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과로는 샐러리맨 일생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최대의 난적이다. 술은 다루기에 따라서 친구도 되고 브루투스의 칼이 되기도 하며, 과로는 걸머지고 지혜롭게 견뎌야할 운명이다.
인류역사만큼이나 나이 먹은 술은 인간의 기쁘고 슬픈 자리에 빠짐없이 따라다니는 동반자다. 그건 나이와 성과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인생의 미약媚藥 같아서 사랑을 지피는 불이었나 하면, 보배 같은 숱한 영웅들과 예술가들을 파멸 시키고 요절시키기도 했다. 그건 아주 심술궂은 여신처럼 인생과 역사를 희롱하기도 했다.
인류역사의 어느 장을 살펴봐도 술이 독이 되어 제국을 병들게 만들고 쓰러트렸으며,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들을 비명에 죽게 만들었다.
기업 내부 절도와 함께 기업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데도 이외로 무관심하거나 관대하며 관리가 허술한 일 중에 사원의 음주문제가 있다.
술은 담배와 달라서 즐기는데 적잖은 돈이 들고 다수의 사생활은 물론 직장생활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며 중독될 가능성이 높고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심한 경우는 개인을 망칠뿐만 아니라 기업에 커다란 손실을 끼친다.
미국 기업의 경우 사내 절도와 사원 음주로 인한 손해는 매우 심각하다. 미국 국립알콜중독남용연구소의 직장 음주연구보고에 의하면, 미국 기업들이 종업원의 상습적 음주로 인한 시간낭비, 업무책임을 게을리 하는 해태懈怠, 생산성 저하, 저 능률 때문에 입는 연간 손실이 거의 1백조 원에 달한다고 한 적도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굶는 어린아이들이 수천만 명이므로, 한 끼 식사에 미화 1달러면 가능하다는 유니세프 기준에 의할 경우, 그런 돈이면 새끼 치는 그 이자까지 감안해 수천만 명을 최소 3년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기업의 수익측면에서도 그런 손실금은 업체 당 순이익을 평균 10억 원으로 기준해서 자그만 치 십만 개 기업이 일 년 열두 달 죽어라 땀 흘려 일해 올릴 수 있는 금액에 해당한다.
평소 아끼는 부하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얼마나 중상이었던지 마취과 의사가 병원교회에서 무사를 기도한 후에야 마취에 나설 정도였다. 비관적일 만큼 위독한 상태서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술은 그런대로 성공이었으나 허약한 터에 입은 중상이라 모두가 안절부절 이었다.
그는 열흘 가까운 사투 끝에 겨우 깨어났다. 의식을 되찾은 그가 목숨을 건지게 도와준 것을 감사하는 순간, 나는 안도하면서도 너무나 울화가 치밀어 환자에게 야단이라도 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가 여러 번 사고를 내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초저녁에 억병으로 취해 대로를 휘젓고 걸어가다 차에 칠 정도로 무모했다는 데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고생스러운 장기간 요양으로 거금(능력이 없어 거의 회사가 부담했지만)을 날리고 목발을 짚은 꼴로 돌아왔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명이 길어서뿐만 아니라, 무리해서 지원한 회사 도움과 아마도 성공적인 마취를 간구한 의사의 기도 덕분이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그는 술 때문에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을 것이며 가정을 불행에 빠트릴 번했다. 술이란 저지경이 되도록 만용을 부리게 만드는 것이다.
술이 없으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잘 새겨들어야 할 위험한 유혹이다.
그런 애착은 수호지에 등장하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천하장사 무송이 술을 마실수록 힘이 솟는다는 과장과 다를 바 없다. 술이 만만하고 살가워서 친절한 동무라 여기는 것은 오해다. 더구나 그것을 원하는 대로 다루거나 마음대로 애착을 청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착각이다.
마치 술에 포한 진 것처럼 매일이다시피 그것도 과음을 일삼고서는 비극과 불행을 피할 길이 없다. 술은 샐러리맨에게 요사스러운 애첩과 같아서 지나치게 가까이 할수록 심신을 피폐케 하며 종국에는 파멸하게 만든다. 기업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술 때문에 건강을 해쳤거나 사생활이 뒤죽박죽이고 가정불화가 잦은 사원이 이외로 많다.
그러한 상습 음주 사원들이 기업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 발전에 필요한 시간을 술 마시는데 낭비함으로써 가치 있는 사원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술자리가 잦으면 분수에 넘치는 쾌락을 쫓게 되므로 부족하기 마련인 유흥비 때문에 업무상 부정을 저지르기 쉬우며, 본의 아니게 업무에 소홀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무절제한 음주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사원인 경우, 부정직함과 무책임함이라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은연중에 기업에 비생산적인 폐를 끼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런 사원이란 따지고 보면 기업이라는 공동체에 난 옹(癰 곪은 곳)과 같아서 염통이고 골수고 야금야금 화농 시키는 존재다. 술 때문에 나태하고 능률이 떨어져 생산성과 업무효율이 저조해지는 것은 측정하기가 어려울 뿐 기업 손실의 숨은 유해인자이기 때문이다.
