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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마음 사기는 고사하고 찬물을 끼얹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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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마음 사기는 고사하고 찬물을 끼얹고서야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20/04/25 09:13 수정 2020.04.25 09:27

유능한 장사 수완은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상인정신에서 우러나와야 힘 있고 오래 간다.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장삿속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박종형 칼럼니스트

마케팅이란 아주 어렵고도 재미난 드라마다.
‘극劇’이 호랑이와 돼지의 불가능한 싸움을 사실화하는 것처럼, 마케팅은, 불확실한 시장에서 판매사원으로 하여금 유령 같은 미지의 존재인 소비자들을 구매 고객으로 실체화해서 상품을 팔게 하는 극적이고도 고도의 사업수단이다.

판매가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은 그 성공을 위해 모든 희망과 자본을 투자해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임으로 성공적인 마케팅 비결이 있다면 기업마다 만금을 들여서라도 그것을 배우거나 사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업들은 뛰어난 마케팅기법을 찾는데 큰 투자를 아끼지 않을 만큼 열심이면서도, 무지 때문이던, 무심해서든, 마케팅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예사로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대수롭잖게 여긴다.

어느 재미교포 주부가 고장 났다 버리려는 친구의 가죽 핸드백이 아까워 얻어 들고 백화점으로 그 판매점을 찾아갔다. 망가진 여닫이 장식을 고쳐 쓸까 해서다. 이미 몇 년을 사용한 것이고 메이커가 일본 회사이므로 백화점 판매코너에서 그런 사소한 장식수리를 맡아 처리해 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수리의뢰는 쉽게 접수됐고, 그 중고 핸드백은 일본 어딘가에 있는 공장으로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날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판매점 담당자를 통해 수리중이니 얼마간 시간적 여유를 더 달라고 양해를 구해왔다.  친절한 안내에 감탄한 나머지 미안해지기 시작한 쪽은 그 주부였다.

여기서 잠깐 그 수리의뢰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상상해 보자. 아마도 가장 무난하고 상식적인 처리는, 잠금 쇠 기능을 되살려주는 서비스일 것이고, 그로서 고객은 만족할 것이다. 설혹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사례처럼 최선을 다 해 보았지만 수리가 어렵다면서 그대로 돌려줘도 고객은 그 회사가 보여준 친절한 성의를 고마워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수리란 문의과정에서 접수를 퇴짜 놀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능란한(?) 영업사원이었다면, 잠금 쇠가 망가지도록 오래 사용했으니 새로 장만하라고 매끄럽게 권유했을 것이고, 고객이 왕으로 보이지 않는 사원이라면, 애프터서비스 보증기한이 지났음을 들어 합리적으로 접수를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 고객서비스 방법들은 어찌 보면 선택이 쉬운 옵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메이커 회사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방법으로 그 주부를 놀라 게 만들었다. 연락을 받고 그녀가 판매점을 찾아갔을 때 담당자가 내민 것은 유사한 모델의 신품이었다. 처음에 최선을 다 해서 수리했으나 본래대로 도금에 실패해서 아예 신품으로 교환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과분한 친절을 선 듯 받아들이기를 망설였다. 그러자 담당자가 오히려 회사를 대신한다면 사과의 말까지 덧붙였다. 잠금 쇠가 몸체보다 먼저 망가진 것은 회사가 지킬 품질기준에 어긋나는 것으로 회사가 마땅히 책임질 일이고, 또 원상태로 도금이 안 된 장식을 그대로 달고 다니게 하는 것은 회사가 쌓아온 명성에 흠이 되는 처리이므로 차라리 신품을 제공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잘못을 깨닫게 해준 고객에게 오히려 회사에서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값비싼 새 핸드백을 받아 돌아서는 그 주부의 가슴속으로 상쾌한 감동이 잔잔하게 흘렀고, 장차 그 회사의 고객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그 회사에 남다른 발전이 있으리라 믿고 축복했다.

