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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기본소득’, 김두관의 ‘수도와 지방의 균형’, ..
오피니언

이재명의 ‘기본소득’, 김두관의 ‘수도와 지방의 균형’, 추미애의 ‘자치분권형 개헌’에 부쳐

최자영 기자 paparuna999@gmail.com 입력 2021/07/23 18:50 수정 2021.07.24 09:52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사진출처: 뉴스프리존,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2433)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뉴스프리존]여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공약이 쇄도한다. 공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치분권 등 권력구조의 개편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 등 민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결정 권력을 누가 갖는가 하는 것이고, 후자는 위정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민초는 발언권, 결정권 없이 그냥 던져주는 것을 얻어먹는 꼴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누가 결정을 하든, 아예 빼앗아 가버리는 것보다 뭐라도 주겠다고 하니 고마운 노릇이긴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준다고 했다가 마음이 변해서 안 줄 수도 있고, 또 상황이 바뀌어서 주고 싶어도 못 주는 수가 있다. 그래서 준다고 해도 다 믿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이치는 위정자 공약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사가 다 그렇다. 내가 세운 계획도 번번이 나 자신을 배반한다.

이재명이 ‘기본소득’을 제1 구호로 내걸었다가 최근 들어 다른 공약을 함께 제시했다. 그랬더니 이재명이 말을 바꾸고 ‘오락가락’하는 것이라고 비난들을 한다. 그러나 공약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고, 당연히 유연하게 바꾸어가야 한다. 한번 말했다고 해서 꼭 지켜지는 것도, 꼭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은 상식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바꾸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결정권이 다른 사람에게 있으니, 아무래도 돌아오는 몫이 자신이 결정하는 것보다 적어지게 된다. 스스로 결정하게 되면 남이 결정할 때보다 자기 욕심을 더 많이 채우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 기대가 배반을 당해도 스스로 결정한 사실에 대해서는 남을 욕할 수가 없다. 손해를 보고 어떤 경우에는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다 해도 불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조용해진다. 잘 되면 남이 결정할 때보다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대신 손해를 봐도 불평할 수 없는 것, 그것이 결정권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민초,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서 국민 민초가 스스로 갖는 길이다.

누군가 민초를 개돼지라고 했는데, 이 말은 딱히 틀린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개와 돼지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돼지는 잡아먹는 데 좋고, 개는 도둑이 오면 짖기도 하고 농장이나 양을 지키는 데 유용해서 좋다. 그런데 길들여진 개돼지의 특징은 주인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이다. 야생으로 바뀌지 않는 한 스스로 자신의 먹이를 협상하거나 재단할 수가 없다. 그래서 권력구조를 두고 말할 때 국민 민초가 개돼지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의미가 된다. 헌법 제1조에 분명히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해놓고는, 실제로 민초는 주요 사안에 결정권을 거의 위정자에게 빼앗긴 상황이라, 그 발언은 메아리 없는 헛소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듯 현재 남발되는 공약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고 할 때, 전자의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되는 화두는 검찰, 언론 개혁, 자치분권 같은 것인 반면, 후자 즉 떠 먹여주는 것을 개돼지 같이 받아먹는 것이 각종 복지정책이다. 후자의 경우 대선후보들은 서로의 선의를 경쟁하듯, 이것저것 청사진을 남발하고 있다.

후자와 관련하여, '기본소득'을 내건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자신이 대선에서 성공하는 경우, 임기 내에 연간 전 국민 100만 원, 청년세대 2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수도와 지방의 균형’을 내건 김두관 의원은, 이재명의 핵심주장인 억강부약 하려면, 오히려 기본소득보다는 죽어가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 서울공화국을 해체하고 지방을 살려야 한다고 본다.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에 들어가는 최소한 연간 50조 원, 4년간 200조 원 이상의 예산이 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서울이 5개인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200조 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지방에 서울대와 같은 수준의 대학을 4개 더 만들어, 서울로 공부하러 오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겠고, 지방 민간병원에 대한 지원법을 만들어 거점 종합병원을 키우겠고, 놀이공원, 미술관, 전시장, 박물관,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에 투자하여 서울에 있는 제일 좋은 문화시설을 지방에도 똑같은 수준으로 설치하겠다고 한다.(김두관 페이스북)

김두관이 내 거는 이 같은 구상의 이른바 ‘수도와 지방의 균형’이란 위정자가 결정하여 민초에게 떠먹이는 복지정책의 일환에 속한다. 그 뜻은 권력구조의 개편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국민 민초는 여전히 결정권이 없이 위정자의 처분에 운명을 맡기고 있는 개돼지 신세를 면치 못한다. 김두관 같은 위정자가 스스로 좋은 구상과 결정의 주체가 될 뿐, 그 결정권을 국민 민초에게 넘긴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지방분권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사업의 내용도 대법원이나 헌재를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것인데, 여기에는 결정권의 하향적 수직 이동의 개념이 없다. 지역을 옮긴다고 해서 대법원이나 헌재에 집중된 사법권력의 구조가 바뀌는 것이 전혀 아닌 것이다.

사실은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김두관의 ‘수도와 지방의 균형’은 그 어느 쪽도 비중이 가볍지 않은 것이라,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둘이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열을 올리고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어느 것을 먼저 하든 지지자와 반대자가 있게 마련이고, 욕을 얻어먹게 된다. 그런데 욕을 얻어먹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 국민 민초가 스스로 우선 순위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정자가 나서서 욕을 얻어먹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손익의 대가는 어쩔 수 없이 민초 스스로가 감내해야 한다. 왜? 스스로 결정한 것이므로.

