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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2021년 1월 독립운동가 기우만·박원영·김익중 선정

김형태 기자 htkim7535@naver.com 입력 2021/01/04 14:08 수정 2021.01.04 14:39
호남 최초로 의병 일으킨 노사학파 유학자들 전시회 개최
기우만 선생 초상화(왼쪽)와 호남의병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죽창, 화승총 등 무기./ⓒ독립기념관
기우만 선생 초상화(왼쪽)와 호남의병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죽창, 화승총 등 무기./ⓒ독립기념관

[천안=뉴스프리존]김형태 기자=독립기념관은 2021년 1월 독립운동가를 선정하고 이달 말일까지 야외특별기획전시장서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4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올해 첫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은 한말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독립운동가들로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선정했다. 

기우만(奇宇萬)은 1846년 전라남도 장성(長城)에서 태어났다. 그는 할아버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학문을 이어받아 노사학파를 이끌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일어나자 기우만은 전라도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고 1896년 음력 2월 7일 호남 최초로 장성의병을 일으켰다. 그러자 기삼연(奇參衍), 김익중(金翼中), 박원영(朴源永) 등 노사학파 문인들과 담양(潭陽)의 고광순(高光洵) 등이 의병에 합류했고, 기우만은 의병대장으로 추대됐다. 

기우만을 중심으로 한 호남의병은 음력 2월 30일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광주향교에 집결하는 광산회맹(光山會盟)을 추진하던 중 고종의 명령으로 해산했다. 

기우만은 의병에서 물러난 후에도 상소운동을 전개했고, 일제의 감시를 받아 여러 차례 체포됐다. 1909년 ‘호남의사열전(湖南義士列傳)’을 집필해 의병에 참가했던 호남 의사(義士)들 행적을 후세에 남겼다.

박원영(朴源永)은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정진 제자로 기우만의 장성의병에 참가했다. 박원영은 광주향교의 재임(齋任)을 맡아 광주향교를 끝까지 지키다가 의병을 진압하러 온 진위대(鎭衛隊)에 의해 체포·처형됐다. 기우만은 박원영 순국 이후 그를 추모하며 제문(祭文)을 지었다.

김익중(金翼中)은 전라남도 장성(長城) 출신으로 기정진의 제자다. 1896년 장성의병으로 활동하며 포수들을 의병에 참여하도록 권했다. 1907년 장성에서 결성된 의병연합부대인 호남창의회맹에서 종사(從事)라는 직책을 맡아 의병항쟁에 앞장서다가 11월 고창읍성에서 일본군경의 습격을 받아 순국했다.

정부는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노사학파 유학자들 공훈을 기리어 1980년 기우만 선생에 건국훈장 독립장, 1995년 박원영 선생에 건국훈장 애국장, 1990년 김익중 선생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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