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오종준 기자]해인사는 경상 남도 합천군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절로, 송광사 · 통도사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세웠다. 918년에 고려가 건국하자 태조는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아 우리 나라 제1의 도량이 되게 하였다.
조선 태조 8년(1399년)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고려 팔만 대장경판을 옮겨 와 호국 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큰 화재를 입어 다시 짓기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다시 지은 것으로, 대적광전 · 응진전 · 극락전 · 명부전 · 봉황문 · 해탈문 · 일주문 등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 앞뜰의 3층 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며, 여러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 대장경판과 장경판고는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 침략기에는 항일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중요 문화재로 국보 제32호인 해인사 대장경판과 국보 제52호인 장경판고, 그 밖에 보물로 지정된 중요 문화재가 있다. 고려 고종 23년에 착수하여 고종 38년(1251년)에 완성한 대장경판은 나무판에 새긴 것으로 모두 8만 1,258장이다.
고려팔만대장경판 (국보 제32호), 대장경판전 (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월광사지삼층석탑(보물 제265호),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 청량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65호), 청량사삼층석탑(보물 제266호), 지방문화재 제253호 길상탑 등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3호인 광해군내외 및 상궁 옷들과 100여 종의 국보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태조는 이 절에 머물렀던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
해인사는 법보종찰이요, 화엄십찰의 하나이다
최치원의 가야산 해인사선안주원벽기에 의하면 해인사는 순응, 이정 스님에 의하여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되었는데, 그때 왕의 조대비 성목태후가 대시주였다고 한다.
'해인'이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인사는 화엄사상을 천명하고자 이루어진 도장이다.
해인사를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법보사찰이라 부르는 것은 해인사 대장경판전에 고려대장경판인 법보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