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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최고경영자다운 마땅한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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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최고경영자다운 마땅한 각오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20/05/22 13:44 수정 2020.05.22 15:02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진퇴 문제에 어떠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가는 기업한테 매우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그는 기업에 훌륭한 기업가로서 공헌할 수도 있고, 한낱 고급 월급쟁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박종형 칼럼니스트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사장은 떳떳하다. 몇 차례 연임한 후 적당한 나이에 물러난다면 더없이 행복하다. 장수한 후 선종(善終)하듯 퇴직한다면 남다르게 복 받은 것이다.
연임에 실패해 물러나면 대개 조기 퇴직이기 쉬우므로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불행이다. 더구나 임기 중에 해임 당하는 경우는 갑자기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불명예고 불행이다. 장수를 누리고 적당한 나이에 명예롭게 물러나는 전문경영자 사장이란 많지 않다. 그만큼 장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요즈음처럼 경쟁이 극심한 전문경영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자의로 물러나던 타의에 의해 쫓겨나던 최고경영자가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전문경영이란 책임경영을 의미하므로 목표달성 실패나 경영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물러날 가능성은 누구한테나 매우 높다. 과욕으로 공격경영 일변도의 사업 확장을 꾀하다가 회사를 자금의 수렁에 빠트려 사임하는가 하면, 반대로 급변하는 경제여건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앉은뱅이 경영에 안주하다가 회사를 경쟁대열에서 낙오시킴으로써 무능하다 도태 당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장은 경영은 뒷전인 채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개인적 치부를 일삼다가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고, 어떤 사장은 골병든 회사를 인계받아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지쳐 자퇴하는 경우도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업적위주의 경영관을 소유한 불도저 형 사장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조와 싸우느라 키운 내환에 밀려나고, 정직한 품성과 수준 높은 자질을 소유하고도 부도덕한 사주와 무책임한 부하들과의 갈등 때문에 좌절하고 소외당해 자리를 내던지는 경우도 있다.

실로 최고경영자의 명운이란 바람 앞에 켜 놓은 등잔불 같은 것이다. 기업에 단 하나뿐이고 가장 빛나고 가장 선망 받는 그 자리는, 기실 가장 힘들고 가장 불안하며 가장 쫓겨나기 쉬운 자리이기도 하다. 사장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과는 반대로 해임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매년 자신의 경영성적을 평가받는 곳은 주주총회인데, 그곳은 심판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경영성과가 낮은 경우 그들을 쫓아낼 수도 있다.
그나마 주주총회는 규칙이나 따르지, 기업의 통치기관인 이사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해서 경영을 전단하는 소유경영주는 눈 밖에 났다하면 사장 퇴진시키기를 칼로 무 자르듯이 한다. 상법상 규정에 상관없이 사장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 부당하게 쫓겨나도 사실상 그 억울함을 풀 방법이 마땅찮다. 신분보장에 있어서는 부당해고에 항거할 수 있는 사원에 비해 사장은 아주 열등한 것이다. 근로자는 상전이고 고용 사장은 머슴이라는 자조가 괜한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최고경영자는 해임에 있어 이외로 무력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외국과 달리 쫓겨나는 사장이 이외로 적다는 사실이다.  몸보신에 능한 충복 형 최고경영자들이 많은 탓인지 모른다.
사실 기업에 있어 최고경영자의 위치와 역할이란 비유컨대 트럼프의 ‘킹 카드’와 같다. 그 카드의 반신半身 모양의 ‘킹’은 위아래가 같아서 뒤집어도 늘 한 모양새며 그 크기 또한 똑같다. 위쪽 킹은 기업을 대표하며 주주의 이익과 경영을 책임지는 통치자며, 아래 쪽 킹은 기업과 종업원을 떠받치고 떠받들고 있는 수호자다. 이 두 가지 존재 목적과 역할은 불가분에다 반드시 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최고경영자의 한 반쪽은 주주 편으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며, 다른 한 반쪽은 종업원 편으로 그들의 권익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경영이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 또는 사주의 가신 노릇에만 능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종업원 권익을 신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주주의 이익을 소홀히 다뤄서도 안 된다.
그런데 어느 경우든 그 모든 역할과 책임의 완수는 반드시 경영성과가 전제된다. 성공적인 경영을 않고서는 최고경영자의 카드란 쓸모가 없는 것이다.  경영성과를 희생시켜 주주 또는 사주만을 만족시킨다면 종업원의 권익을 저버리는 것이고, 경영성과를 넘어서까지 종업원의 요구에 끌려간다면 그건 주주와 기업 장래에 대한 책임을 게을리 하는 것이다.

