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평가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미국은 30여년 만에 핵 공격 사이렌으로 대피훈련을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상당수 인사들은 북한에 대한 심각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자신이 믿는 바를 계속 강화하려는 편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체제 유지,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한 지렛대, 핵보유국으로의 자긍심 고양 차원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북핵 위기를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로 치부한 채 대화만을 강조한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는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실천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1950년에는 재래식 무력으로 이를 달성하고자 했고 현재는 휴전 상태이다. 2016년 제7차 북한 노동당대회에서도 김정은은 “동방의 핵 대국이 됐다”면서 “통일이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최근 북한의 핵 개발이 한국을 위협해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 미 합참의장이었던 마이클 멀린도 북한이 핵을 보유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지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그것이 한국에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ICBM을 개발해 미국을 위협하려는 목적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폐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미국만 없으면 핵 위협으로 남한을 굴복시키거나 통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수소폭탄 성공 후 축하행사에서 북한의 고위인사들은 한결같이 미국에 한반도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미국을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계속 괴롭히면 결국 철수할 것으로 믿고 있다. 1970년대 대만과 베트남에서 미국이 그렇게 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하게 나가더라도 결국은 약해질 것이고 언젠가는 헨리 키신저 같은 사람이 나타나 1973년 베트남에 관해 내린 정책으로 전환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1월29일 ICBM 성공 후 김정은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환호한 것은 그러한 결과가 눈에 보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북한은 현재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전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북한에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을 가하고 있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은 점점 심화할 것이고 북한이 먼저 붕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국민 중에는 이를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뒷문을 열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까. 북한의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공격해 경제적으로 풍요한 남한을 장악하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국가안보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대비하는 것이지 최상의 상황이 도래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안일한 북핵 인식과 대비 소홀이 북한의 오판을 자극해 핵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있을 수 있다. 북핵에 대한 확증편향에 빠져 있는 인사들에게 묻고자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할 경우 어떻게 책임질 것이고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방도를 갖고 있는지. 체제 유지를 위한 북한의 핵 개발인데 어째서 일본과 미국은 핵 민방위 훈련까지 하고 전쟁 가능성까지 고려하는가. 임진왜란,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 한일 합방, 6·25전쟁에서 교훈으로 제시되고 있듯이 전쟁이 없다는 안심의 말이 아니라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노력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한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