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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중역 노릇 이런 맛에 한다..
오피니언

[기업에세이] 중역 노릇 이런 맛에 한다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자 johnypark@empas.com 입력 2020/06/16 09:04 수정 2020.06.16 09:53

도랑물을 마시고 한뎃잠을 자며 수 없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어도 로마제국의 장수들이 언제나 자부심을 가지고 기꺼이 전장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개선행진에 쏟아졌던 .군중의 박수 때문이었다.

내가 초임 이사라는 샛별을 달았던 7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CEO가 존경 받는 지도자로 각광을 받고, 대기업의 중역이 수십억 원대의 연봉을 받지 못하였다. 그때 그들을 매혹시킨 유인誘因은 성취욕이나 명예,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기업이 하도 많고 천차만별이라서인지 모르나 지금보다는 그때가 중역이라는 별이 훨씬 더 멋지고 빛나 보였든 것 같다.

내가 갓 이사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뜻밖에 대단한 호사를 누린 적이 있다. 자가용 비행기로 미국을 관광했던 것이다.
텍사스의 달라스를 떠난 전용 제트기가 걸프 만 해안을 끼고 5월의 청명한 하늘을 날아 마이애미에 접근하며 기수를 낮췄을 때, 우린 창 밖에 전개되는 풍광 파노라마에 넋을 빼앗겼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늪지대와 야자수가 도열해 있는 아름다운 해안선, 그 너머로 에메랄드 빛 바다는 줄지어 서 있는 눈부신 백악白堊 호텔을 향해 하얀 파도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녹색 비단에 호박을 박아 놓은 듯 지평선으로 깔린 상하常夏의 숲 속엔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예쁜 지붕을 인 집들이 여기 저기 평화롭게 모여 있었다.

곧 이어 부드러운 착륙, VIP전용 계류장에서 우리 일행을 태운 검은색 리무진은 짙은 녹음과 화사한 꽃들이 어우러진 거리를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누비며 운하 갓길을 지나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던 바로 그 호텔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우리의 마이애미 호사스런 여행은 시작됐다.

점심 후 인디언보호지역을 시작으로 이튿날 온종일을 관광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난생 처음으로 유람선 선상파티에 초대 받았다. 달콤한 미풍이 살랑거리고 별빛이 쏟아지고 있는 운하에 띄운 유람선이 수면으로 흘려 일렁이는 불빛조차 말할 수 없이 로맨틱했다. 우리를 맞은 팔등신 호스티스들은 놀랍게도 파업 중인 유명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들이었다. 그녀들은 우리를 마치 동양에서 온 칙사처럼 대했다. 달콤새콤한 샴페인과 미녀들의 사근사근한 시중, 쾌적한 밤공기와 정감어린 분위기, 그리고 번창하는 회사를 대표한 귀중한 손님으로 초대 받았다는 뿌듯함이 어우러져 이전에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기분 좋은 즐거움을 맛봤다. 
그날의 파티는 탱고 음악과 춤이 감미롭게 어우러지는 나이트클럽에서 자정 무렵에 끝났다.