기업주나 상사 중에는 이외로 가학성加虐性 군림 타이프가 많다. 성격이나 언동부터가 달군 프라이팬 같아서 부하들을 달달 볶아댄다. 사원을 마치 소모성 부품쯤으로 여겨 쓰는 데까지 쓰다가 제구실을 못한다 싶으면 대신 새 것으로 갈면 된다는 식이다. 부하를 ‘협동하는 파트너’라 여기지 않고 ‘부리는 일꾼’으로 치부해서 피가 마르던 과로로 진이 빠지던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야말로 가차 없이 부려먹는다.
개인의 자유나 정서나 사생활은 입사와 더불어 몽땅 담보잡고 마치 옛날에 총칼 들려 일렬횡대로 세워 총알받이 삼아 임전무퇴 정신으로 전진하라 전장에 내몰았던 것처럼 설사 죽어 돌아오더라도 경쟁 마당에서 이겨야 한다며 사정없이 등 떠민다.
승리하는 병사가 되라 할 뿐 강한 병사로 성장하도록 배려하는 데는 무성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무적의 신화로 5백여 년의 강국을 지탱했던 스파르타 병사가 강병일 수 있었던 것은 병사가 왕이나 장수보다 더 많은 전리품을 차지할 정도로 그들을 소중하게 아꼈기 때문이다.
기업주와 상사가 권한은 틀어쥐고 책임은 떠안기며 이익을 나누는 데는 인색하면서 부하에게 매주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희생하라 강요하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머리와 가슴과 오장육부에 유해 가스처럼 번져 유익한 세포인 식균세포들을 질식 시킨다.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를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군림하여 지배하기를 좋아하며 자만심이 강하고 명리에 밝아서 성과를 올릴 수만 있다면 부하의 고통과 희생을 제물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런 기업에 아무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불이 켜져 있더라도 그 장래가 밝을 리 만무하다.
부하의 전공을 가로채는데 도사이면서도 상사로부터 질책이라도 당했다 하면 자신의 무능과 두서없음은 생각지 않고, 마치 단체 기합 주듯이 파김치가 된 부하들을 자정도 짧다 잔업 시키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부서장 등, 부하를 머슴처럼 여기거나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졸병처럼 여기는 상사들이 무신경하니 안기는 가학성 스트레스는, 공짜로 향유할 수 있는 귀중한 인간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가뜩이나 고달픈 사원들의 심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 뿐이다.
지금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샐러리맨들의 위기시대다. 불만족과 스트레스와 갈등이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면, 술과 과중한 업무로 인한 과로와 무계획하고 비정한 혹사는 육체적 건강의 적이다. 샐러리맨의 7할이 신경성 위장병 같은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고, 40대 중견 간부의 돌연사가 빠르게 늘고 있는 현상은 봉급생활자들의 건강과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위협 받고 있다는 징후다. 문제는 가해자가 상사이며, 그 희생자가 다름 아닌 사원이고, 그 사단이 무절제한 술이 낳는 해독뿐만 아니라 무신경한 상사의 독선에서 비롯된다는 데 있다.
기업에 닥치는 불경기 같은 통제 불가능한 환경요인이나 시장경쟁에서의 패배 같은 불가피한 위험요소 때문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예방하거나 피할 수 있는 방종과 혹사 같은 자제 가능한 인위적 요인 때문에, 개인과 기업이 함께 망가지고 손실을 입는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이다.
경영 형편이 좋지 않아 쥐꼬리만큼 올려 주는 임금협상 가지고도 해마다 분란을 일으키는 기업들이 부지기수인데 대도시 유흥가에 기업들이 해마다 뿌리는 이른바 회의접대비가 천문학적인 거금에 달한다는 것은 죄다.
그러므로 음식과 특히 술을 지나치게 탐하는 것은 ‘탐식의 죄’를 짓는 것이다. 오죽하면 ‘일곱 가지 대죄’의 첫 머리에 ‘탐식貪食 gluttony’을 넣었겠는가.
노동을 천시하고 땀 흘린 것보다 더 차지하려고 무리한 요구를 일삼으면서도 게으른 것이 ‘나태의 죄’라면, 이익이던 공이던 명예든 그것들을 얻기 위해 일꾼들을 혹사시키고도 정당하게 나누려하지 않고 제 욕심껏 차지하는 것은 ‘탐욕의 죄’며, 그 때문에 일꾼들로 하여금 원망과 복수심을 품게 만드는 것은 ‘분노의 죄’를 짓게 만드는 더 큰 죄다.
기업의 제일가는 윤리가 정의로운 분배인 것은 분노 때문에 평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술이야말로 마음대로 다룰 수 있으면 약이고, 끌려 다니기 일쑤면 어리석음이며, 그 노예와 같으면 그건 갈 데 없는 독일뿐이다. 삶에서 도려낼 수 없는 게 스트레스일진데 그것을 지혜롭게 풀어 도전과 창조의 활력을 삼아야지 그걸 두려워하고 가학해서 술과 짝이 되어 도피하려 든다면 그것 역시 무서운 독일뿐이다.
기업은 술의 노예가 되어 짓는 죄와 무지한 ‘월화수목금금금’ 억지로 짓는 죄를 하루속히 벗어나야 건실한 경영이 가능하고 비생산적인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