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분권이란 말이 유행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이다.
대선후보로 나선 김두관 의원이 말하는 균형발전·지뱡분권은 수도권 집중의 구조를 타파, 다핵국가로 하여 전국을 다섯개 메가시티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전남대 사학과 최영태 명예교수는 분권형 정부제 개헌안을 들고나왔다. 이낙연 전 총리도 내각책임제 운운한 적이 있었던 것같다.
최영태는 오늘 극단적 대립의 여러 가지 배경과 원인 가운데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하고, 그 해법이 대통령 권한 분산 개헌안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박병석 국회의장도 같은 주장을 펼치면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대선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권한 분산이란 대통령 권한의 상당 부분을 총리에게 맡기는 분권형 정부제(이원정부제), 혹은 4년 중임 대통령제안과 내각제안이 있다.
분권형 정부제 개헌안 중 하나는 대통령에게 기획·재정·통일·외교·국방의 권한을 부여하고, 총리에게는 나머지 내각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었다. 최영태는 저출산, 기후위기, 빈부격차, 청년 실업, 부동산값 폭등,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 대결 심화, 공교육 위기, 인공지능(AI) 시대 대비 등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런 점에서도 좀 더 생산적이고 통합지향적인 정치문화가 필요하며, 분권형 정부제는 그런 목적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제도라고 본다.(한겨레, 2021.8.2.)
유사한 맥락에서 백기철 한겨레 편집인도 권력분산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서 대통령, 총리를 포함해 여러 사람과 세력이 권력을 나누고 정책을 조율하고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 걸맞은 정치의 연속성과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한다.(한겨레, 2021.8.2.) 백기철은 대통령의 권한을 염두에 두고서, 국민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같은 지도자는 이제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걸 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분권이라는 단어를 두고 각기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다. 김두관은 수도집중을 타파하여 전국을 다섯 개 거대도시(메가시티)로 재편하겠다고 하고, 다른 두 사람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여 총리나 국회에 나누어주자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또 다른 분권의 개념을 꺼내고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의 권력 분산을 말하자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법관, 검찰, 경찰 등 권력이 집중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이다. 최영태와 백기철은 대통령의 권한만 빼서 총리나 내각제 국회에다 주는 것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저곳 눈치만 보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고 미적거리는 총리를 보고, 또 지금 아귀다툼하는 국회를 보노라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국회에 집중된 권력을 그대로 두고, 대통령 권력만 빼낼 생각만 하는 걸까? 이명박, 박근혜 때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다가 말이다.
둘째, 김두관이 말하는바, 집권을 수도와 전국 등의 지역적 단위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각종 정부 기관의 기능적 권력 집중의 폐단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 입법권은 중앙의 국회가 전유할 것이 아니라 지방 고유 사안의 입법은 지방의회로 넘겨야 한다. 예결산 심의권도 중앙의 국회가 아니라, 지역 사정에 통달한 지방의회에서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의 검찰과 법원 업무도 분권에 입각하여 지역간 독립성을 가지고 임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면 각 지역에 최고법원이 존재하게 된다. 각 지역은 독일의 연방과 같이 상호간 독립성과 평등성이 확보되며, 지역이 중앙 권력에 종속되는 일도 없어진다. 중앙 검찰 및 법원에서는 각 지역 간에 서로 얽힌 분규 혹은 전체 국가에 관련한 사무를 관장하면 된다.
셋째는, 위정자 혹은 공직자가 행사하는 권력을 감시 처벌하는 권한을 국민 민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입법의 국회를 감시하고, 밥 먹듯이 엉터리 재판을 해대는 법관, 가짜 증거를 조작해대는 검찰을 감시 처벌하는 권한과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검찰 비리는 검찰에서, 법관 비리는 법원에서 ‘셀프(자체)’ 조사하고 처벌한답시고 솜방망이를 휘두르도록 방관해서는 안 되겠다.
최영태가 말하는‘통합지향적인 정치문화’의 개념이 ‘분권형 정부제(대통령의 권한을 총리 혹은 내각제 국회로 나누어주는 것)’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대통령의 권한만 빼서 총리나 국회에 나누어주면 갈등이 봉합되어 ‘통합지향적인 문화’ 풍토가 형성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거기다 산적한 어려운 과제들이 죄다 해결될 전망에 있는 것처럼 장밋빛 환상을 투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연출되는 국회의 현실은 최영태가 전망하는 것과는 반대가 될 전망이다.
