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9일 치르는 대선을 두 달여 앞둔 23일 네거티브 전쟁이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과거 어느 대선에서나 예외 없이 폭로·비방전이 있었지만, 유독 이번 대선에서는 더 심하다는 평가가 많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릴 정도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모두 '사법 리스크'를 비롯,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신상 문제상 불안 요인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 양단의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인화력 높은 폭로성 주장을 쏟아내며 양측의 네거티브 공세에 먹잇감을 제공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과 이 후보 장남의 불법 도박 의혹이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 사례에서 보듯, 남은 기간 어디에서 어떠한 형태로 뇌관이 터질지 예측불허라는 점에서 '지뢰밭 대선'이라는 표현까지 회자된다.
양 진영이 서로 흠집내기에만 몰두하는 사이, 정책과 비전 경쟁이 실종된 지는 오래다. '묻지마 폭로'와 비방으로 얼룩진 진흙탕 선거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부동층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두 후보가 각별히 공을 들이는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 2030세대가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한 채 두 사람 모두에게서 등을 돌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여의도 안팎에선 '저들이 저급하면 우린 더 저급하게'(When they go low, we go lower)가 각 당의 구호 아니냐는 냉소 섞인 말까지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저들은 저급해도 우린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2016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명연설을 패러디한 것이다.
◇ "본부장 비리 후보" vs "대장동 게이트 몸통"
네거티브 캠페인은 가장 빠른 시간에 상대 후보의 약점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개 '자질검증'이란 명목으로 행해지는 네거티브 대상은 해당 후보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반복적인 파상공세를 퍼부으면 중도층과 부동층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묻지마 폭로'의 유혹에 빠져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여야간 고소고발도 난무하는 조짐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자기 당 후보의 장점이 뚜렷하지 않고 흠이 많을 때 상대 후보를 비방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피장파장' 인식을 주는 것이 네거티브전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은 윤 후보를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후보'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윤 후보(고발 사주 및 부산저축은행 대출비리 부실수사 의혹) 뿐만 아니라 배우자 김씨(허위 이력 의혹), 장모 최모씨(부동산 개발, 요양원 운영 관련 의혹)를 싸잡아 겨낭해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특히 배우자 김씨에 대해선 과거 유흥업소 접대부로 일했다는 이른바 '쥴리'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상태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를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수천억원대 이익을 민간개발자에게 몰아준 해당 사건의 총책임자가 이 후보이기 때문에 대선에 나설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형수 욕설', '여배우 불륜 스캔들', '전과 4범 전력' 등 이 후보를 겨냥한 부정적인 주요 키워드들도 국민의힘은 단골 네거티브 소재다. 이 후보 장남 동호씨의 불법도박과 성매매 의혹도 돌출되면서 공방전에 활용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주고받는 네거티브전(戰)에는 '내로남불'이 깔려있다. 상대 진영 후보에게 엄격하면서도 자기 진영 후보의 허물에는 관대하게 접근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에서다. '내가 하면 검증, 남이 하면 네거티브'라는 '내검남네'의 기제도 작동한다.
건전한 미래 비전 경쟁은 사라지고 네거티브 대결만 부각되면서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과 혐오는 커져만 가고 있다.
실제로 대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여야 대진표가 완성된 이후 한국갤럽이 2주마다 진행한 차기 주자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이 후보와 윤 후보 지지율은 30∼40%를 오르내리며 박스권에 갇힌 반면 부동층을 의미하는 '의견유보'는 비율이 높아졌다.
'의견유보'는 11월 16∼18일 조사에서 14%, 11월 30일∼12월 2일 조사에서 15%, 12월 14∼16일 조사에서 16%로 1%포인트씩 증가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의뢰로 지난 20∼21일 전국 1천1명(응답률 16.8%)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11.0%로 2주 전 조사보다 1.5%포인트 늘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특히 20대에서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24%나 됐다.
통상 대선이 다가올수록 각 진영의 표심이 결집하고 부동층은 줄어들기 마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부동층 증가는 국민들 사이 팽배한 염증을 반영한 현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 병풍·BBK·최태민…역대 대선 네거티브 성패는
역대 대선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가장 큰 피해자로는 2002년 대선에서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이른바 '병풍'으로 홍역을 치른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이회창 후보가 꼽힌다.
병역비리 의혹은 검찰 수사까지 이어져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회창 대세론'을 꺾을 만큼 대선 과정에서 이 후보에게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리로 귀결됐다.
반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K 주가조작 의혹은 대선판을 뜨겁게 달궜고, 이 후보는 특검까지 받았지만 당락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참여정부 심판론에 따른 반노(반노무현) 정서가 대선판을 뒤덮은 가운데 기업 CEO 출신의 이 후보가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초반부터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서나가면서 BBK 의혹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친 셈이다.
2012년 대선에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과거 문제'가 민주당의 주 공격 포인트였다.
고(故)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네거티브 공세와 함께 최 목사가 박 후보를 뒷배경으로 호가호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 목사의 딸 최순실 씨와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 씨를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었다.
이런 의혹은 박 후보의 신비주의 이미지를 깨면서 일시적으로 지지율에 영향을 줬지만 승기를 꺾는 결정적 변수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 의혹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차 불거져 결국 탄핵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