경영부실에 허덕이는 기업이 많은 데도 경영실적 부진을 책임지고 물러나거나, 종업원들의 권익을 제대로 신장시키지 못했거나 보호하지 못한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퇴진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사실은 책임경영시대에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는 매년 수만 명에 달하는 전문경영자 사장들이 부진한 경영실적을 책임지고 물러난다. 
대우가 수십억 원 연봉으로 최고 칙사 대접인가 하면 해임 또한 가차 없이 냉정하다. 그건 매우 공정한 고용계약이라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소유경영권을 틀어쥔 기업주가 경영자를 경영능력 본위로 평가해 대접하는 게 아니라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라도 하는 가신쯤으로 여겨 보수를 주는 한 정당한 고용관계의 유지란 불가능하다. 사주 심기를 건드리고서는 무사할 수 없다던가, 아무리 경영 정도에 어긋나도 사주 결정을 거역할 수 없는 풍토에선, 최고경영자가 ‘충복’이니 ‘머슴’ 격이니 하는 비하를 면할 수 없으며, 그 자리란 게 참으로 기약이 없는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그러고서는 노조나 종업원들한테 떳떳할 수 없으며 아무리 바른 길이라도 당당하게 갈 수가 없다.
한 기업의 대표이사란 경영의사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경영실적의 총 책임자이므로 성공적 경영의 공로와 명예를 향유함과 동시에 경영실패의 책임도 지게 되어 있다. 때문에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순간부터 부여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는 언제라도 물러나거나 해임당할 각오로 임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이 부실한 데도 책임지고 물러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책임경영 풍토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임경영의식이 결여된 것은 최고경영자가 곧 사주여서 망해도 내 기업 망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소유경영 의식 탓이거나 전문경영인 사장이 공명정대하지 못한 탓이다. 책임경영이란 게 책임지고 경영한다는 약속이라면, 약속대로 성공적인 경영을 하지 못했을 경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고, 책임을 물어 해임하는 것이 정칙이고 질서다. 

도덕이 훼손되고 질서가 무너지는 사회 혼탁은 지도자나 사회구성원들의 책임의식 결여에서 기인하므로, 부실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어떤 형태로던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부도덕한 처신이다.
책임지는 것은 ‘지도자의 신의’이고 책임을 묻는 것은 ‘질서’다.

최고 경영자가 항상 쫓겨날 각오로 일한다는 것은 올바르고 의미 있는 마음가짐이다. 책임의식이 강한 경영자만이 경영에 최선을 다 하고 공정한 경영을 추구하며 기업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의 비장한 ‘물러날 각오’란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죽을 각오’로 출정하는 것과 같다.  죽기로 싸우면 살고, 이기 듯, 물러날 각오로 경영하면 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떻든 패하면 의연하게 물러나는 게 패장의 명예로운 길이다. 
의연하게 물러나기는 고사하고, 방만한 경영의 하수인 노릇이나 일삼고 부도덕한 일에 앞장서기를 예사로 하고도, 노조 등쌀에 일을 할 수가 없다 탓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집단해고에 서명하고도 잘도 버티고 행세하는 최고경영자들이나 경영자들이 참으로 문제다.
경영혁신은 경영자 진단을 통해 이런 유의 고급 월급쟁이에 대한 물갈이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기업의 경영혁신을 방해하는 저항세력의 우두머리가 바로 최고경영자나 경영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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