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라고 다 같은 별이 아니다. 태양처럼 빛나는 붙박이별이 있는가 하면 사라질 때만 잠시 빛나는 별똥별도 있다. 기업의 별인 임원도 그러하다.
외환위기가 닥쳐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부실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임한 임원들은 상당수에 달했다. 하도 많은 별들이 졸지에 떨어졌기에 그들의 신음소리가 도처에 진동했다. 어떤 재벌에선 해직은 물론 수십 명씩 형사고발을 당해 영광스러웠던 과거가 졸지에 허망한 불행으로 변했다. 역시 별이란 하늘이라는 있어야할 자리에서 빛날 때 별이지 떨어지면 별똥에 불과한 것이다.
기업에는 무수한 샛별이 돋고 오래도록 빛나는가 하면, 짧은 임기를 살다 별똥별로 진다. 그 생멸의 갈림이란 게 가히 극적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회사원이 버리지 못하는 꿈은 별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기업의 별은 이사理事다. 임원중엔 찬란하게 빛나는 항성 같은 이사가 있는가하면,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죽은 별, 썩은 별, 있으나마나한 무능한 별 등 똥별도 있다. 군대에선 졸병이 장군이 될 수 없지만 기업에선 가능하다. 기업에서 벌이는 경쟁이 꾸는 꿈은 ‘별 따기’이고, 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꿈을 꾸지 않는 회사원은 없다. 빛나는 이사 자리로 신분 상승을 한다는 것은 연못 애벌레 매미가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우화羽化 같은 멋지고 자랑스러운 변신이다. 평사원에서부터 보통 이십 년 가까운 긴 세월을 땀 흘려 공든 탑을 쌓아도 별을 딸는지 기약이 없다. 하나뿐인 대표이사 자리 왕별은 더하다.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별을 달면 그것이 하나에 불과하고 설사 앞날에 영욕이 엇갈릴지라도 그 화려한 변신은 가히 눈이 부실 정도다. 독방 사무실에 고급스러운 비품과 비서, 운전기사가 딸린 전용 승용차와 껑충 뛰어오른 보수에 당장 어깨가 으쓱 선다.
무엇보다 가슴 뿌듯한 것은 이사회 참석이다. 얼마 전까지도 같은 반열에 서 있던 부장이 정중하게 건네는 회의 자료를 받아들고 진홍 빛 고급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달콤하기만 한 공기를 여유 있게 마시며 걸어가, 장중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우아한 마호가니 탁자에 앉는 순간, 발치와 열 손가락 끝에서부터 가슴을 향해 전율처럼 짜릿하니 몰려오는 상쾌한 흥분과 감동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희열이다. 그 감미로운 만족감은 수십 년 과거에 뿌리고 얼룩진 노력과 희생에 대한 멋진 보상이다.
고대 로마 청년들이 가장 선망했던 영예는 승전하고 돌아와 로마 거리를 행진하며 시민들로부터 영웅으로 환호와 갈채를 받는 개선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승장들이 하나 같이 값진 전리품을 미련 없이 부하 전사들에게 나눠주고 전공을 개선환영식으로 보상 받기를 즐겨했던 것은 오로지 영웅으로 대접 받는 명예를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 명예는 나라 사랑과 의로운 용기에 대한 존경과 찬양으로 엮어 씌운 월계관이었지 처음부터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추구한 게 아니었다. 무적 한니발 장군으로부터 로마를 구한 파비우스가 그러했고, 로마제국을 건설한 카이사르가 그러했다. 말로가 어떠했던 간에 그들은 로마제국에 찬란하게 빛났던 별들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영웅의 명예’란 무엇인가.
기업에 있어 임원이란 한 때 반짝이다 사라지는 스타 같은 존잰가 아니다. 기업은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영웅’이 필요한 것이다. 그 명예는 임원의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기업에 헌신하고 기여해서 얻는 월계관이다.
임원으로서 기여한다는 것은 개선환영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장수처럼 자기희생과 목숨을 건 헌신을 필요로 한다.
이사가 되는 순간 화려한 변신과 함께 짊어지게 마련인 임무와 책임은 매우 크고 무겁다. 포괄적 책임을 의미하는 경영책임이란 장수의 전승 책임과 같은 것으로 목숨을 걸고 싸워 얻는 명예다. 돈이나 지위 같은 것보다 높은 차원에 속하는 보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별을 다는 순간부터 지위나 돈이 아닌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명예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지 않는 경영자란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쉬우며 그 책임정신의 결여 때문에 경영을 망가뜨린다.
