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김태훈 기자=김지현 포항MBC 아나운서가 경력 단절의 아픔을 딛고, 40대에 다시 아나운서로 복귀해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MBC 프로그램 '톡톡동해인'을 진행 중인 김지현 아나운서는, 젊었을 시절보다 더욱 발전한 실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중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방송계 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뚝선 김지현 아나운서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노하우를 김 아나운서는 '대화의 품격(교보문고)'이라는 저서 한 권에 담았다. 그리고 나오기까지의 세부적인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Q.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을 '말'이라 생각하게 된 배경은?
A. 제가 다시 일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사회생활을 했던 시간보다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더 길었던 상태였습니다.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었죠.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는 것, 전문성이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혹은 좋은 인상을 갖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방법도 있겠지만, 모두 큰 기회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또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보장된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죠. 고민 끝에 '말하기'를 떠올렸습니다. 노력한다면 비교적 빠르게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살면서 말은 언제나 쓰이는 도구이기에 즉시 활용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모든 면에서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효과가 확실한 자기계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전혀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Q. '대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어떤 계기로 고민하게 되었고, 답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듣고 싶다.
A. '대화'가 늘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는 직업을 가졌어도, 대화가 오해를 만들어 곤란해지는 상황은 매번 당황스러웠죠.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는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죠. 그들 주변에는 기꺼이 그의 편이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좋은 평판을 얻고 일에서도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죠. 그래서 대화는 곧 관계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Q. '말 잘하기'를 위해 해왔던 노력과 그 과정 가운데서 어떠한 깨달음이 쌓여갔는가? 변화의 구체적인 과정들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A. 대화법, 설득, 협상 등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걸쳐 많은 책을 읽고 말 잘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들을 꼭 실천했습니다. 대단한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인사하는 것, 진심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고 듣는 노력과 같은 것 들이었죠. 그러면 상대방은 어김없이 내게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진 상대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접 경험을 통해 말이 갖고 있는 힘의 실체를 확인하며, 더욱 확신을 갖고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Q. 방송에 복귀하면서 순탄치 않았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 극복을 해갔는가?
A. 방송 복귀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무도 제게 관심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모두가 제게 호의적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견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력서를 내도 면접에 불러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도 많아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길을 그만 포기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었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 친구들을 만나 조언도 구했었지만 그들도 당장 제게 줄 수 있는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내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 갇힌 듯 했었죠. 사실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극복했다기보다는 그저 내 페이스를 잃지 않는데 집중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언제 올지 모를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스스로의 내공을 쌓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되새기며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Q.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과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궁금하고 어떻게 도움과 기회를 잘 활용해갔는지 궁금하다.
A. 저만의 노력을 꿋꿋이 이어가다보니 진심으로 다가와주는 이들이 한명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는 새로이 알게 된 후배들도 있었는데 한 후배가 친구에게 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모양이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진행자 자리에 추천을 받았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고마웠어요. 이런 식으로 진심이 통한 누군가가 기폭제가 되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런저런 제안과 기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힘들게 준비해 온 시간들이 있어 그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라는 칭찬을 어떤 상황에서 듣게 되었는가? 그때 기분은 어땠는가?
A. 라디오를 진행했을 때, 한분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보내와 소개하던 중이었죠. 너무 마음이 아파 그만 눈물을 참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고 두서없이 청취자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며 마무리를 했었어요. 그때 아마 방송을 듣고 있던 청취자들에게 제 마음이 전해졌던 것 같아요.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방송사고가 날 뻔 했던 상황이었는데, 다른 청취자로부터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느새 진정으로 상대와 공감할 줄 아는, 좋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순간이었죠. 이전의 저는 어조가 차갑다는 말을 들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동안 방송인으로서도 생활인으로서도 제게 늘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기에, 그 순간을 더욱 잊을 수 없었습니다.
Q. 예전보다 방송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깊어졌다고 했다. 방송인에 있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어떤 시야의 차이가 있었는가?
