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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①] 만 5세 전에는 안 돼요!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김소은 기자 webmaster@www.newsfreezone.co.kr 입력 2021/07/22 14:17 수정 2021.07.22 14:36
조기 독서 교육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반론

필자는 ‘기초 교양’을 뜻하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을 고민하던 차에 독서를 지도하는 방법을 다룬 책들을 몇 권 읽게 되었고 독서가 공부가 되어 아이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실상부 입시지옥 한국에서 독서는 점점 자기 모습과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했다. 설마, 설마하며 좀 더 많은 책을 읽어보았다. 기대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독서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게 아이들을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책들이 분명 있었다. 다행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나는 그런 ‘좋은’ 책들을 한번 골라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2년여에 걸쳐 읽은 백 수십 권의 책 가운데서 골라낸 ‘좋은’ 책들이 주장하는 좋은 독서습관을 만드는 독서의 기술에 관하여 자녀의 독서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더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여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던지게 되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독서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참다운 독서의 의미를 내게 알려준 좋은 책들의 일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언젠가부터 ‘선행 학습’ 또는 ‘조기교육’은 주제나 과목과 상관없이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는 비단 입시를 앞둔 중·고등학생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글자 읽기를 배우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요즘엔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곧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사교육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 5,4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한글을 포함한 국어 사교육을 받는 비율이 무려 74.2%나 된다고 한다. 이는 수학 73%, 예체능과 제2외국어 각 70.3%, 영어 67.2%보다 높은 비율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만 2세와 만 5세 영유아의 사교육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국어 사교육의 높은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만 2세아가 참여하고 있는 사교육 프로그램은 국어가 28.6%로 가장 많았다. 만 5세아가 참여하고 있는 사교육 프로그램 역시 국어가 24.5%로 가장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아무래도 다른 과목보다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먼저라는 부모들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른 나이부터 사교육을 시키게 되는 이유로는 주변 아이와의 비교에서 오는 압박감과 사교육 프로그램 제공 업체들의 광고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2세아의 사교육 프로그램 선택경로로는 ‘주변 아이가 하는 것을 보고 선택’했다는 답이 22.7%로 가장 많았고, ‘교육기관의 광고·홍보물’이 19.9%, ‘인터넷 검색’이 17.1% 순이었다. 5세아 부모의 사교육 프로그램 선택경로 역시 ‘주변 아이가 하는 것을 보고’라는 답이 22.5%로 가장 많았고, ‘지인에게 문의’했다는 답변이 18.9%이었다. (오마이뉴스, ‘한글 일찍 배워야 인지 발달에 효과적이라고?’)

한글’ 조기교육과 ‘독서’ 조기교육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이가 어릴수록 이 둘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유명한 한글 사교육 프로그램 상품들은 일찍 한글을 배울수록 아이의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하는데, 이런 주장은 한글을 빨리 배우는 것이 곧 읽기를 잘하게 되는 길이라는 걸 암시한다. 대표적인 국어 사교육 프로그램인 천재교육의 ‘돌잡이 한글’은 ‘누구는 말을 더 잘하고, 더 잘 읽고, 더 잘 쓰고, 이 차이는 돌잡이 한글을 언제 시작하느냐입니다’라고 홍보하고 있고, 구몬의 ‘한글이 크는 나무’는 ‘한글을 아는 것은 읽기에 대한 기초 능력, 책읽기 습관을 쌓는 것과 연관된다.’라며 ‘유아 시기에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아이의 지적 성장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라고 선전한다. 

글자를 읽을 줄 알아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므로 참 그럴듯한 논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홍보하는 대로 한글을 일찍 배우는 것이 정말 아이의 독서 능력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는 의외의 연구 결과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이기숙 교수 연구팀이 실시한 ‘문자 관련 선행 사교육을 받은 만 5세 집단과 사교육을 받지 않은 만 5세 집단을 모집해 비교 분석하는 종단 연구’가 그중 하나다.* 연구팀은 연구에 참여한 만 5세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의 국어 시험 결과를 견주어 보았다. 놀랍게도 독해력을 비롯해 논리력, 관련 단어 찾기, 오자, 맞춤법 등 총 5개 영역 모두에서 사교육을 받은 집단과 받지 않은 집단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문자 관련 선행 사교육을 받지 않은 집단의 평균이 약간 높았는데, 특히 독해력의 경우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의 평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두 집단의 국어 시험 결과를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선행 사교육 경험이 없는 아이들의 읽기 이해 능력과 어휘력 점수가 더 높았다. 특히 읽기 이해 능력 중 비판적 이해 능력에서는 상당히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연구 결과는 한글을 빨리 배우게 하는 선행 학습이 아이의 읽기 능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만 5세 유아의 읽기 능력, 어휘력과 개인, 환경 변인이 초등학교 1학년 읽기 이해 능력과 어휘력에 미치는 영향’ 이기숙·김순환·정종원, 아동학회지, 한국아동학회, 2011)

외국에도 이와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육과 뇌신경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우샤 고스와미 교수는 일찍 글자를 배우는 것이 독서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서로 다른 세 개의 언어를 대상으로 연구를 시행했다.(매일경제, ‘아이는 알고 있는 단어만큼만 이해하고 생각한다’) 다섯 살부터 글자를 배우고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과 일곱 살에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 두 집단 중 어느 쪽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읽기 성취도가 더 높은지를 조사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도 언어와 상관없이 일곱 살에 독서를 시작한 아이들이 다섯 살부터 독서를 시킨 아이들보다 성취도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숙 교수 연구팀과 우샤 고스와미 교수의 연구 모두 아이들의 뇌가 글자를 읽을 준비가 되지 않은 시기에는 아무리 읽기를 시켜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꼬집는다. 

취학 전 학습 프로그램들의 상업적 광고 문구의 선전 때문인지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하루라도 빨리 글을 배우게 해야 학교에 들어가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뇌과학자 매리언 울프가 『책 읽는 뇌』에서 말하듯 “사람의 생물학적 시간표”(울프 2009, 136쪽)를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다. 

울프에 의하면 독서는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 영역과 청각, 언어 및 개념 영역을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는 뇌의 능력에 의존하는데, 만 5세가 되기 전에는 이 통합 능력의 기반이 되는 주요 뇌 부위가 충분히 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 5세가 되기 전에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없을 뿐더러 자연스럽게 단계별로 이루어져야 하는 인간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연재 순서]

① 만 5세 전에는 안 돼요!
 - 『책 읽는 뇌』 매리언 울프

② 독서 영재의 허와 실
 - 『뇌가 좋은 아이』 KBS 읽기혁명 제작팀·신성욱 /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신성욱

③ ‘디지털 단식’이 필요한 시대
 - 『디지털 단식』 빅토리아 던클레이

④ 눈 가리고 아웅! 아이들은 다 알아요 
- 『그림책의 힘』 가와이 하야오, 야나기다 구니오, 마쓰이 다다시 

⑤ 미안해. 엄마도 책 읽는 걸 배워본 적이 없어서 
-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윤정

⑥ 읽기보다 중요한 듣기
-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존 홀트

⑦ 코딩! 초등 필수 과목에 등극하다! 
-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존 카우치, 제이슨 타운

# 김소은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美 Cornell University, Master of Regional Planning 석사
전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지식 컨설턴트(Knowledge Export)
인문학교육기업 대표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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