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뉴스프리존] 전영철기자= 하고 싶은 이야기(4): 시민이 원하는 장례식장을 만들다.
이번에는 청주의료원 경영정상화를 위한 파견 근무 경험 중 장례식장 경영개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은 1996년 상반기까지는 의료원이 직영을 했다. 하지만 변변찮은 수입에 비리 소문이 끊임없어 민간에 임대하게 되었다. 심지어 임대를 위한 입찰을 할 때, 예정가격을 누설한 부장, 과장, 팀장이 구속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임대업자는 기대와 달리 서비스 개선보다는 폭리를 취하는 운영을 했다. 고객들의 원성은 자자했고 나쁜 이미지는 청주의료원으로 전가되었다. 마침 장례식장 임대 기간이 만료되어 계약을 해지하자, 업자는 소송으로 대응을 하면서 반환을 지연시키고, 한편으로는 상당한 재고 물품을 비축해서 장례식장을 인수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했다.
이렇게 청주의료원은 1997년 하반기에 장례식장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나, 장례식장에 제대로 근무한 직원은 없었다. 나는 1달간을 주야로 근무를 하며 업무 하나하나를 챙겼다. 당시 목표는 투명하고, 비리는 없고, 상주가 필요한 모든 것을, 좋은 제품으로, 싸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장례식장의 모든 가격을 공개했다. 그러자 당시 상포사(수의 등 장례물품을 취급하는 업소)는 가격을 공개하지 말라고 집단 항의를 하고, 원장 면담도 했다. 당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서는 상품(上品) 수의 한 벌을 18만 원에 판매했는데, 시중에서는 몇 백만 원씩 판매로 폭리를 취했다.
염사에게는 누구에게도 금품수수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수 외에 시신 1구당 10만 원을 주기로 약속했다(후일 노조 반대로 시행 못 함). 상주에게는 단 한 번의 결제로 장례식장 비용은 물론이고, 영구차와 상여, 그리고 장지에서 필요한 포클레인, 잔디, 인부, 음식, 천막 등까지 모든 지원을 했다. 또한, 장사를 치르고 1주일 이내에 전화로 친절도, 금품수수, 음식 맛 등의 만족도 조사도 했다.
상품 가격과 관련하여 공산품은 최소한의 이윤만 붙이고, 수시로 구매하는 농산물은 시중 가격과 입찰가를 비교해서 상주와 의료원이 차액의 50%씩을 각각 나눠 가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외부 의뢰로 주문이 이루어지는 화환은 업체를 입찰로 결정하고 차액을 전액 장례식장으로 귀속시켰다.
떡과 삶은 고기 등은 주문 후 배달 시간까지 정해서 입찰했다. 상여도 종류를 단순화하여 입찰을 했으며, 상주가 입는 양복도 당시 최고급 제품으로 30벌(나중에는 50벌)을 구매해서 임대했다. 이렇게 상주가 원하는 모든 것을, 최고의 제품으로, 최단 시간 내에, 최소의 비용으로 서비스를 해주었다.
위와 같이 개선 후, 상가 1인당 장례비용을 분석을 해보니 평균 250만 원에 미치지 못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이용객이 늘어났다. 금전 계수기를 구매하고, 접견실이 모자라 컨테이너를 설치했으며, 시신을 안치하는 냉동실조차 부족해서 시신이 대기하는 일도 생겼다.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을 이용하려고 위급한 환자분들이 청주의료원 응급실과 중환자실로 몰려들기까지 했다. 장례식장 평균 가동률은 한때 120%가 되었다. 장례식장 인수과정에 소송과 함께 속칭 ‘깍두기’와 대치도 하고, 장례와 관련된 기존 업체와의 갈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대 성공을 거두었다.
앞서 소개한 청주의료원 경영정상화 과정을 강 건너는 것과 비유하면, 강폭과 깊이를 모르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캄캄한 밤에 헤엄치는 격이었다. 그에 반해 장례식장 운영은 비록 깊이와 위험은 모르지만, 강폭은 알기에 낮에 헤엄치는 것과 같았다.
일부에서는 의료원 정상화를 위해 약을 많이 팔고, 가격은 비싸게 받아 정상화를 시켰다고 오해도 했다. 나는 진료업무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의약품 값 처방을 40% 이상 줄여 약물 남용을 막았고, 의료원이나 장례식장의 음식 재료는 최상품을 선정했고, 공산품 역시 최고의 제품을 제한경쟁으로 선정해서 최소의 가격으로 받았고, 일부 의사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청주·충주의료원에 중환자실도 열다보니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장례식장이야 전문지식이 덜 필요하지만, 의료원은 많은 전문가가 있어 나는 전문가의 의견을 최대한 믿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진료는 의사가. 약은 약사가, 식품 재료는 영양사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물론 반발도 많았다. 그러나 기왕 망한 병원인데 지원이나 해보고 안 되면 폐쇄를 시키자는 심정으로 지원을 했다. 그러자 대성공을 했다.
강병국 (전)아산시 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