여행은 자가용 제트비행기로 일주일이나 계속되었으며, 그동안 이름난 관광지와 레스토랑을 들르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30대 중반 햇병아리 중역으로는 과분한 붉은 양탄자를 밟은 것이다.
그때 미국을 처음으로 갔는데, 창업 공로 치하 성격의 초대여서 여비 말고 가외로 받은 금일봉도 두둑 하겠다 필자는 공식일정을 끝낸 후 혼자서 10여 개 도시나 더 여행했다. 그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햇병아리 이사 신분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호사를 한 셈이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시집가서 고된 청맹과니 시집살이 수년 만에 아기를 낳고 비로소 행복의 순간을 맛본 새댁처럼 입사 이래 처음으로 임원 된 유쾌한 기분을 맛봤으며, 그 한 번의 나들이로 그동안 창업 하느라 무진 고생하며 쌓였던 피로가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그 칙사 대접 여행은 미국 코카콜라회사 본사 사장이 한국의 4개 코카콜라회사 사장들과 영업담당 이사들을 초청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코카콜라를 간장이라고 할 정도로 황무지였든 청량음료 시장개척의 첫 삽을 뜬 이후 놀랄만한 판매성장을 달성한 한국 시업파트너들의 공을 치하하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할 목적이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여행이라니 나 같은 약관의 햇병아리 이사한텐 평생 누리기 어려운 호사였다. 해서 기라성 같은 십여 명 동업 계 선배들 말단에 끼어 날렵한 은빛 동체가 눈부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솟구칠 때 전신에 전율처럼 상쾌하게 퍼졌던 희열은 솔직히 이사 발령을 받았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필자는 이사 창업팀장으로 낯선 지방에서 70년대 초반에 코카콜라회사를 설립하고 마케팅과 관리담당을 번갈아 맡아 일하며 흑자를 내기까지 5년간을 근무했는데, 그때 치른 고생과 어렵게 극복한 난관은 필설로 다 표형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체중은 한 때 비정상 수준인 54 킬로그램까지 떨어졌고, 5년간을 거의 자취를 했는데 2년간은 평균 5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다. 당연히 개인적 취미생활이나 생활적인 즐거움은 챙길 여지가 없었고, 젊음이 때로 갈망하는 유의 쾌락이란 더욱 그러했다.
한 마디로 그 일상은 지겹고 고달프고 힘들뿐 재미라고는 전무했다. 자신을 흔들림 없이 똑바르게 지탱하도록 만든 것은 ‘사명감’과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과 본시 남다른 ‘일에 대한 열정’과 ‘오기’ 같은 것에서 솟는 힘이었다.

그러므로, 신혼 재미에 해당하는, 이를테면 ‘이사 초임 재미’ 같은 것을 맛볼 겨를이 없었으며, 더구나 이사 자리를 뻐겨볼 거리가 없었다. 이사가 ‘기업의 꽃’이라면 고임 받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야 하는데, 고임은 고사하고 저녁을 식어빠진 샌드위치로 때운 날이 부지기수였고, 허구한 날 관청이고 인수한 기존 거래처에 절하러 다니느라 가래톳이 솟을 정도였다.
이사가 ‘기업의 별’이라는 선망에 찬 말도 내겐 해당되지 않았다.

번쩍번쩍 빛나기는커녕 일에 쫓겨 마음은 늘 동동하고 얼굴은 누르퉁퉁하며 온종일 종종거리기 일쑤였다. 겨울 시린 강물에 적셔 얼려 그 맛을 육질 속 깊이 잠재우는 황태처럼 이사된 맛보기를 누르고 뒤로 미뤄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멋대가리 없는 이사 초임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억눌려 쌓였든 피로와 스트레스와 삭막함이 그 칙사 대접 여행 한 번으로 보상 받고 해소된 것이다.

기업 임원이 지치지 않고 일과 사람을 사랑하며 활력에 차서 일하고 생활을 즐기려면 중역 노릇 하는 ‘맛’이 끊이지 않고 새록새록 샘솟아야 한다. 임원 노릇이 덤덤한 데다 고달프기만 하다면 긍정적 인생관이나 창조적 사고의 유지가 어렵다.  중역 노릇이 지겹고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그건 그날  그날을 예나 다름없이 적당히 보내는 인순의 계속이며, 마른 황태를 진국으로 우려 내 진미를 맛보지 않고 마른 살을 그냥 씹는 것같이 무미건조하게 된다.