그 주부가 집수리를 위해 오랜 수소문 끝에 한 한국계 인테리어회사를 골라 부른 것은 그 핸드백으로 인한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있던 무렵이었다. 실내 수영장까지 있는 저택을 우연만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비용을 들여 하는 대규모 수리공사인데다가, 수십 년 땀 흘려 저축한 돈을 큰맘 먹고 투자하는 집단장인지라 요모조모 살펴 고른 시공회사에 건 기대나 신뢰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10개월이나 걸리는 공사를 참고 견뎌야 하는 불편이 컸지만 그 가족들은 계약된 청사진대로 멋있게 단장돼 나타날 집의 새 모습을 그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게 나타났다. 현관과 거실 바닥에 깐 고급 대리석은 조각끼리 색상과 무늬가 어긋나고 부실한 작업으로 높낮이가 고르지 않아 몹시 눈에 거슬렸다. 거실로 난 문짝은 뒤틀려 맞지 않았으며 페인트칠은 거칠어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그녀는 업자에게 수정작업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공회사는 불응했다. 굳어버린 대리석을 뜯고 다시 깔라니 그 비용이 얼만데 안 될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우연만하면 동포 회사에 일감을 주어야지 했던 자신의 생각과 공사비를 선불한 호의가 화를 부른 ‘감정의 함정’이었음을 후회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하자처리에 대한 주인의 요구가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판단과 방법으로 그 결과를 상상해 보자.

수십 만 달러 거액 수리 공사를 그것도 공사에 차질이 생길까봐 공사 진척도와 상관없이 공사비를 항상 선불까지 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기로 부실 공사를 할 수가 있으며, 미국 같은 신용사회에서 사업하는 기업이 정당한 하자보수 요구를 묵살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조차 하 기 어렵다. 누구나 고객의 요구가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하다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당한 하자개선은 고사하고 시공자 측의 자세는 상식조차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녀가 개탄한 것은 동포라고 베푼 파격적인 호의를 조잡한 공사로 배신하고도 잘못을 사과하기는 고사하고 뻔뻔스럽게 나 몰라라 나자빠진 시공회사의 부도덕한 태도였으며 철면피한 책임회피였다.

결국 그녀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체념하고 독일계 미국인 회사에 재 보수공사를 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회사는 전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더 만족하게 보수를 끝냈다. 

같은 미국에서 일어난 일본인 회사와 한국인 회사의 아주 판이한 영업 방법에서 우리는 ‘한국은 절대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 어느 일본 기업가의 말이 괜한 우월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저들 기업한테 수십 년을 뒤졌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저들 기업보다 한참 낙후되고 모자란 것은 자본이나 기술만이 아니라 기업윤리와 상도의심과 정직과 성실과 신용 같은 정신적 자산까지인 것이다.

우리한테는 가치 있는 기업가정신이나 세일즈맨 십이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네 기업들이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 말만 번드르르할 뿐 영업을 마치 정처 없이 시골 장터를 떠돌며 위약僞藥을 파는 약장수처럼 장래를 생각지 않고 당장에 많이 파는 것만을 능사로 여긴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고객에 대한 대접이 너무나 일방적이고 거칠며 고자세인 것이다.
고객관리에 발 벗고 나섰다고 선전이 요란한 유명 가전제품 회사가 텔레비전 영상회로 판의 접촉 불량 부위를 수 초 간에 전기인두로 지져 고치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출장수리비를 만 원씩이나 받아갔다.

