 전적으로 싫다고 할 것이다. 한편, 설문조사에 의하면, 꼴 보기 싫은 사람이 가장 싫을 때가 언제인지를 조사했는데, 미소를 지을 때라 대답했다. 더 가증스러울 때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친절하게 대할 때라는 것이다.

한편, 다니얼 카네만은 2002년 경제학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인데, 그는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감정에 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는 감성경영시대라는 것이다. 삼성연구소에서 524명의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인지능 즉, 끌림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하였다. 대인지능을 높이고자 한다면 상호간 대화할 때 호감을 끌려고 하려면 대인과 시선을 마주치고 맞장구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에 터치하는 것은 인간의 끌림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길이다.

다음은 대인지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례를 들어보자. 어느 교수님이 계셨는데, 제자 2명 중 한 학생은 합리적인 친구이고 한 학생은 비합리적인 친구였다. 그런데 이들은 평소에 말하는 스타일이 달랐다. 연구실에서 공부하면서 여름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을 틀고 일해야 함에도 교수님은 선풍기만 틀어 놨다. 왜냐하면 강의실은 에어컨이 나와도 교수 연구실은 월급에서 공제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잘 켜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 친구가 “교수님 왜 에어컨을 안 켜세요?” 그러자 교수님은 “응, 에어컨을 켜면 월급에서 공제한단다.” 그러자 한 친구가 “너무 하네요 교수님이 열심히 연구 활동을 하고 고생하시는데, 강의실만 켜주고 교수연구실은 안 켜주니 잘못된 것 같아요”, 그러자 한 친구가 끼어들면서 “우리는 등록금을 내잖아”라고 말했다. 즉, 교수연구실은 등록금을 받아 살고 있는 교수님연구실이므로 돈을 내야한다는 의미로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교수님은 학생들과 자주 가던 중식집에 식사하러 갔다. 식사 후 교수님이 돈을 지불했다.

그러자 동시에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교수님은 비합리적인 친구의 말은 맞는다고 느껴지는데 합리적인 친구의 “고맙다”라는 말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떨떠름한 상태가 되었다. 즉, 합리적인 친구는 교수님이 우리 등록금을 월급으로 받으니 당연히 내야지 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인지능이 비합리적인 친구는 높은데 반하여 합리적인 친구는 매우 낮은 것이다. 그런 친구는 10년 후에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한탄할 가능성이 높다. 그 친구는 동창회가서도 친구와 비교할 때 난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실패했을까" 라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탄하는 원인은 다름 아니라 “나는 등록금 내잖아” 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합리적인 친구라면, 회사에 취업하고, 부장님과 회식 갔을 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비합리적인 친구라면 “식사도 좋지만 부장님의 이야기가 너무 유익하고 좋았다”라고 말하겠지만, 합리적인 친구는 분명히  “부장님이 낸 카드는 우리가 고생해서 번 회사카드잖아”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내가 번 돈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대인지능이 합리적인 친구에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는 곧 나비효과로 작용하여 10년 후 커다란 손실을 안겨주는 것이다. 즉 합리적인 친구는 부정적인 나비효과가 극대화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실패를 가져다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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