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구멍가게를 개업해도 돼지머리를 올린 고사 상을 차려 놓고 정성스럽게 빈다. 그야말로 가진 것 모두를 걸고 벌이는 창업은 성공을 도와 줄 젖어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벤처 창업은 여니 일반 창업과 달라서, 그 과정이 분명하게 나뉘고, 과정마다 어떤 일을 해내고,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며, 어떤 위험부담이 뒤따를 지를 판단해야 된다. 그 성공적 추진 프로세스가 매우 과학적이어서 돼지머리가 결코 행운의 상징일 수 없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단한 열정으로 땀을 많이 흘린다고 성공확률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과 함께 매우 합리적이고 계획적이어야 한다.
그 과정은 보통 세 단계로 나뉘어 추진된다.
첫 단계는 ‘개발과정’이다. 연구개발을 통한 새로운 기술 또는 제품을 창조해 내는 게 그 목표로 ‘제품화과정’이라고도 한다.
그 과정은 상품화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 단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구개발의 달성 가능성에 의해 상업화의 가능성이 좌우되며, 그 짜임새의 수준에 의해 창업일정과 투자규모가 좌우되어 결국엔 수익모델의 꼴과 수익성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신기술 및 신제품의 개발은 고급 기술 인력에 의해 추진되는데 새롭고 유일한 제품을 발명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존의 산업기술을 응용해 보다 기술성이 뛰어나고 보다 경제적이며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해 내는 경우도 있다.
개발과정을 이끄는 주역을 ‘기술천사’라 할 수 있다. 이공계 석, 박사들과 장인(匠人) 기술자와 기술 아이디어 맨 등은 개발 도움천사다. 그런 천사들은 대개 대학과 연구소, 또는 생산 공장에 있다. 그들은 평상 속에 묻힌 보석이라 할 수 있어 찾아내어 쓰지 않으면 그 진가가 빛나지 않는다. 저들은 진정 기술보육과정(technical incubation TI)의 유능한 젖어미 보육사 감이다. 그러나 저들이 진정 애정을 쏟는 젖어미 노릇을 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저들이 천사 같은 역할을 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개발활동에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기술천사들은 미국과 달라서 지식은 그들 못지않게 박사지만 창조적 개발엔 훨씬 열등하며, 장사 속(상업화)에 있어서는 한참 서툴고 촌스럽다.
기술천사들이 캠퍼스에 넘쳐나도 좀처럼 벤처 창업 열기가 달아오르고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저들이 한 결 같이 모험을 두려워하는 앉은뱅이 박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험에 나서는 기술천사가 없는 공과대학은 숨 쉬나 죽은 대학이며 기술천사 노릇을 하지 않는 석, 박사나 기술자들은 캐어 다듬었으나 쓰이지 않는 보석일 뿐이다. 진정한 지식의 가치에 대해 공자나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것처럼, ‘지식이란, 아는 것(知)보다는 좋아하고(好) 즐기는(樂) 게 더 중요하고,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사용하는(用) 것’이다. 개발에 있어 기술이던 제품이던 지향하는 가치란 바로 그런 실용성이며, 개발의 미덕은 가치가 있는 제품화 가능성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상품화과정’이다. 시작품(試作品) 생산으로 제품화 성공이 확인된 개발제품은 상품화과정으로 넘어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실천계획을 세우고 타당성을 검증하게 되는데 상업화과정중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상품화는 ‘상품화 가능성’과 ‘상품화 가치’ 두 가지가 다 충족돼야 한다. 아무리 많은 투자와 노력과 시간을 들여 개발에 성공했다 해도 그 개발제품이 팔릴 수 없거나 팔리되 많이 팔릴 수 없다면 소용없으며, 또한 상품화 가능성이 아무리 높다 해도 팔아 이익이 나지 않으면 상품가치가 없으므로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해서, 상품화과정의 길라잡이를 기본사업계획으로 삼아 거기에다 모든 비전과 구상을 담아 설계한다. 그리고 상품화 가능성을 검증하는 판매달성가능성서부터 시작하여 수익성과 자금성 등에 이르기까지 상품화 가치를 저울질하는 과학적인 사업화 타당성을 따져본다. 이를테면 이 제2 관문은 일종의 도상작전(圖上作戰)과 같아서 다음 단계로 가는데 반드시 합격해 통과해야 되는 관문이다. 거기서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수준 이하면 창업을 포기해야 한다. 부정적 평가는 곧 위험부담과 실패할 확률의 예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상품화과정에 엉성한 사업계획만 가지고 주먹구구식으로 덤벼들거나, 타당성에 대한 검증 없이 근거 없는 자신과 객기만으로 착수하는 창업자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저들은 대부분 창업에 실패한다.
사업계획의 수립과 그 타당성 검토방법에 무지해서거나, 또는 잘못된 인식에 의한 무지나 시간에 쫓겨 서두르기 때문이다. 벤처 창업의 경우 그런 주먹구구식 밀어붙이기로는 결코 무사할 수 없다. 창업 성공률이 5 퍼센트 수준에 머문다는 게 다 그런 데 기인한다.