그러고도 고객만족지수가 1위라 자랑하고 그 명성이 계속 유지되리라 믿는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수리를 받은 고객은 바가지를 썼다 속이 상해 이웃에게 그 회사를 욕할 것이며, 언젠가 제품을 구입할 때 정나미 떨어진 기억을  되살려 다른 경쟁사 매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그 회사는 어리석게도 만 원 수리비를 챙기느라 그 몇 십 몇 백배 구매 잠재력을 소유한 미래 고객한테 무신경하게도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기업이 고객을 창출하거나 유지하는데 있어 시장이나 매장에서 고객으로 하여금 어떤 인상을 받고 어떤 기분으로 돌아서게 만드는가는 아주 쉬운 일이면서 너무나 중요하다. 물건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비싸다느니 타박이나 하다가 돌아선다 해서 손님을 향해 인사는커녕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못마땅해 한다면, 그 당시에 본능적으로 뒤틀린 배알의 직성은 잠시 풀릴지 모르나 한 순간의 감정풀이 때문에 한 고객을 영원히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내가 고객으로 겪은 많은 체험들 가운데도 즐겁고 불쾌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 극명하게 대조되는 사례를 한 가지만 들어 본다.
친구한테 이끌려 한 점심 자리에 간 적이 있는데 식당이 청결하니 분위기가 차분한데다 음식이 정갈하니 맛도 좋은 편이어서 속으로 합격점을 주었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등산에 동행한 친구들을 그 식당으로 안내해 점심을 샀는데 그만 기분을 상하는 일이 일어났다. 김치가 떨어져 종업원에게 더 달라 부탁했는데 그녀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동료들과 시시덕거릴 뿐 식사를 다 마치도록 함흥차사였다. 물론 우리 일행은 그 이후 그 식당에 발길을 끊었다. 함흥차사가 된 김치 한 보시기 때문에 그 식당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찾아올 손님 예닐곱 명을 놓친 것이다. 

내가 칠 년 가까이 단골로 드나드는 선지해장국 식당이 있는데 갑자기 먹고 싶어지면 직접 들통을 가지고 가 탕만 사다가 며칠씩 두고 먹기도 한다.
주로 아내가 가깝지 않은 거리를 차를 운전해 가 사오는데 1인분만 사와도 둘이서 두서너 끼니나 먹을 만큼 푸짐하게 담아 준다. 선지나 양 같은 건더기를 많이 달라면 군소리 없이 듬뿍 넣어 준다. 입이 즐겁게 안기는 감칠  맛이 변함이 없는데다 인심까지 후하니 내가 거리가 먼 거길 십 년을 넘게 단골로 드나드는 것이요,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은 것인지 아들에 이어 이젠 손자까지 단골을 만들었다. 그 꺼벙한 식당이 나의 가족 3대를 단골로 엮을 수 있었던 힘이란 게 대체 뭔가 터득하면 그게 다름 아닌 최고로 경제적인  마케팅인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지혜롭지 못하게 이런 저런 순간에 고객을 향해 찬물을 끼얹고도 장사 잘 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밭에다 씨를 뿌렸을 뿐 아무런 정성도 들이지 않고서는 내가 뿌렸으니 수확할 수 있다 여기는 것과 같다. 
기업의 어리석음은 성공한 판매방법을 배우자 한다거나, 어려울 때 일수록 더 광고를 해야 한다느니, 지옥훈련으로 임전무퇴 정신을 길러줘야 한다면서 거금 비용을 처들여 교육훈련을 한답시고 요란은 떨면서도, 고객을 향해 찬물을 끼얹는 언행이나 행동거지를 부단히 가르쳐서 바로 잡아 장래에 시장에서 결실되어 돌아오도록 포석할 줄 모르는데 있다.

고객의 상품에 대한 호감이나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과 신뢰도 같은 마케팅 성공요소들이란 땀과 돈을 수월찮게 투자해 이룩한 자산인데, 거기다 찬물이라는 폭탄을 터트린다는 건 보통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그 폭탄이란 아주 작지만 그 위력은 엄청나다. 그 폭탄 속엔 불신, 실망, 외면, 매도 등이 들어 있어 마치 핵폭발로 무섭게 퍼지는 열풍이나 방사능 오염처럼 나의 시장과 고객들을 파괴한다. 그 파괴적인 열풍이란 빠르게 구전口傳되며 방사능 낙진처럼 오래도록 두고두고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제대로 못하면 산통이나 깨지 말아야지 거기에다 찬물까지 끼얹고서는 국제경쟁마당에서 어깨를 겨누겠다는 것은 어림없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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