A. 처음 방송을 하던 20대 때에는 '방송은 테크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방송과 일상의 삶은 별개라 여겼었죠. 그리고 방송을 떠나 있는 동안 삶의 연륜을 쌓아가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인생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어떤 테크닉도 공허할 뿐이라는 깨달음이었죠.
Q.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인생의 혜안과 통찰을 배우는 중이라 하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부탁한다.
A. 모든 출연자들로부터 배움을 얻지만, 2차 전지 양극재 제조기업인 에코프로 이동채 회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과학기술 관련 배경이 없었던 공인회계사 출신입니다. 2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에코프로를 일궈냈습니다. 긴 세월 사업을 하며 많은 배신을 겪기도 했을텐데, 사람 사이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시냐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렇게 답변을 해주셨죠. "배신한 사람들은 내게서 하나를 빼앗아 갔지만, 내가 믿은 사람들은 내게 백을 가져다주었다"고요. 관계로 인해 단 한번도 상처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힘든 일이 관계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관계를 위한 노력에 냉소적이어서는 안 될 이유를, 저는 그날의 인터뷰에서 깨달았습니다.
Q.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화의 기술이 좋았던 사람 몇 명을 꼽자면? 그리고 어떠한 점이 좋았는지 설명 부탁한다.
A.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여준구 원장과 과학미디어 스타트업 긱블의 박찬후 대표가 기억에 남아요. 두 분은 모두 저와는 거리가 꽤 먼 분야에 있는데다, 세대 차를 고려해야 할만큼 한 분은 위로, 한 분은 아래로 나이 차이가 컸어요. 물론 인터뷰를 위해 많은 사전준비를 하지만, 출연자와 공통점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드니 좀더 부담이 되는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출연자의 마음을 열기 위한 필수과정인 라포 형성에 더 세심한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 섣부른 걱정과 달리 두분과의 인터뷰는 더없이 순조로웠고, 시청자들로부터도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두분에겐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인터뷰어인 제게 라포를 쌓기 위한 노력을 해주었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은 언제나 오롯이 저의 몫이라고만 생각했었다가 반대의 경험을 하게 되며, '아, 이것이 라포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대화에서 라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직접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Q. 책의 내용을 보면 '감정'이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이 단어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던 계기가 궁금하다. 또한 하버드협상연구소의 연구이론을 주요 근거로 하는데, 이곳의 연구결과를 큰 축으로 삼게됐던 이유도 알고 싶다.
A. 대화법에 대한 많은 자료와 책을 읽었는데,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 이론이 하버드협상연구소의 연구결과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버드협상연구소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감정입니다. 그 어떤 어려운 대화나 협상 상황에서도 감정을 최우선으로 살피지 않고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갈등 상황에 직면하면 상대방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위 이론을 알고 삶에서 활용하며 관계와 대화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Q. 언택트 시대 소통 방법에 대해 정말 인상깊게 읽었다.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한 것이 돋보였다. 라포 쌓기, 메일 어조 알리기, 화상회의 전 티타임 등이 참으로 인상깊었다. 지면에는 다 싣지 못한 것 같은데, 비대면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노력을 어떻게 하고 있고, 어떻게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비대면 대화가 빠른 속도로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 잡혀가는 것을 모두가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편리함에도 금세 익숙해져가고 있는 중이죠. 다만 편리한 만큼의 노력을 더해야 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비대면 소통의 가장 큰 걸림돌은 상대방의 실재감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면 소통에서 필요한 노력들, 예를 들면 이름을 부르는 것, 경청 중이라는 표현, 상대에 대한 리액션과 같은 것들이 두 배 이상 충분히 필요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 부탁한다.
A. 대화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화의 힘이 실로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는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듯해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대화법에 대해 깊이 공부하며 깨달았습니다. 비대면 소통 시대의 대화는 이전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좋은 대화의 필수 조건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는 사람과 관계를 얻을 수 있는 당신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