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임새벽 기자] 최근 롯데그룹이 롯데캐피탈 지분 전량(37.45%)을 일본 롯데홀딩스 계열에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금융권에서 '고바야시 역할론'이 솔솔 흘러나오는 모습이다.
지난 5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매각으로 금융사와의 시너지가 약해진 상황에서 롯데캐피탈을 롯데그룹 품 안에 그대로 둔 것에 대해 금융권 및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고바야시 마사모토 전 롯데캐피탈 사장에게 같은 역할을 계속 맡기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올해 초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롯데캐피탈·롯데카드·롯데손해보험 등 금융 3사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 계열사 지분 보유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2017년 10월 지주회사로 전환한 롯데지주는 올해 10월까지 금융 계열사 지분을 모두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금융계열사들이 대거 시장에 풀리자 금융지주사들은 물론 해외 금융사와 PEF운용사들이 인수전에 참전하며 매각 흥행이 점쳐졌다. 이 중 가장 시장의 관심이 쏠렸던 매물은 롯데캐피탈이다. 롯데캐피탈은 가계 대출·기업 여신 등 다양한 금융업무를 할 수 있어 활용도와 수익성이 높은데다 손보사와 카드사와는 달리 별도의 대주주적격심사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매물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2월 15일 롯데그룹은 금융 계열 3사의 인수적격후보군(숏리스트)을 발표하면서 돌연 롯데캐피탈 매각을 잠정 보류했다.
롯데가 내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카드·손보의 매각을 마무리하고 다시 캐피탈 매각 작업을 재개하겠다는 것이었다. 롯데캐피탈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롯데캐피탈에 대한 시장의 관심과 알짜배기를 제 3자에 넘기는 것이 아쉽다는 복합적인 이유로 매각을 잠정 중단한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얼마 뒤 롯데그룹은 롯데캐피탈을 외부가 아닌 내부 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에 매각한다는 ‘묘수’를 내놨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캐피탈사는 대주주가 바뀌어도 금융위원회의 승인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공정거래법을 지키면서도 롯데캐피탈을 그룹에 그대로 둘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롯데캐피탈은 1995년 롯데그룹이 설립한 부산할부금융이 전신이다. 다른 회사를 인수해 이름을 바꾼 롯데카드나 롯데손보와 달리 롯데그룹이 직접 설립하여 그룹 내 입지나 경영진의 관심이 남다른 회사로 알려져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도 직접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초기에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간 롯데캐피탈 사장 자리를 지킨 고바야시 마사모토 전 롯데캐피탈 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바야시 전 사장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롯데홀딩스 사장과 함께 한일 양쪽 롯데의 실세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롯데그룹의 국내 계열사 가운데 유일한 일본인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롯데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전방위 수사를 펼치자 돌연 롯데캐피탈 사장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급히 돌아갔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지위는 여전히 유지하는 중이다.
이후 몇 년간 소식이 뜸했던 그의 움직임이 다시 포착된 것은 롯데캐피탈 매각이 본격화 되면서다. 롯데그룹은 매각을 앞둔 롯데캐피탈 사무실 내 고바야시 전 사장의 사무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외부에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지만 금융권에는 “고바야시가 돌아온다”는 소문이 떠돌아 다녔다.
업계의 관측은 지난 9월 롯데그룹이 롯데지주와 롯데건설이 갖고 있던 롯데캐피탈 지분(각각 25.64%·11.81%)을 일본 롯데파이낸셜코퍼레이션에 팔기로 하면서 더욱 힘을 싣고 있다. 롯데파이낸셜은 일본 롯데홀딩스 계열사로, 일본 롯데가 보유한 유일한 금융회사다. 이 회사의 사업내용이 무엇인지, 고바야시 전 사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 롯데그룹 내 하나뿐인 금융계열사라는 점, 고바야시 전 사장이 일본 롯데의 자금흐름을 총괄하는 CFO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사실상 롯데캐피탈을 다시 고바야시 사장의 손에 넘겼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롯데캐피탈은 일본롯데 계열사가 되면 국내 금융당국 등의 관리감독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으로 영업은 한국에서, 경영은 일본에서 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캐시카우로 꼽히는 롯데캐피탈은 끝까지 그룹 안에 남겨두려 할 것"이라며 "사실상 롯데그룹의 금고지기로 통하는 고바야시 전 사장과 롯데캐피탈을 통해 한국 금융당국의 눈을 피해 여러 활동을 도모할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