그러므로 상품화과정을 통과할 때 알맞은 옷을 지어 입는 것처럼 달성 가능한 사업계획을 짜고 철저한 사업성 검증을 도와줄 ‘경영천사’가 필요하다.
저들은 박사는 아니지만 상업화에 전문가고 도사다. 만일 돌팔이가 도움천사를 자처하고 나서 창업자를 인도한다면 거덜 나게 만들 게 자명함으로 위험천만하다. 그만큼 상품화과정은 중요하다.
창업보육의 경영보육과정(business incubation BI)이 바로 저들 도사들이 개입하는 시기다. 저들이 필요한 이유는, 한 마디로 달성가능하고 경제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고, 그 기준과 요령에 맞춰 기업을 설립하고 공장을 지으며 지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상에 경영천사 감은 많다 하고 대학에 경제 경영학 박사들이 무수하나 시장싸움에서 살아남고 이길 수 있도록 한 수를 가르칠 백전노장들은 드물다. 기업경영 경험이 아무리 많다 해도 한 부문에 전문이면 도사라 할 수 없다. 특히 대학의 박사들이 실전경험이 부족하고 기업 현장에 밝지 못하며 관리들은 그런 핸디캡에다 전문성마저 부족해서 경영천사 노릇에 한계가 있다. 실제에 있어 도움을 제대로 줄 경영천사란 생각보다 희소한 것이다.
벤처 창업의 성공을 가로막는 그런 커다란 걸림돌을 제거하는 대책이 당면과제 중 하나다. 창업자를 요절시키는 고질적 돌림병이 엉성한 수익모델과 허약하기 짝이 없는 자금계획인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상품화과정에서 사업계획의 수립과 사업성 검토를 적당히 하거나 도외시해서 창업자가 자초한 함정인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영업화 과정’이다. 도상작전에서 검증하여 확신한 사업계획을 실전으로 옮기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판매가 그 궁극적 목표다. 판매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기본이며 젖줄이다. 판매에 달리는 매출이라는 열매가 자금의 원천이며 매출에서 매출원가를 뺀 매출이익이 이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 샘에서 나는 자금과 이익 가지고 경영하는 것이므로 제대로 이익 남기고 판다는 영업 전략은 창업 완성의 관건이다. 마케팅전략과 계획에 혼신의 힘을 실어 각고의 노력으로 달성하려는 게 다 그런 중요성 때문이다. 영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전 과정의 모든 노력과 투자가 모두 허사가 된다. 그 과정에는 경영천사에 더해 ‘자금천사’가 필요하다. 그 천사는 자금실력뿐만 아니라 사업화 성공에 자신이 있어도 자금이 없어 창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미래 사업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창업자들 또는 기술과 제품을 발굴해 내어 투자하고 키워 주려는 비전과 모험심과 애정과 보람 같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벤처 창업의 경우 저들의 제일가는 역할은 창업초기화자금 투자에 있으므로 저들의 ‘투자정신’이란 게 창업자의 창업정신 못지않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는 창업환경이나 여건 때문이긴 하나 어쭙잖게 정부가 오지랖 넓게 그런 천사를 자처하고 나서 너무 헤프게 젖 선심을 쓰는 바람에 창업자 버릇이 나쁘게 들었다. 무모한 돈키호테형 창업자가 너무나 많이 생겨났고, 그들한테 혹한 묻지 마 식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망치고 자신마저 거덜 나게 만들었다. 창업보육을 위탁 받은 대학들은 그게 무슨 위신이 걸린 일이라고 진실한 청사진도 없이 보육센터 인프라 구축에 쓸 정부 지원자금 따내는데 기를 쓸 뿐 재단 자체가 자금천사로 나서는 경우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금천사의 올바른 본성이란 돈 놓고(투자) 돈 먹는(투자수익) 데 밝고 이골이 나야 마땅하므로 장삿속일 수 없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자금천사를 맡고 나서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금천사가 벌이는 창업투자는 어디까지나 돈놀이 하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비즈니스게임이기 때문이다. 미국엔 세 천사들이 많고 그 활동이 대단하다. 벤처왕국이라는 실리콘밸리는 사실상 저들에 의해 통치되며 그 젖줄인 스탠퍼드대학교나 버클리대학교는 모태였고 여전히 기술천사와 경영천사의 어머니다.
미국엔 그런 천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창업을 돕는 유명한 대형 연구단지(cluster)만도 수십 개나 된다. 어떤 연구단지는 종사하고 있는 인구만도 5만 명에 달하는 한 도시 같은 곳도 있다. 부를 찾아 모험항해에 나선 거대한 첨단 벤처선단인 것이다. 우리처럼 천사들의 활동무대는 고사하고 필수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해 놓지 못한 터에 무슨 ‘밸리’니 요란을 떠는 속 빈 강정이 아니다.
천사는 한 하느님의 천사인데, 어째서 벤처 창업의 경우엔 미국 천사들이 유독 훨씬 더 천사다운 건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엔 원대한 포부와 안목을 가진 모험가가 적고, 관리가 벤처에 무지하며, 교수가 안일무사해서 천사의 배출이 밑바닥인지 모른다. 천사들을 만들고 불러 모으지 않고서는 벤처 창업의 만개(滿開)는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