백기철은 이재명 지사를 두고 주변 문제에 말끔히 대처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키운 측면도 있다고 평가하고.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서는 현 정부의 공과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당 대표 시절의 재보선 참패 책임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문 대통령을 두고는, 현 정권의 핵심 요직에 있던 세 사람(전 검찰총장 윤석열, 전 감사원장 최재형, 전 경제부총리 김동연)이 야당 대선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저질 정치 코미디에 가까운데, 이 세 사람의 궤도 이탈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 책임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백기철의 평가와 달리 이재명 지사의 주변 문제는 본인이 잘 대처하지 못했다기보다, 주변에서 대선후보로 나온 그를 견제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문제를 키우는 측면이 크다. 문 대통령의 경우에도 핵심 요직 세 사람의 야당 대선후보 합류는 개인의 자질과 선택의 문제이므로, 꼭 문 대통령 책임이라고 하기 어렵다. 거기에도 야당 발(發) 여당 흠집내기 꼼수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단언하기가 어렵다. 임명권자는 어떤 기준에 의해 임명을 할 뿐, 그다음의 일탈에 대해서는 감시와 처벌을 논해야 할 뿐이다. 본분을 어기고 국민 민초를 기만한 공직자에 대한 감시 처벌은 이미 임명권자의 범위를 넘어서서 피해를 본 민초가 해야 할 일이다.
백기철은 비판의 대상을 시종 대통령에다 꽂아두고, 지도자, 즉 대통령의 책임과 권한을 나눠 갖고, 칭찬과 비판도 나눠 받는 정치로 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총리를 포함해 여러 사람과 세력이 권력을 나누고 정책을 조율하고 연합함으로써, 선진국에 걸맞은 정치의 연속성과 변화를 꾀해야 한다”, “현행 헌법 안에서 최대한 권력을 분담하고, 가능한 시기에 어떻게든 권력분산형 개헌을 해야 한다”, “국정은 대통령 혼자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몇십년째 대통령 1인에게 절대 의존하는 구조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라고 한다.
그러나 백기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나누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총리, 국회, 법원, 검찰 등이 중앙집중식으로 가지고 있는 권한을 각 지역과 민초들에게로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정은 대통령뿐 아니라 중앙의 300인 인력의 국회가 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고 해야 옳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몇십 년째 대통령 1인 및 300인 중앙의 국회에만 절대 의존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김두관 의원은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실현하겠다”, “중앙과 지방이 권력을 공유하는 선진국형 연방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지방세의 과세권을 지방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라며 재정권의 지방 이양을 제안했고, 또 "1% 법안 국민투표제를 시작하겠다. 의회에 상정되는 1%의 중대한 안건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라며 "차별금지법, 언론개혁법, 토지공개념, 분권법, 정치개혁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라고 했다.(뉴스프리존, 2021,7,1)
그러나 김두관이 말하는 이 같은 연방제 수준의 분권안에는, 재정권의 이양은 있으나 지역 자체 사안의 입법권, 검찰 및 법원의 사법권력 등을 지역으로 이양하겠다는 개념은 결여되었다.
여기서 백기철이 제왕적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을 국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가 있겠다. 5년 단임 대통령, 나 홀로 대통령뿐 아니라, 정쟁을 일삼고 또 4년 임기에 무한정 재선이 가능히여 다음 회기 의원에 재선될 기회만을 엿보는 이들로 가득한 국회도 수명이 다해간다는 걸 국민은 부지불식간에 알아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여의도의 정치는 그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쳇바퀴를 돌고, 그래서 국민은 답답해하면서도 마지못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의원들에게 눈길을 줬다 거뒀다 한다고 말이다.
모든 이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발목이 잡혀 가지고 나아가기 힘든 대통령 한 사람, 무기력한 300인 국회의원만 쳐다보며 환호하거나, 아니면 매일 저주를 퍼붓는 식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이제 각 지역의 사안은 중앙정부에서 지역정부로 넘기는 동시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자에 대한 처벌권은 주권자 국민 민초가 돌려받아서 두 눈 부릅뜨고 감시와 처벌을 직접 행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