이낙연과 정세균은 각기 헌법 개정을 말하지만, 개정된 헌법의 장밋빛 청사진에는 여전히 민초의 발언권, 결정권에 대한 개념은 없다. 헌법개정의 구상에서 결정의 주체는 여전히 위정자들을 중심으로 한 체제일 뿐, 결정권 없는 민초는 개돼지로 남을 전망이다.

이낙연은 이제 내 삶을 지켜주는 정치로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생명권, 안전권, 주거권을 헌법에 신설해야 하고, 토지공개념이 명확해져서 불로소득을 부자들이 독점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며, 땅에서 얻은 이익을 좀 더 나누고 사회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한다. 이 같은 공약 시행의 주체는 위정자일 뿐, 민초는 결정권이 없다. 정세균이 말하는 육아나 가족 ‘돌봄사회’ 공약 등도 같은 맥락에서 민초는 위정자가 은전으로 ‘베푸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는 개돼지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복지정책의 구상과는 결이 다른 것으로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줄곧 추진해온 검찰개혁은 권력구조의 개편에 관련한 것이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봉건적 상명하복의 체제를 타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추미애를 비난하여, 윤석열과 괜히 다툼하느라 윤석열의 몸집만 키워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추미애가 해왔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하려 하는 검찰개혁은 검찰조직이 가진 터무니없는 전횡의 힘을 깨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근 백 년 식민지배와 독재를 이어 권력의 하수인으로 민폐를 끼쳐왔던 봉건적 조직에 맞서는 것이다.

추미애의 검찰조직 기득권력에 대한 저항은 복지정책의 추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우선 눈치 보며 떠 먹여주는 밥만 받아먹는 개돼지가 아니라, 결단코 일어서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찾아 주인이 되는 길이다. 검사의 전횡에 민초가 속앓이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검사가 주권자 민초를 겁낼 수 있도록 감독과 처벌의 절차를 마련하고 민초가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뿐 아니라 기준도 없이 말도 안 되는 고무줄 판결을 일삼는 법관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판결에 대해 피해자 민초가 감독 처벌하는 결정권을 행사해야만 하겠다. 언젠가 이재명은 배가 고픈데 사법개혁이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배가 부르면 더 없이 이상적이겠으나, 가끔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나을 때가 있다. 민초는 떠 먹여주는 것만 받아먹는 개돼지가 될 수는 없다.

최근 추미애가 사법개혁 이외에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 지방분권이 어떤 내용을 담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은 것 같지 않지만, 적어도 ‘자치분권’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에서 김두관의 ‘수도와 지방의 균형’ 혹은 주요 헌법기관의 지역 이전 같은 개념보다 더 심화되었다. ‘자치’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고, ‘자치’의 개념은 결정권의 권력구조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두관의 공약은 근원적으로 민초가 다소간 결정권을 갖는 권력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여전히 위정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민초들에게 뭔가를 다소간에 떠먹여 주는 체제에 매달려 있다.

추미애가 ‘자치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김두관은 자신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자치분권과 서울공화국 해체에 힘을 실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부쳐서 김두관은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대통령 출마를 감행하셨고, 출마선언문에는 통일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셨다가 오늘은 자치분권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니 “조금 혼란스럽다”, “아무리 정책엔 지적 재산권이 없다 하더라도 이번 공약만큼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인정한 자치분권 전도사 김두관에게 한 번쯤 양해를 구했으면 어땠을지 싶다”고 한다.

지방분권의 공약을 두고 “지적 재산권” 운운하며 추미애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김두관이 이재명과는 다른 차원으로 200조를 쓰겠다고 한 내역을 볼 때, 지방의 복지를 증대시키자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반드시 지방의 ’자치’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처럼 중앙의 위정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결정권 없는 지방의 민초를 개돼지처럼 먹여주는 그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김두관이 ‘자치분권’의 사안에서 추미애가 양보하기를 바란다고 한 것이다. 아마도 김두관은 그 ‘자치분권’ 혹은 그 자신이 말하는 ‘수도와 지방의 균형’을 다른 이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도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천군만마가 달려들어도 기득권의 성(城)을 부시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울 수도 있다. 추미애가 양보할 것이 아니라, 너도나도 ‘자치분권’을 들고 나오면 다 같이 힘을 합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될까 말까다.

김두관은 추미애가 지금까지 지방분권에 관련하여 “자기의 이력과 실력으로 증명할 때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고향인 대구에서 또는 영남 그 어느 곳에서 깨지고 부서지며 자치분권의 탑을 하나하나 쌓아 온 이력이 있었다면 추 후보님의 오늘 공약은 더욱 빛났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안 했으니 앞으로도 못 한다고 사양할 것이 아니다. 몰랐다가 깨쳤으면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덧붙일 것은 촛불혁명이 결실을 맺어서 문 정부가 들어서던 시기를 전후하여 시민단체에서 열심히 ‘국민개헌운동’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이미 4년 전 일이다. 그때 2년 정도 줄창 떠들었던 것은 국민개헌발안권, 국민소환권(공직자 처벌권), 국민투표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개헌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 무위로 돌아갔다. 마지막에는 한가지, 국민개헌발안권만이라고 건지자고 이른바 ‘원포인트(하나만)’ 개헌을 요구했으나, 여야 국회의원 누구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지금도 그 많은 대선공약 가운데, 국민 민초의 발언권을 위한 이 같은 내용으로 개헌하자는 이는 놀랍게도 하나도 없다. 딱 하나 예외가 김두관 의원이 제시한 공약으로 주요정책 ‘1%’에 한하여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것이다. 비록 ‘1%’로 제한적이긴 하지만, 주권자 민초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실 대선공약 역사에서 획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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