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평생을 ‘봉사의 삶’ 실천한 푸른 눈의 두 신부 한국인 돼..
사회

평생을 ‘봉사의 삶’ 실천한 푸른 눈의 두 신부 한국인 돼

김남중 기자 입력 2016/02/05 07:49
[연합통신넷=김남중 기자]1960년대 임실 지역에서 처음으로 치즈를 만들어 임실 치즈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정환 신부에게 정부가 4 일 평생을 한국에 봉사하며 살아온 감사의 뜻으로  57년 만에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

지난 한 해 방문객만 25만명에 달한 전북 임실의 치즈마을은 이 일대 50여 농가가 생산하는 치즈와 유제품의 매출 규모는 연간 180억 원에 달한다.

법무부는 4일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와(왼쪽) 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오른쪽)에게 한국 국적 증서 수여.
벨기에 국적의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는 28살 때인 1959년 한국 땅을 밟았다. 1964년 임실성당에 부임한 그는 3년여간 간척사업을 펼쳤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부쳐먹을 땅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개간한 농지 30만평을 100가족에게 분배했다.


농민의 자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됐다. 1964년 전북 임실성당 주임신부가 된 그는 3년간 유럽에서 배운 치즈 생산기술로 1967년 치즈공장을 만들어 가난한 농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가 ‘한국 치즈의 아버지’ ‘임실 치즈의 대부’로 불리는 이유다.

또 지역 청년들과 산양협동조합을 꾸려 지역민의 경제적 자립 발판을 만들었다. 그는 1976년 조선호텔에 납품하는 등 지 신부의 치즈가 유명해지면서 임실치즈농협이 생겼다. 지 신부는 다발성신경화증이란 중병을 얻은 뒤 프랑스 나환자 마을에서 3년간 요양한 후 1984년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는 전북 완주시에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인 ‘무지개 집’을 세웠다. 또 2007년에는 각계 상금과 기부금으로 ‘무지개 장학재단’을 세워 꾸려가고 있다.

정부는 지 신부와 함께 장애인 복지에 평생을 힘써온 아일랜드인 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에게 오늘 한국인 국적을 부여했다. 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84·한국명 천노엘·오른쪽)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다.

1957년 한국에 온 그는 1981년 광주에 국내 처음으로 그룹홈을 만들었다. 장애인과 봉사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적응 능력을 키우도록 노력했다. 1987년에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엠마우스 복지관’를 설립하고, 1993년에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 공동회’를 세우는 등 현재 13개 시설에서 장애인 직업훈련, 특수교육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법무부는 4일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와 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에게 한국 국적 증서를 수여했다. 특별공로로 한국 국적을 얻은 경우, 기존의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노엘 신부 (한국명 천노엘)는 "대학교 다닐 때 한번 고향에서 투표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못해봤어요. 이번 4월 총선 있잖아요. 투표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라며 이어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여생을 보내겠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한편 이날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지 신부는 4일 수여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