임원이 항상 명예롭게 빛나며 자리보전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법적으로 이사는 계급정년에 해당하는 임기 동안만 그 신분을 보장받게 되어 있다. 주주총회에서 연임을 동의하지 않으면 그날로 물러나야 한다.
더욱 문제인 것은 기업의 통치기관인 이사회가 사실상 사주 소유경영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선 사주의 말 한 마디로 임기에 상관없이 언제 해임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간부 사원과 달리 설사 부당한 해임을 당했다 해도 상법상 규정에 상관없이 실제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게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오죽하면 이사가 되는 순간 그가 목숨까지 앗아가는 횡포와 모순을 상징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였다고 비유하겠는가.
그러므로 임원이 비록 삼장법사 같은 사주 손 안에 쥐어진 처지일지라도 어떻게 임원답게 자주적이고 정의롭게 처신할 것인가 라던가, 온갖 불의에 찬 유혹을 떨쳐버릴 것인가는 개인은 물론 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요 자신과의 싸움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은 외부경쟁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고 안으로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관리를 하는데 바깥에서 버는 일이나 안에서 그 수익을 쓰고 지키는 일 모두가 경영진의 지휘와 책임아래 수행된다. 따라서 임원은 라인조직의 부서장 또는 참모조직의 지휘자로서 실전의 승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범위는 부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총체적인 경영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까지 미친다. 승패는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패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항상 반반이다. 패전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불명예로서 기업은 패전의 책임을 묻는데 가혹하다.
처음에 그토록 가슴 뿌듯했던 이사회가 냉혹한 심판장으로 둔갑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거기서 살아남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거기서 자리를 빼앗기고 별똥별처럼 사라지는 별이 부지기수다. 그처럼 별이 빛나는 행진이란 결코 순탄하지 않은 것이다.
샛별이 그 빛을 읽고 똥별이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첫째가는 적은 안일무사주의라는 ‘인순因循의 함정’으로 빠트리는 무능이다.
이사 행세나 하며 세월을 보내다가는 언제 부하 도전자들에게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 실력을 쌓는 노력을 한시라도 게을리 하고서는 자리 보전이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변화가 무상하고 빠르며 배울 게 많은 기업 환경과 풍토에선 더욱 그렇다.
아무리 유능해도 별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만사휴의다.
임원이 요절하는 사연은 간단하다. 기업에 주렁주렁 매달린 ‘금단의 황금사과’를 훔치면 끝장 보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바른 몸가짐을 견지하더라도 언제 배신의 ‘브루투스의 칼’을 맞고 명이 끊길지 모른다. 더욱이나 슬기롭고 진실한 인간관계 유지에 힘쓰지 않아 존경과 신망을 잃는다면 그 생명은 위태로워진다. 건강을 잃는 것 또한 요절의 저승사자다. 건강을 잃어 임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내 퇴직하거나 요절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임원은 건강을 지키는데 반드시 지혜라는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아무리 임원답게 처신하며 유능한 경영자로서 열심히 일한다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저승사자가 있으니 그건 경영부실이다. 부실경영의 제단에 올려지는 가장 흔하고 어울리는 제물은 다름 아닌 ‘임원’이라는 희생양이다.
별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책임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부정이든 무능으로든 흠집이 난 빛바랜 똥별이 물론 도태 1순위다. 평사원과 달라서 사표 한 장으로 내쫓아도 제대로 비명 한 번을 지를 수 없는 처지가 임원이다.
시초에 샛별처럼 잘도 빛났던 임원의 일생이란 게 그처럼 허망하게 마감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별이 안고 있는 운명적인 약점이다. 그 일생이 어찌 영욕으로 얼룩진다 하지 않을 것이며 항상 샛별처럼 빛나도록 처신하는 게 어렵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비유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별 달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것처럼 별을 단 후 샛별처럼 빛나기를 한시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수를 바라볼 때 알 수 없는 흥분과 찬양으로 가슴 벅차 오르듯 성공한 기업 임원은 상상만으로도 멋있는 영웅이다.
지금 기업을 생각할 때 우리가 서글프고 낙심되는 건 기업에서 그런 영웅을 자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사나이가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는 명예가 뭔지를 모르듯 충복처럼 임원노릇 하다가 한 차례 회오리바람이 불었다하면 마치 늦가을에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비천한 꼬락서니로 떨어지는 별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샛별은 변함없이 빛나되 특히 어둠 속에서 더욱 돋보이게 빛나는 것, 그처럼 임원도 기업 여기저기에서 늘 빛나되 특히 기업이 어렵고 힘든 길을 갈 때 더욱 밝게 빛나야 그 기업이 좋은 기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