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년 서울시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과거 박원순 전 시장의 역점사업들에 본격적으로 손을 댔다.
서울시는 오 시장이 '잘못된 관행', '비정상'이라고 질타한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의 내년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사업비가 크게 줄어 타격을 입게 된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안을 역대 최대 규모인 44조748억원으로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고 1일 발표했다.
오 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예산안에 담긴 시정 철학에 관해 "'서울시 바로세우기'로 명명된, 흐트러진 재정을 좀 더 정교하게 '시민 삶의 질' 위주로 바로잡는 것과 서울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바로 세우기'는 오 시장이 박 전 시장 시절 이뤄진 시민단체 지원사업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지난 9월 대대적으로 선포한 시정 운영 방침이다.
오 시장은 "관행적·낭비적 요소의 재정 지출을 과감히 구조조정하는 재정 혁신을 단행해 총 1조1천519억원을 절감했다"며 이 중에는 '서울시 바로 세우기' 관련 민간위탁 보조사업 절감분 832억원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해당 사업들의 올해 총예산 1천788억원에서 46.5%가량을 감액한 것이라고 시는 덧붙였다.
서울시가 밝힌 사업별 예산안을 보면 민간위탁 분야에서 사회적경제 사업비 121억원(천만원 단위에서 반올림)이 64억원으로 47.2%, 마을 관련 사업비는 121억원에서 40억원으로 66.8%, 청년 참여 관련 사업비는 144억원에서 80억원으로 44.1% 각각 줄었다. 도시재생 관련 위탁사업은 90억원에서 23억원으로 74.6%, 주민자치 사업비는 145억원에서 50억원으로 65.7% 각각 삭감됐다.
민간보조 분야에서는 주민자치 지원 예산이 270억원에서 137억원으로 49.2% 줄었고, 마을사업 관련 지원금은 올해 3억2천만원이었다가 내년에는 아예 편성되지 않아 100% 삭감됐다.
서울시는 또 '서울시 바로 세우기'와는 별도로 시 출연기관인 TBS 교통방송 예산도 약 123억원 삭감했다.
오 시장은 이런 행보가 '전임 시장 지우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한 것을 '전임 시장 지우기'다, 시민협치 부정이다, 심지어는 '민주주의 파괴다'라고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일부 시민단체가 마치 대표성을 가진 것처럼 표방하는데, 어떻게 보면 특정인 중심의 이익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케이스들이 종종 있다"며 마을공동체지원사업과 서울혁신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단체와 관계자들의 이니셜을 일일이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들여다본 사업들의 감사 결과를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이렇게 절감한 예산을 다수의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오 시장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에게 복지포인트를 확대하는 등 처우를 개선하고, 출생 아동을 지원하는 첫 만남 이용권(200만원 상당의 바우처) 사업을 시작하며, 한강공원에 캠핑장을 만드는 등 작지만 세심한 변화로 일상의 감동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서울시 사업에 참여해온 주요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서울사회주택협회와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서울시NPO지원센터 등 단체들은 서울시의 예산 삭감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2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 예정이다.
이들은 "서울시의 정책 역주행은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노동, 도시농업,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에너지, 주거, 주민자치, 청년, 협치, 환경 등 정치적 표적으로 삼은 분야의 맹목적인 사업 방해와 막무가내 예산 삭감으로 진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책의 퇴행뿐만 아니라, 시민의 인권과 노동권의 침해, 시민의 자치활동 위축과 참여 배제, 지역 주민의 삶의 질 저하로 귀결될 것"이라며 "오세훈 시장의 폭주를 막고 시민의 삶을 지키는 데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은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을 이달 말 출범시키기로 뜻을 모으고 지난달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이원재 시민행동 준비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은 "변호인단을 구성해 시민사회를 향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에도 법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