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프리존]한운식 기자= 과거 재벌들은 70년대 후반부터 호텔을 하나씩 갖추기 시작했다.
삼성은 ‘신라’, 선경(현 SK)은 ‘워커힐’, 럭키금성(현 LG)은 ‘인터컨티넨탈’, 한국화약(현 한화) 는 ‘프라자’ 등 이런 식이었다.
결코 돈 되는 사업은 아니었다. 남들이 하니 우리도 하자는 일종의 ‘구색 맞추기’였다. 휘황찬란한 호텔은 외양을 중시했던 당시 재벌의 면모를 세워 주기에도 충분했다.
이랬던 호텔이 대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3일 재계와 호텔업계에 따르면 거대 자본과 마켓팅파워를 투여해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하는 시험대이며, 이를 바탕으로 면세점 등 유통영역으로까지 외연을 확장할 수 있어서다. 특히 코로나 19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역시 재계 1위 삼성이 한발 더 멀리 가 있다.
삼성 계열사인 호텔신라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5조7173억원으로 전년보다 21.3% 증가하는 등 그동안 성장세를 보여왔다. 영업이익은 2959억원으로 41.5%, 순이익은 1694억원으로 53.6% 증가했다.
다만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실적이 급감하면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호텔신라는 당분간 호텔쪽보다는 면세점에 더 치중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 매출에서 면세점이 87.9%, 나머지가 호텔·레저 부문에서 나왔다.
지난달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독립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삼성이란 울타리 안에서 경영 안정화에 주력하는 것이 관측이 지배적이다.
호텔신라는 세계 3대 면세사업자 지위에 오른 신라면세점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호텔사업도 세계로 뻗어나가며 동남아시아·미국·중국 등 해외 10여곳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호텔이 주사업 영역인 롯데는 호텔롯데를 아시아지역 체인호텔 3위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이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선진국에는 한국 서비스기업이 진출할 여지가 적은데 호텔롯데가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호텔롯데는 지난 9월 미국 시애틀에 5성급 호텔인 ‘롯데호텔 시애틀’을 위탁경영 방식으로 개장했다. 이는 초기 투자비용을 낮추고 빠르게 규모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호텔이 하얏트, 힐튼 등 글로벌 호텔 체인에 경영을 위탁한 사례는 많았지만, 이처럼 한국 기업이 미국 5성급 호텔을 위탁받아 운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신세계그룹도 호텔 사업에 있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는 신세계조선호텔의 6번째 ‘호텔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명동'을 지난달 30일 오픈했으며 내달부터 내년 4월까지 개장을 준비 중인 호텔만 3곳에 이른다.
우선 내달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그래비티 서울 판교, 오토그래프 컬렉션'을 오픈한다. 같은 달 기존 '켄싱턴호텔 제주'를 리모델링해 만든 '그랜드 조선 제주'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어 내년 4월에는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개관을 준비 중이다. '그랜드 조선' 이상 급의 신세계조선호텔의 최상급 독자 호텔 브랜드로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구 '르네상스 서울' 호텔 자리에 들어선다.
신세계그룹에서 이마트, 호텔 등을 관장하고 있는 정용진 부회장이 온라인 쇼핑의 상승세로 이마트가 부진세를 면치 못하자, 호텔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GS그룹도 GS리테일을 내세워 호텔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파르나스호텔은 서울 강남 소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등 특급호텔 2곳과 자체 비즈니스 호텔인 ‘나인트리’를 운영 중이다.
나인트리는 현재 명동·인사동·동대문 등 4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판교에 호텔을 출점할 예정이다.
특히,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은 약 11개월에 걸친 리모델링을 마치고 오는 내달초 1일 재개관한다.
HDC(현대산업개발)그룹은 국내 주택사업에 쏠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호텔 사업에 나선 경우다.
호텔HDC를 통해서 하얏트호텔의 최고급등급인 ‘파크하얏트’를 서울과 부산에서 운영하고 있다.
HDC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호텔 사업에 역량을 더 쏟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HDC가 운영중인 HDC신라면세점도 시너지 효과를 더 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호텔업계가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도 대기업들이 호텔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는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에 따른 것이다 ”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