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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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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품위

박종배 기자 onlinenews@nate.com 입력 2018/01/03 20:01 수정 2018.01.03 20:04

[뉴스프리존=박종배기자] "나이를 품위 있게 먹어야 하는데..." 최근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배우 천호진 씨가 2006년 출연한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말한 대사다. 사업가이자 조직폭력배로 출연한 천 씨(황 회장 역)가 극 중 검사에게 모욕을 당하자 내뱉은 말로 이후 황 회장의 조직원들은 황 씨의 묵인 하에 검사를 살해한다. 황 회장이 살인이라는 불법을 통해 자신만의 품위를 실현한 이 장면은 '무엇이 진정한 품위인가?'라는 질문을 필자에게 던졌다.

국어사전은 '품위(品位)'를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으로 정의한다. 우리사회에서 '품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인물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자 의전서열 1위로 국가를 대표하는 공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품위'와 '대통령'을 연관 지으니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장면을 본 당시 야권인사(현 여권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18년간 청와대에서 거주했고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수행했기 때문에 품위가 몸에 배어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봐도 박 전 대통령의 앉는 자세와 제스처는 교양 있고 단정해 보였다. '품위 있는 그녀'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매우 치열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첫 양자대결 대선으로 75.8%에 이르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과반이 넘는 51%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당시 박근혜 후보의 지적 능력에 의심을 가졌다. 하지만 정통 보수 이미지와 품위 있는 모습, 정갈한 리더십에 매력을 느낀 많은 국민은 박 전 대통령에게 표를 행사했다.  

2018년 1월 현재, 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파면 후 형사재판 중에 있다. 법조인들 사이에선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엮였다"며 무죄를 호소하고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2012년 대선 당시 국민이 기대한 '품위 있는 대통령'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인다.

대한민국 법원은 피고의 충분한 방어권를 보장한다. 탄핵재판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피청구인이었다. 헌법재판관 8인은 헌법에 정해진 권한과 법리에 따라 탄핵소추안을 심의했다. 탄핵소추 후 박 전 대통령은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다. 억울하다면 이른 시기에 헌재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헌법재판관의 질문에 변명(辨明)하는 것이 옳았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너무나 궁금한 국민을 위해서라도 그리하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탄핵재판을 정치적으로 접근했다. 박 전 대통령의 헌재출석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통령 대리인단은 '내전', '섞어찌개',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느냐', '법관이 아니다' 등 막말 수준의 법정 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대리인단은 말 그대로 박 전 대통령을 대리한다. 대리인단의 주체는 박 전 대통령이고, 대리인단의 언행은 곧 박 전 대통령의 그것이 된다. 법정을 모독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극단적인 언행에 대해 박전 대통령은 주의시켜야 했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 늦지 않은 일정으로 재판정에 출석했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사건의 주체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이 필자는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법기구다. 설치 및 운영에서 어떠한 강압과 강요도 존재치 않는다. 국민과 국가를 대표하는 정당한 기구라는 의미다. 국민의 기구인 헌법재판소는 그 운영과 결과를 존중 받아야 한다. '내전', '섞어찌개',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느냐', '법관이 아니다' 등 막말이 재판소를 떠돌아서는 안됐다.

형사재판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은 진술을 거부한 채 사건 관련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변호인단을 전원 해임하고 국선 변호인 접견도 거부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의무를 가진 전직 대통령의 품격에 너무도 맞지 않는 모습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어 국가 수반이 된 대한민국 최초의 인물이다. 누구보다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고 헌법과 법률을 존중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성인은 물론 자라나는 후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탄핵소추 이후 헌법재판소와 형사재판에 임한 박 전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대단히 적절치 못한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하고 요구하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이른 시간에 법원에 출석하여 실체적 진실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과격한 시위를 서슴지 않는 '박사모' 회원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주의를 전달해야 한다.

영화로 돌아가서 황 회장은 '품위'를 잘못 이해했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국어사전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으로 '품위'를 정의하고 있다. 정의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사람'이다. 人人人人人, 사람인이 다섯 글자 있다. 해석하면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사람이라고 사람인가?"라는 뜻이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위엄과 기품이 절대 품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품위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황 회장은 살인이라는 불법을 통해 품위를 실현하려 했다. 사람의 본분을 저버린 모습으로는 어떠한 조건으로도 품위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황 회장은 몰랐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품위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청와대에서 22년간 생활한 박 전 대통령이 품위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재판에 적극 임해야 한다. 그리고 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안정과 국민화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품격의 모습이다. 내 뜻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 태도는 이기적이다. 대통령의 품위와 이기적 태도는 모순관계다. 품위 있는 모습으로 국민 기대에 조금이나마 부응하는 박 전 대통령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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