그 ‘맛’이란 일종의 유인(inducement)을 말한다. 그것들 중에는 중역한테 꼭 필요한 게 있는가 하면 사람에 따라 그 모양과 수준과 소스가 다르기도 하다. 어쨌든 세상 살 맛이 날 정도로 중역 노릇이 신나면 된다. 그렇지 못한 중역은 개인도 기업도 불행하다. 그 맛은 기업이 챙겨주는 것과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 향유하는 것이 있다. 기업이 챙겨주는 ‘만족한 보수’는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이다. 그걸 기대하고 약속해야 경영성과를 최대한으로 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솟는다. 만족한 보수는 높은 경영성과가 나야 정당하고 자연스럽게 줄 수 있으므로 신나는 중역 노릇과 매력 있는 유인은 불가분의 상관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유인이 보수 같은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타성적인 도덕성의 경시’와 ‘변질된 인간관계의 아무렇지 않은 수용’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이나 자리보전 때문에 경영진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도덕적 해이나 인간관계의 변질이 불가피하게 된다.
중역 노릇의 진가를 발휘하고 참된 맛을 누리는 데는 돈과 지위 같은 것들 못지않게 가슴 뿌듯하게 만드는 명예와 보람, 성취감이 필요하다. 후자만 있고서는 생존이 어려운 것처럼, 전자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중역은 경영성과 달성의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 중역이란 ‘발탁된 전문경영자’가 아니라 ‘용병 경영대행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기업의 무수한 중역들은 과연 ‘별’ 답게 빛나며 신나게 빛난다 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우리네 기업에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 형 중역이 많다.  본시 석학인 저들 파우스트는 지위와 부를 얻기 위해서든 자리보전을 위해서든 샛별의 명예와 긍지와 사명을 저버린 채, 어떤 이는 부정의 하수인이 되고, 어떤 이는 비굴한 사냥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유의 천박한 타락이란 무엇보다도 별세계 경영진의 수장격인 소유경영주나 그들이 위임경영자를 앞세웠을 뿐 사실상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경영 개입에 기인한다.

소유경영주들은 중역들로 하여금 중역 노릇 신나게 만드는 데는 영 아둔하고 무관심하며 일방적이다. 임원을 마치 종 부리 듯 하는 독선경영, 인사횡포, 가신 취급, 임기 동안만 신분이 보장되는 임원의 불안한 장래에 대해 무관심한 비인간성 등 찬물 끼얹기나 비정하기가 예사다. 문제의 영주 식 소유경영 때문에 임원은 별답게 새록새록 빛나기는 고사하고 소유경영주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약삭 바르게 눈치 살피고, 언동이 고분고분 충복 스타일이어야 하며, 주인이 원하면 언제라도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팔지 않을 수 없다.

경영성과를 책임지는 중역의 의무만 해도 그 기속의 굴레는 억센 쇠심줄인데도, 통치기관인 이사회에서 그들은 기실 상법상 보장된 의결권을 소신껏 행사하지 못하는 핫바지이기 보통이다. 임원답게 처신하자 언감생심 소신을 가지고 도전했다가는 언제 별똥별 신세가 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네 기업 풍토란 게 그토록 산성화되어서 샛별들로 하여금 찬란하게 빛나게 만들기보다는 몸 사리게 만들고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다. 중역들로 하여금 영혼을 팔지 않고 약관에 천군만마를 지휘해 위대한 패업을 달성한 알렉산더 대왕 같은 지도자로 기업에서 일생을 살도록 하려면 저들에 대한 기업이나 소유경영주의 대접이 바뀌어야 한다. 주종관계 형 경영방식 대신에 자립심이 강한 창조적 경영자를 기르는 경영을, 핵심 부품처럼 써먹는 대신 부단히 자기 개혁과 발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을, 평생을 뼈 빠지도록 피 말려 일하고 쓸모없어 퇴진해도 나머지여생을 걱정 없이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노후대책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대학교수처럼 안식년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등 일체의 정체와 저조로부터 해방되어 유유자적하며 정신적 육체적 재충전을, 하고 고루고루 누리게 한다면 그 얼마나 멋지고 가치 있는 ‘중역신바람’이 경영진과 가정과 그들 장래에 불겠는가.
우리 기업에는 ‘중역 노릇 이런 맛에 한다!’며 신나고 행복해 하는 중역이 너무나 적다. 신명 내는 중역들이 많아야 그 기업이 발전하고 평화로우며 장수할 수 있다. 신바람은 사원한테만 중요한 게 아니라 경영진한테도 아주 중요하다. 신바람이 불지 않아 경영분위기가 인순현상으로 침체될 때 사원보다는 경영진의 그것이 훨씬 기업한테 해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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